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 (사)국회물포럼 부회장

▲한무영서울대학교건설환경공학부 교수​​​​​​​(사)국회물포럼 부회장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사)국회물포럼 부회장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등에 발생한 대형산불은 임야 17570ha을 태우고 천여명의 이재민을 만들었다. 소방당국과 군의 발빠른 대응으로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다. 관계하신 분들의 영웅적인 헌신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올 여름 장마 때 산불이 난 지역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과 관련된 재앙이 올 것이 예상된다. 물을 머금는 댐의 역할을 하는 나무가 불에 타서 사라지면서 댐이 없는 것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불이 난 지형에서는 유출계수가 높아져서 같은 양의 비가 오더라도 빗물은 두배 이상 많이 내려가게 되어 기존에 있던 수로나 하천 등 하류의 시설은 넘치게 된다. 또한 흘러가는 유량이 많아지면 운동에너지도 커져서 토양을 침식하게 되고, 그 결과 유실된 토사는 하천과 바다의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 나무가 사라져 식물의 증발산이 줄어들면 태양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간다. 그러면 다시 건조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겨울에는 지하수량은 적어지고, 그 물을 공급받지 못한 하천은 유량이 적어진다. 매년 봄 가뭄이 반복이 되는 이유다.

봄마다 발생하는 산불의 원인이 땅이 건조하기 때문이라면 미리 막을 수 있다. 만약 숲의 여기저기에 웅덩이를 만들어 빗물로 땅을 촉촉하게 만들거나, 계곡 주위에 물을 저장해 놓았거나, 문화재 등 주요 거점의 윗부분에 빗물을 받아서 모아 두었다면, 빨리 불을 끄든지 불이 번지지 않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1년 평균 강수량은 1300밀리미터로서 산지 전역을 1.3미터의 수영장으로 만들 수 있는 많은 양이다. 이 빗물을 잘 이용하면 산불을 예방하고, 홍수를 방지하고 하천의 건천화를 막을 수 있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산불 피해복구나 산불예방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시설을 만들 때 불과 물을 동시에 고려한 선제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 

2011년 슬로바키아에 산지의 빗물을 모아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한 사례가 있다. 홍수와 하천의 건천화를 대비하기 위해 산의 윗부분부터 나무나 돌로 계곡을 듬성듬성 막아서 빗물이 걸려서 빨리 내려가지 못하고 저류되는 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계곡에 자연경관과 조화되도록 흙을 파고 쌓아서 많은 웅덩이들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시골의 둠벙과 같은 개념이다. 웅덩이 한개당 300~500톤 정도의 규모인데 공사비는 톤당 3000원이 들었으며, 별도의 유지관리비가 들지 않는다. 계곡 하나에 이런 둠벙을 20~30개를 만들면 쉽게 수천 톤의 댐이 만들어진다. 산지의 경사면에도 주위 경관과 어울리게 빗물을 저류하는 3~5톤 짜리 웅덩이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시설의 장점은 복잡하거나 위험하지 않아서 지역주민들의 일거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사업의 결과 이 지역에서 상습홍수는 사라지고, 생태계가 살아나고, 지하수위가 복원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노원구의 천수농원에서 실제로 이러한 소규모 시설을 만들어 보았다. 산에 쓰러진 나무를 엮어서 계곡에 설치하니 13톤 규모의 작은 빗물저류시설이 만들어 진다. 또한 경사면에 등고선을 따라 50cm 정도 깊이로 길게 파 놓았더니 얕은 참호 형태로 되고, 거기에 5톤가량의 빗물을 저류해서 홍수를 방지하고, 지하수를 보충해주고 땅을 촉촉하게 해준다. 땅을 파는 공사로 20톤 규모의 빗물연못도 만들었다. 일주일만에 지역주민과 여학생들의 힘으로 쉽게,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8년 5월 제정된 물관리 일원화와 물관리 기본법의 실행에 따라 여러 가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관리가 논의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하천과 그 이후의 물’을 넘어 ‘하천 이전의 물’까지 관리하는 유역물관리다. 

단지 불탄 나무를 치우고, 새로 나무를 심는 기존의 산불복구 패러다임으로는 앞으로 다시 불이 나거나 홍수가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번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과 불의 관리를 통합한 산불방지 시설을 만들도록 하자. 즉, 산불피해지역을 복구할 때 산지 전역에 걸쳐서 소규모 분산형의 저비용 빗물저류 시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 지역을 잘 알고, 애착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스스로 복구하면 지역의 일자리도 만들면서, 지역에 잘 어울리는 시설들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매년 봄 걱정하는 건조주의보와 산불을 항구적으로 막을 수 있다. 

유역물관리란 유역 전체의 모든 물을(빗물도 포함하여), 유역사람 모두의 책임하에 유역주민 모두가 좋아할 물관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유역물관리가 불의 관리까지도 좋은 영향을 주어, 이번 산불피해 복구 및 예방을 하면서 다른 사회적 갈등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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