채영진 전력거래소 전력산업연구원 부장

▲채영진 전력거래소 부장
▲채영진 전력거래소 부장

[이투뉴스] 2013년 프랑스 석유메이저 토탈사는 석유·가스 시추현장에서 사람이 수행하고 있는 설비 점검업무를 24시간 쉬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율로봇(ARGOS, Autonomous Robot for Gas and Oil Sites) 경진 대회를 열었고, 2017년 독일·오스트리아 팀의 'Argonauts'를 우승작으로 선정했다.

이 로봇은 실시간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며, 설비의 비정상 작동 확인 및 가스 누출과 같은 긴급 사태 시 일정한 조치도 가능하다. 2017년 미국 쉐브론(Chevron)은 유전의 시추 위치를 파악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기본 방법대비 생산량을 30% 늘렸다.

2016년 지멘스는 자사 가스터빈의 연료밸브를 조절하는 프로그램인 GT-ACO(Gas Turbine Autonomous Control Optimizer)를 활용해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20% 감소시켰다. 담당 엔지니어는 그 해 사내 발명인상을 수상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주요 원자력발전소 사고 가운데 약 56%가 미국에서 발생했다.(전체 99건중 56건) 이에 미국 퍼듀 대학은 비디오 이미지를 빠르게 판독해 원자로의 미세한 균열을 식별하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예전부터 균열 판독 작업은 시간이 걸리고 지루하며 힘들기로 악명 높았다. 특히, 원자로의 많은 부문이 수면아래에 있고, 따라서 모니터링이 어렵다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퍼듀 대학에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원자로 외벽 균열의 98.3%를 판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람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적중률이다.

2019년 쉘(Shell)의 자회사가 된 영국의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기업 Limejump사는 에너지플랫폼을 바탕으로 수많은 혁신상을 수상한 벤처기업이다. 대규모 전기저장장치를 중심으로 약 1.5GW의 용량(2018년)을 보유하고 있고, 영국 보조서비스 시장(balancing mechanism)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7년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은 Sparkcognition사는 석탄화력발전소 성능강화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각종 센서 데이터와 운영데이터 및 다양한 분석 기법을 활용한 플랫폼을 개발했다. 일본의 Hazama Ando Corporation사는 수요예측, 분산자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단일 빌딩 혹은 특정 지역의 에너지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형 에너지관리시스템(AHSES, Adjusting to Human Smart Energy System)을 개발하기도 했다. 모두 인공지공(Artificial Intelligence)을 현장 과업(task) 실행에 활용한 사례들이다.

에너지산업 전반서 이미 활용 성과 가시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대중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된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AI'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특히 과업정의가 명확한 유틸리티 사업 분야는 의학이나 교육 및 마케팅 분야 못지않게 이를 적용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이미 에너지부문만 하더라도 너무 사례가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지경이다. 이는 원유 생산 및 정제 산업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판단 하에 주력 사업을 가스발전과 신재생사업으로 서서히 옮겨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석유메이저들의 최근 동향과 맞물려 향후 전력산업 및 에너지전환에도 중단기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인간지능과 유사한 기계 능력이다. 1955년 처음으로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단어를 사용한 MIT의 존 맥카시(John McCathy)는 록펠러 재단이 후원하는 1956년의 그 유명한 다트머스 여름학회를 통해 현대 인공지능의 아버지가 되었다.

당초 유사한 뜻을 지닌 'cybernatics'와 구분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단어 그 자체가 지닌 오묘한 생명력으로 많은 영화인들과 과학자, 엔지니어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공지능을 좁게 해석하면 바둑, 체스, 장기처럼 결과가 정해진 특정 과업을 인간처럼 수행하는 기계의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계학습, 즉 'Machine Learning(ML)', 자연어 처리, 컴퓨터비전, 대화인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계학습이나 딥러닝(Deep Learning)은 무엇인가? 아서 사무엘(Arthur Samuel)이 1959년에 처음으로 사용한 기계학습은 프로그램 없이 배우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계학습은 인공지능의 하위 개념으로 알고리즘을 활용해 대용량 데이터를 섭취한 다음 학습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이러한 패턴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이나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평상시 사고할 때 패턴을 인식하고 확률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을 이미 60년 전 인공지능 개발에 적용한 통찰력이 소름끼칠 정도로 놀랍다. 딥러닝은 최근 인공지능이 가장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이며, 기계학습의 하위 개념이다. 인공지능이 할아버지라면 아버지는 기계학습, 아들이 딥러닝인 셈이다.

