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전환 공언 불구 전력믹스만 건들다 시장혁신 실기
전문가들 "출발은 틀 바꾸기", "정부불신 자초했다" 지적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가스공사 저장탱크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가스공사 관계자들과 저장탱크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이투뉴스] “정권이 바뀐 지 2년이 되었는데 고치겠다던 경부하 전기료는 그대로이고, 천연가스 직도입 여건도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개혁하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안 지키면, 동기를 갖고 움직인 ‘퍼스트무버(First mover)’들이 바보가 되고,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된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정권 교체와 동시에 에너지전환정책 추진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가 오는 10일 출범 만 2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정책 혁신을 기대했던 산업계 안팎의 반응은 냉랭하다. 국가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공언하고도 지난 2년간 에너지시장에 아무런 개혁신호를 주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일각에선 “구조적 혁신을 건드리지 않아 관치에 의한 시장규제가 한층 고착화 됐다”, “어설픈 전략과 접근으로 전환정책에 대한 갈등만 야기했다”, “시장을 만들지 않고 자꾸 변칙으로 문제만 키웠다" 등의 혹평이 나온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자’ 문 대통령의 에너지정책 혁신의지는 언제, 어디서부터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걸까.

문 정부 출범 만 2주년에 즈음해 <이투뉴스>가 만난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현 정부 내 과감한 시장변화나 규제혁신은 요원하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기관 출신 한 민간기업 대표는 “전환의 출발점은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틀로 바꾸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학생 수준의 에너지·기후변화 이해로 국가에너지 문제를 접근했고, 그것도 홍위병 위주로 (정책을)캠페인화 한 것이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정책 타깃 설정과 인사(人事)까지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진단이다.

그는 “안티테크노크라트(anti-technocrat. 반기술관료) 인식이 범람했고, 무르익지 않은 에너지전환 공표로 공감대는커녕 오히려 갈등과 분열, 우려를 초래했다”면서 “공복이라면 제도나 산업, 비용, 기술에 대한 고찰까지는 아니라도 최소 갖가지 정책결정이 어떤 연쇄반응을 촉발할지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은 갖췄어야 했다. 인사 참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구태 에너지 시장규제는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한 에너지·전기요금 정치(정부) 개입, 진척 없는 에너지 과소비 산업구조, 폐쇄적·독과점 전력시장 등이다. 하지만 정부는 탈원전정책으로 촉발된 에너지믹스 논쟁에 빠져 이런 시장개혁에 무관심했고, 이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관료사회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졌다.

거듭 지적돼 온 정부 내부의 컨트롤타워 부재와 혁신의지 실종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전력시장에 정통한 한 정부 내부인사는 "다른산업은 잠깐 한눈을 팔면 금새 망가지지만, 에너지분야는 속도가 느리고 관성으로 가는 힘이 있어 그렇지 않아보인다. 문제는 방향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라며 "서둘러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 정부나 정권이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 정책 출구전략만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금까지도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재생에너지와 온실가스 비용이 불어나면 극도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정책의 결과를 연착륙 시키는 것도, 제도설계와 혁신도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불분명한 혁신의지로 이미 산업계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현 정부 청정에너지 확대정책과 연료가격 경쟁력 상승으로 전국적인 LNG복합화력 건설이 검토·추진되고 있으나 여전히 가스공사를 제외한 직도입사업자의 잉여물량 거래가 제한되고 있다. 가스공사가 유일한 독점사업자로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한 LNG화력의 상대적 경쟁력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현 정부 초기 최우선 개선과제로 지목된 원가이하 산업용 경부하 전력요금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않고 2년째 공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부하 요금 정상화와 LNG직도입 제도개선을 기대하고 자가발전소 건설에 나선 일부 전기다소비 대기업들은 정책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판알을 다시 튕기고 있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시장은 개혁적 동기를 갖고 참여한 사업자들에 의해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경부하 요금은 2년째 그대로이고, 여전히 가스직도입 물량은 물량이 남거나 모자라도 자유롭게 거래가 안된다. 이들을 지켜보는 두세번째 팔로워들은 역시 정부말을 믿으면 안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위원은 "에너지전환정책은 종합적인 틀에서 봐야하고 그런 정책철학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공정한 경쟁과 시장질서가 확립된다"면서 "정부는 전기위원회 독립등을 통해 공정경쟁과 소비자보호 두 측면만 보면 된다. 그런 게 조금도 진척 안된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역설했다. 지금이라도 단계적인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본부장은 "근본적으로 운영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진입규제와 가격규제, 제도까지 모두를 쥐고 들여다보겠다고 하는 건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어렵더라도 단계적으로 바꿔나가는 이행계획을 누군가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전력 소매경쟁이 어렵다면 판매시장이라도 개방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 시그널이 있어야 시장에서 투자계획이 세워지고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된다"며 "더 늦추면 안된다. 에너지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산업과 새로운 기술이 융합되기에 최적인 지금이 시장의 파이를 키워 부가가치를 창출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민간기업 한 CEO는 "에너지전환은 전근대적 에너지 공급체계의 판 전체를 뒤엎고 다시 짜는 일인데, 모두 과거 프레임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쟁력이 떨어진 공기업이 일을 벌리고, 그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 더이상 통용돼선 안된다. 문제는 현 정부서 그런 혁신의지가 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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