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병철 한국가스공사 러시아 프로젝트팀 팀장

 

필자인 한국가스공사 윤병철 팀장은 '러시아통'이다. 최근까지 러시아 최대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 파견근무를 수행했다. 그는 "세계 가스시장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우리나라와 인접한 동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은 양국간 가스사업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에너지ㆍ자원 현황과 향후 개발 계획을 현장 전문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엿봤다.

 


지하자원의 보고() '러시아'


러시아는 11개의 시간대가 존재하는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로, 그 면적은 한반도의 약 78배인 1708만㎢에 달한다. 우랄서부와 서시베리아 평원지역, 동시베리아와 남부 코카서스 산악지형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광활한 러시아에는 에너지ㆍ자원 역시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현재 러시아의 석유ㆍ가스는 세

계의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2006년 현재 BP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 석유의 확인매장량은 110억톤으로 세계 7%를 차지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은 세계 26%수준인 48tcm(1tcm=1조㎥)에 달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석유의 양은 2006년 기준 4억8000만톤으로 세계 2위이며, 천연가스 생산은 612bcm(1bcm=10억㎥)으로 세계 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지역에서 확인된 원유 및 가스매장량은 탐사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 많아 탐사활동이 본격화될 경우 더욱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러시아 잔존매장량은 석유 187억5000만톤, 천연가스 39tcm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BP의 확인매장량 수치를 크게 웃돌고 있어 추가 매장량 확인이 기대되고 있다.

 


서부지역에 편중된 러시아 가스개발

 

러시아에는 다량의 에너지가 매장돼 있음에도 그간의 에너지개발 사업은 주로 서시베리아를 포함한 서부지역에 머물러 왔다. 구소련 시절 국내 및 위성국 에너지수요 충족을 위한 에너지개발의 지리적 접근성과 함께 잘 발달된 서유럽 시장에 에너지 수출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러시아 가스사업은 1940년대 모스크바 남쪽에 위치한 사라토프 지역을 개발해 모스크바로 배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하는 것을 시초로, 60년대에는 키예프와 흑해 연안 가스전을 개발해 우랄 서부지역 주요 도시들에 가스공급을 확대했다.

 

이어 70년대에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국가들의 가스를 개발해 모스크바 및 우크라이나까지 공급했다. 서유럽에 대한 가스공급은 서시베리아 가스전이 개발되면서 1968년 오스트리아를 시초로 1969년 이탈리아, 1970년 독일, 1971년 핀란드ㆍ프랑스 순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러시아 가스공급 사업은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에 의해 운영되는 통합가스공급시스템(UGSS; Unified Gas Supply System)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UGSS는 서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4개의 수송로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 가스수송관 전체 길이는 15만7000km로 가압시설만 217개소에 이른다. 2006년 UGSS를 통해 수송된 가스의 양은  717.8bcm이며, 이 가운데 162bcm이 서유럽으로 공급됐다.

 

이는 유럽 전체 가스소비량의 25%에 해당하는 양으로 유럽 가스시장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수출되는 가스는 대부분 배관망을 거치고 있는데 이 중 약 80%가 우크라이나, 나머지 약 20%가 벨라루스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구소련 해체 이후 이들 국가와의 동맹관계가 약화되면서 가스 공급가격과 통과료 등에 대한 마찰로 인해 가스공급 분쟁이 발생, 러시아 가스수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이들 통과국을 우회하여 직접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배관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발틱해저를 경유해 독일까지 직접 연결하는 노르드스트림(Nord Stream)과 흑해를 횡단해 불가리아와 만나는 사우스스트림(South Stream)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시베리아 지역의 대규모 가스전이 점차 고갈현상을 보임에 따라 이같은 가스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 새로운 가스전 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을 세계 메이저급 에너지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006년 7월 러시아 정부는 천연가스의 독점 수출권을 가즈프롬에게 부여함으로써 가스사업에서의 가즈프롬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가즈프롬은 이같은 정책적 지원을 배경으로 국내외 에너지 상ㆍ하류 부문에서 기업인수 및 지분참여 등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례로 가즈프롬은 2005년 러시아 중견 석유기업인 시브네프트사를 매입, 석유사업에도 본격 진출하였으며 러시아 국영전력회사의 지분매입과 석탄회사 SUEK 합병 등을 통해 전력 및 석탄 산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전력생산 능력의 15%를 소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즈프롬은 기업인수를 통해 전력생산 연료인 석유ㆍ석탄ㆍ가스의 사용비율을 최적화함으로써 국내 및

수출가스의 안정적 확보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가즈프롬은 대규모 가스 공급국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유럽 가스 및 전력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유럽 국가에 가스수송 및 전력생산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물론 최종 소비자에게 이를 판매하기 위한 자회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2006년 기준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3000억 달러이며 종업원만도 50만명에 달하고 있다. 가즈프롬의 연간 가스생산량은 540~560bcm 규모로 세계 가스생산량의 20%, 러시아 국내 가스생산량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가즈프롬은 북동 바렌츠해의 쉬토크만 가스전과 야말반도, 카스피해 및 사할린 지역 개발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580~590bcm을, 2030년까지는 610~630bcm 이상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기지개 펴는 러시아 동부지역 가스개발 사업

 

동부 러시아의 원시 가스매장량은 전체 러시아의 27% 정도인 67조㎥ 이상으로 풍부한 상태다. 서부 러시아에 비해 탐사와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개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매우 낮고 인프라가 부족해 개발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태다.