딥러닝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신경망(Neural networks)을 활용하는 방식이며, 스스로 훈련시키기 위해 대규모 데이터 필요하다. 구조는 각 뉴런이 각각 별개의 계층(layer)를 가지고 다른 뉴런들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안면인식을 예로 든다면 각 뉴런은 얼굴의 특성(턱, 눈, 코, 입, 귀)을 구분 가능한 세부적인 각 계층(discrete layer), 즉 커브나 모서리, 직선 같은 구체적인 특성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deep'은 다중 레이어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망 운영·재생에너지·도전(盜電)방지·ESS와 연계
인공지능은 에너지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나아가 에너지 전환에는 어떤 파급 효과를 줄 것인가? 에너지 공급측면에서 본다면 석유·가스 등 생산량 증가와 설비 고장감소 및 근로자 안전 강화, 에너지 기업 수익성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능형 로봇을 활용한 석유 탐사 및 시추는 비용을 줄이고 근로자 안전을 높이면서 생산량과 비용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 1위 석유메이저인 엑손모빌은 전세계 80개 대학, MIT와 함께 2021년까지 해양탐사 AI로봇 설계할 예정이다. NASA의 큐리오서티 개발자인 브라이언 월리엄스(Brian Williams)가 개발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본다면 에너지 소비 최적화, 전기화 확산, 친환경차 확산 등에 인공지능이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리바운드(Rebound) 효과를 고려했을 때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지의 여부는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이 전력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수요예측을 들 수 있다. 실시간 수요예측에 기계학습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영국의 내셔널그리드(National Grid)와 구글 딥마인드가 협업중이며 국가 에너지 사용량 10% 감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발전회사의 경우 수익 최적화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 발전기에 대한 실시간 조정을 통해 발전기 효율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GE의 'Digital Wind Farm'은 터빈 운전의 감시·최적화를 통해 발전량을 20%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미 미국 최대 전력기업인 듀크파워(Duke Power)의 풍력발전사업에 적용하고 있다. 실제 풍력단지와 동일한 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실제 풍력 발전단지 운영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운영전략을 수립하는데, 100MW 풍력발전기의 경우 수명기간동안 1억 달러의 추가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인공지능을 기상예측에 활용하는데, 지능형 튜닝 메카니즘을 태양광·풍력 발전기에 통합하여 기상변화에 따른 수익 최적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발전량 증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예방적 정비 분야(predictive maintenance)이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전력설비와 오지·험지에 위치한 전력설비의 경우 시간절약과 근로자 사고위험 감소를 위해 드론이나 각종 센서 등을 활용해서 설비를 점검할 수 있는데,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드론은 문제를 자동적으로 파악하고 전력망 운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고장 예측이 가능한 수준에 와 있다.

특히 이러한 예방적 정비는 사소한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에 예방해 줌으로써 인공지능의 적용효과가 가장 큰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ESRI사의 경우 ArcGIS와 인공지능 결합하여 실시간으로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설비 예방정비에 활용하고 있다. 수요관리의 경우 기계학습으로 수요관리 자동화·스마트화가 가능하다.

영국의 Upside Energy사는 전력망 지원을 위해 기계학습과 에너지저장장치 활용하고 있다. Open Energi사는 전기소비에 유연성이 있는 장치들의 전력수요를 기계학습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리할 경우 수요 측에서 약 6GW의 전력이 활용 가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큰 이슈가 되지는 않겠지만 도전(盜電)방지도 주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브라질의 경우 전력판매량의 20~40%가 도전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도전 방지에 효과적일 것으로 알려졌던 스마트미터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캐나다 BC Hydro사는 도전량이 2006년 500GWh에서 최근 850GWh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도 약 60억 달러 규모 도전이 발생하고 있는데, 도난 재화 순위 기준 3위(1위 신용정보 2위 카드정보)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약 1000억 달러 손실 추정되고 있다.

기계학습을 통해 의심스러운 전력사용을 추정할 수 있으며, 브라질의 파일럿 프로젝트의 경우 65% 적중률을 보이고 있는데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조서비스의 경우 에너지저장장치 관리를 통해 수급 균형 유지에 기여하는 기업도 있다. 미국에너지부, 싱가포르 테마섹, GE벤처 등이 투자한 STEM사는 인공지능 아테네(Athena)를 활용, 에너지 저장장치를 통해 전력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2016~1017년 스위스의 'Sologrid 프로젝트'처럼 인공지능에게 배전망 운영을 위임하는 과감한 프로젝트도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입자가속연구소가 미국에너지부 전력망 현대화 사업(GMI, Grid Modernization Initiative)의 일부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SLAC GRIP(Grid Resilience and Intelligence Platform)이 그것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사이버테러, 자연재해 등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해 이러한 이벤트를 스스로 예측·대응 ·복구하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도움을 주는 플랫폼 개발(Autonomous Grid)이다. 다양한 데이터 소스를 머신러닝에 활용하여 극단적 기후와 배전망 사고에 따른 전력망 고장을 예측하는 사업을 실증하고 전력망 고장을 흡수하기 위한 분산전원 제어를 실증하며, 통신망에 영향을 주는 사이버 공격시에도 분산 전원를 제어하여 복구 시간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프로젝트에 참여중인 버클리 대학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으로서, 이벤트 발생시 자동적으로 망이 재구성되었다. 신뢰도 극대화를 위해 분산자원을 활용해 스스로를 자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전력망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큰 틀에서 보면 전력회사 입장에서 인공지능은 운영비용 절감·환경 및 안전 규제 리스크 감소, 예방정비에 따른 운영가시성 확보, 명확한 자산 건전성 정보 확보, 자본 및 운영투자 최적화, 비효율적 지출 최소화, 설비 상태에 대해 보다 세밀한 정보 보유 등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발전소에서 안전사고로 인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우리나라의 경우, 중후장대 설비와 핵심 인프라 설비의 실시간 안전관리를 위해 주요 과업 분야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전환 측면에서 본다면 인공지능 적용분야가 가스발전사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확산되고 석유메이저들도 해당 분야 진출을 확대함에 따라,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대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혁신이 에너지전환이라는 혁신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원래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4개의 바퀴와 하나의 운전대가 필요하다. 4개의 바퀴는 알고리즘, 5G, IoT(Big Data), Cloud이며 운전대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이다. 특히 이 가운데 5G는 실시간 가시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도 인공지능이라는 기술혁신이 에너지 산업에서 비즈니스 모델로 열매 맺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멀쩡한 기술을 가지고도 운전대가 없어서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채영진 전력거래소 전력산업연구원 부장 mahatma@kpx.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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