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출력 통제불능 사태 불구 12시간 늑장 정지 조치
전문가 "원자력 규제당국 책임 더 무거워, 진상조사 필요"

▲한빛원전 전경
▲한빛원전 전경

[이투뉴스] 전남 영광군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유사한 원전시험 중 출력 통제불능 사고가 발생했으나 원전 및 규제당국의 늑장대처로 원전정지 조치가 12시간이나 지체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원전 조종에 참여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까지 무면허자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비견될 심각한 사고"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20일 원자력 당국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9일 원안위로부터 재가동 승인을 받아 이튿날 오전 원자로 특성시험을 벌이던 한빛원전 1호기에서 시작됐다.

원자로 출력을 높이기 위해 핵연료를 덮고 있는 제어봉을 인출하는(들어올리는) 과정에 돌연 보조급수펌프가 저절로 작동했다. 10일 오전 10시 31분께 벌어진 일이다.

보조급수펌프는 평소엔 가동되지 않다가 주급수펌프가 기능을 잃는 비상 시 증기발생기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한수원은 당시 “원자로냉각재 온도 상승으로 증기발생기 수위가 올라가 모든 주급수펌프에 정지신호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조펌프 자동기동은 단순한 고장 징후가 아니었다. 당시 한빛 1호기는 원자로내 열출력이 운영지침서의 제한치인 5%를 3배 이상 초과해 18%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원전 전문가들에 의하면, 원자로는 저출력 상태에서 제어가 매우 어려워 자칫 출력이 폭증하는 열폭주 상태로 치닫기 쉽다. 열출력이 제한치를 초과했다면, 즉각 원전을 세워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란 뜻이다.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참사 역시 터빈 출력시험 중 제어봉을 조작해 무리하게 출력을 올리려다 짧은 시간에 원자로가 폭주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빛 1호기는 그로부터 12시간 가까이 더 가동된 뒤 오후 10시 2분에서야 원안위의 정지조치를 받고 멈춰섰다. 각 원전마다 상주하고 있는 원안위 파견 감독관과 원자력안전기술원 기술진이 사건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었는지, 적절한 통제·감독 업무를 수행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이처럼 중대사고가 발생했으나 원안위는 이를 일반 원전 고장정지처럼 대응했다. 원안위는 10일 자정이 다되어서야 한빛 1호기 원자로를 수동정지한 후 점검에 착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수원으로부터 보조급수펌프 자동기동 보고를 받은 즉시 사건조사단을 현장에 파견해 조사한 결과, 열출력이 순간적으로 제한치를 초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재발방지대책을 검토해 재가동을 승인할 계획"이란 내용이다. 당시 원안위는 열출력 초과수치도 공개하지 않았다.

규제당국의 이같은 대응은 사건발생 10일만인 20일 오전 돌변했다. 한수원이 원자력안전법을 위반한 정황이 확인돼 발전소를 사용정지 시키는 한편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특별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안위는 "한수원이 열출력 제한치 초과에도 원자로를 즉시 정지하지 않았고, 원자로조종면허가 없는 직원이 제어봉을 조작한 정황도 확인했다"며 엄중 문책을 시사했다.  

열흘전에도 열출력 제한치 초과사실을 파악했던 원안위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뒤늦게 표정을 바꾼 셈이다. 이에 앞서 한수원은 사고 책임을 물어 제1발전소장과 운영실장 등을 직위해제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한빛 1호기가 체르노빌 원전사고 직전까지 가는 중대 위험에 노출됐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노심의 출력과 증기발생기 출력간 편차가 발생하면 안된다. 이런 사실을 인지했다면 바로 정지시켜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면서 "체르노빌에 비견될 굉장히 심각한 사고다. 즉시 정지시키지 않은 한수원도 문제지만, 뒤늦게 정지시킨 원안위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안전제어 전문가인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규제당국 책임이 더 무겁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무자격자가 원자로조종을 했다는 건 원안위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체르노빌조차 무자격자 사고는 아니다. 운좋게 대형사고는 피했지만 출발은 체르노빌보다 더 최악인 사건"이라며 "현장 주재원이나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이런일이 벌어질 때까지 뭘 했는가. 충분히 예방가능했던 일"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원전운영 뿐만 아니라 규제감독에 대한 총체적 부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라면서 "한수원 책임자만 문책하는 꼬리자르기가 아니라 원안위의 적정처리 여부까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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