 

이러한 러시아 동부지역 에너지개발을 위해 최근 러시아 정부는 이미 건설중인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사업과 함께 가스개발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러시아가 동부지역 가스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가스 고갈로 인한 생산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서시베리아 지역 가스전을 보완함과 동시에 그동안 낙후된 동부지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한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그동안 러시아 가스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으로 수출됨에 따라 지나치게 높아진 유럽 가스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아태지역으로의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러시아 정부는 동부지역 가스개발 사업을 위해 2002년 7월 가즈프롬을 동부가스프로그램 입안을 위한 조정자로 임명, 취약했던 이 지역의 가스개발과 수출사업을 정부의 의도와 통제 아래 추진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정부의 움직임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유가 인상을 계기로 체제안정이 가능해지면서, 에너지분야에서 민간비중을 축소시키고 에너지ㆍ자원의 국가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외 메이저들은 러시아가 대외채무에 시달리던 1990년대 중반 러시아로 몰려와 유전과 가스전을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매입했고 생산물 분배계약 등을 통해 이익을 보장받았다.

 

2000년 푸틴은 외국투자자와 생산물 분배계약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으나 이후 유가가 오르고 가스사업 환경이 유리하게 변화되자 그동안 헐값에 매각된 사할린-II 사업(쉘 운영권 소유)과 코빅타가스전(TNK-BP 운영권 소유)을 환경법 위반 등을 이유로 가즈프롬을 통해 재매입했다.

 

또한 러시아는 현재 사할린-I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전량 구매하기 위한 협상을 프로젝트 운영사인 엑슨모빌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사할린-III의 미분양 광구와 차얀다가스전의 개발권을 분양경매 절차 없이 가즈프롬에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등 동부러시아 지역의 가스사업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러시아가 분류한 전략적 유ㆍ가스전에 대해 외국인 지분 참여를 49% 이하로 제한하는 법안을 입법 중이다. 이렇듯 정부 통제하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동부지역 가스개발 사업은 지난해 9월 마침내 가즈프롬이 입안한 계획을 러시아 정부가 승인하면서 최종 확정됐다.

 

개발계획에 따르면 동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중 가스매장량이 풍부한  4개 지역, 즉 사할린, 야쿠츠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등에 가스생산센터를 설립해 가스를 생산하고, 각 생산센터간 가스배관 네트워크를 연결해 국내수요는 물론 아태지역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주요 수출시장으로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및 북미 서부지역이 될 예정이다. 가스 수출량은 배관사업을 통해 2020년까지 한국으로 12bcm(900만톤), 중국으로 38bcm(2850만톤)을 수출할 예정이며, LNG 사업을 통해 약 20bcm(1400만톤) 가량을 이들 시장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동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에서의 가스 생산량은 162bcm, 배관연장은 9000km, 예상투자액은 924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가시화되는 한-러 동부지역 가스 협력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러시아 동부지역 가스개발 사업 참여는 물론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0년 구소련과 수교 이후 동부러시아 에너지개발 사업에 관심을 가져오다 1992년 옐친대통령 방한시 사하가스전 공동개발을 위한 의정서를 체결했다.

 

이후 1994년 김영삼 전대통령의 방러를 계기로 양국은 사하공화국 가스전 개발 타당성 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가스전은 1995년 타당성 조사를 수행한 결과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돼 중단됐다.

 

러시아 가스개발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 우리나라는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코빅타가스전을 개발, 국내로 가스를 들여오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96년부터 자체적으로 예비 타당성조사를 추진했다.

 

또 2000년 가스공사와 중국의 국영석유기업 CNPC, 러시아 TNK-BP가 공동으로 참여해 본 타당성조사를 추진키로 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2003년까지 타당성조사를 수행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ㆍ자원개발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이미 추진중인 사업의 지분도 다시 매입해 국가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르쿠츠크 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 정부의 자원통제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가스 협력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03년 5월 양국 국영가스 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이 가스공급 및 가스산업 협력에 관한 협력협정에 서명하고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해 왔다.

 

2006년 10월에는 정부차원의 협력협정을 체결, 가스산업 분야에서 양국간 가스 협력사업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놨다. 이에 힘입어 내년부터 러시아의 사할린-II에서 생산되는 LNG가 연간 150만톤씩 20년간 도입될 예정이며 더 많은 양을 도입하기 위해 지금도 가즈프롬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도입시기와 물량은 러시아의 가스전 개발과 수송 인프라 건설 속도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나, 러시아 정부

가 동부 가스프로그램에 따라 세부계획을 수립 중에 있어 협상 진척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사할린-II 사업 외에도 향후 우리나라에 공급될 러시아 가스사업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도입될 가스는 사할린생산센터에서 파이프라인을 거쳐 하바로브스크~블라디보스톡까지 공급되고,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LNG로 액화수송 공급하는 방안과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병행 검토되고 있다.


동부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어서 양국간 가스사업의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따라서 향후 가스도입은 물론 가스전 공동개발, 가스생산ㆍ공급 인프라 건설, 가스화학공장 건설 및 운영, 생산물의 판매 등을 유망한 공동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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