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한국구역전기협회 새수장 맡은 정영철 협회장
한전도 대규모 적자, 원가높은 구역전기는 망하기 일보직전

"미래에너지 최고의 테스트베드 불구 천덕꾸러기 인식, 정부 지원·제도 절실"

[이투뉴스] 구역전기사업(CES)은 일정 권역 내 전기와 열을 동시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한국전력공사를 제외하고 전기를 일반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곳은 구역전기업체 뿐이다. 구역전기는 에너지 융복합 사업의 전형으로 ‘전력+지역난방’을 동시에 공급할뿐더러 도시가스회사가 많은 만큼 가스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토탈에너지를 공급하는 미래사업 형태다. 2000년 초중반 너도나도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국내 에너지산업의 변종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극단적인 해석까지 등장한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단 한 곳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암울한 현실을 빗댄 말이다. 공기업이자 세계 최대 집단에너지사업자인 한난마저 고양 삼송과 서울 강남권 등 3곳에서 사업을 펼치지만 모두 신통치 않다. 한때 ‘컨버전스 에너지’의 총아로 불렸지만, 전기는 한국전력공사(한전), 열은 한국지역난방공사(한난)라는 두 공룡의 틈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국내 구역전기사업자는 모두 10개 업체다. 아니 최근에 사업포기를 선언한 짐코를 제외하면 9곳이다. 국내 구역전기사업자는 처음엔 15곳에 달했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자 하나 둘씩 빠져나가 9곳으로 줄었다.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사업자 중에서도 구역전기가 있지만, 계열사 내지 주주사에 공급하는 사례가 대부분일 뿐더러 산업단지 입주기업에만 공급하기 때문에 성격이 약간 다르다.

▲정영철 구역전기협회 회장
▲정영철 구역전기협회 회장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막장까지 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구역전기사업자들이 뭉친 한국구역전기협회의 새로운 수장을 맡은 정영철 협회장(씨엔씨티에너지 대표이사 부사장)은 기자를 만나자 한전 얘기부터 꺼냈다. 한전조차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원가구조가 훨씬 열악한 구역전기사업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다.

“설립 이후 단 한 곳도 흑자를 낸 구역전기사업자가 없다. 모회사 지원이 없었으면 이미 다 망했다. 내가 맡고 있는 씨엔씨티에너지 학하지구 누적적자가 200억원이고, 규모가 더 큰 삼천리(광명역세권, 46MW 규모)는 누적적자가 500억원이 넘었다. 구역전기사업자 전체투자비가 1조5000억원 수준인데 전체 누적적자가 4000억원이다.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이 정도면 버티는 것이 용할 정도다”

정 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전기요금부터 예를 들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당 300원 수준이던 연료비가 600원(한때 800원대까지 올라감)으로 크게 올랐으나 전기요금은 2005년부터 고작 13.8% 인상에 그쳤다. 손해를 안 볼 수 없는 구조다. 또 누진제 영향도 크다. 사실 주택용 수요가 70∼80%에 달하는 구역전기는 ‘누진제 따먹기’를 위해 시장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한전을 압박해 누진제를 3단계로 줄였고, 지난해에는 하절기 할인행사(연간 전기요금 11.6% 인하효과)까지 벌였다. 한전요금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구역전기사업자는 아무 이유 없이 한 해 30억원을 날렸다. 그나마 어려운 재정상황을 생각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처음 사업에 들어올 때 누진제는 당연히 사업메리트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정부가 누진제를 축소했고, 올해도 한 단계 더 줄일 것이라고 한다. 구역전기는 CHP 변동비(연료비) 및 투자비(고정비)를 포함하면 한전보다 전기요금 원가가 평균 150% 수준이다. 한전이 수 조원을 적자보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겠는가. 여기에 한전은 언제든 맘만 먹으면 보조금이나, 추경으로 손해를 보상해준다. 이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는 시장)’을 넘어 경쟁은 생각조차 못하는 구조다”

구역전기사업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전력산업구조개편과 관련이 깊다. 한전 독점시장을 바꿔나가기 위한 테스트베드 성격으로 처음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구역전기를 둘러싼 한전의 견제도 만만찮았다. 사업이 잘 돼 확대될 경우 양질의 수요처만 쏙쏙 빼 갈 수 있으니 일견 이해할만 하다. 구역전기가 어려워지자 또 다른 문제 제기가 나왔다. 어렵다면서 왜 구역전기를 계속하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힐난이 그것이다. 심지어 발전기 가지고 제대로 전력시장에 기여하기보다 수전전력으로 차액 따먹는 ‘얌체사업(?)’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정영철 구역전기협회장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 현장을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솔직히 기브업(포기)을 하려해도 길이 없다. 왜 집단에너지로 전환 안하느냐고 말하는데 대부분의 업체가 지역난방사업으로 전환해도 CP를 받을 수가 없다. 배전설비 투자비를 제대로 보상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기직판을 포기하고, 집단에너지로 전환해서 투자비를 보상받고, 흑자를 낼 수 있다면 당연히 넘어간다. 하지만 적자사업에서 또 다른 적자사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가 퇴로가 없도록 만들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구역전기업계의 오랜 숙원은 여타 발전사업자처럼 CP(용량요금)를 받는 것이었다. 정부도 구역전기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진즉부터 약속했다. 하지만 이상한 조건이 붙었다. 전력시장 운영규칙에 20MW 이상의 중앙급전발전기(선로가 다른 개별용량의 합은 제외)로 선을 그은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구역전기사업자는 지역난방공사와 삼천리, 부산정관에너지 3곳에 불과했다. 수용여부를 놓고 업계 내부에서 내홍이 발생했던 이유다. 결국 규모가 큰 사업자만 일부 혜택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구역전기사업의 현실에 대해 4가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사사불통’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지원은 물론 발전을 위한 제도조차 준비되지 않은데다 열요금은 한난으로 묶어놨고, 전기요금은 모두 한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열요금의 경우 그래도 한난대비 110% 상한으로 숨통을 열어줬지만, 전기요금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전기부문 복지요금과 과도한 송배전망이용료가 구역전기사업자를 괴롭히고 있다. 복지요금은 뱁새(구역전기사업자)가 황새(한전)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다. 송배전망이용료는 구역전기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견제하려는 속내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 평가도 나온다.

▲정영철 협회장
▲정영철 협회장

“최근 연봉 2억원이 넘는 김종갑 한전 사장도 전기요금을 깎아주는(필수사용량보장공제, 958만 가구에 4000원 할인) 등 왜곡된 전기요금 복지로 한전의 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한전은 덩치가 커서 버틸 수 있지만 우리는 더 심각하다. 작년의 경우 업계 전체적으로 28억원 넘게 손해 봤다. 자본금을 다 까먹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요금은 준조세에 가깝다. 집단에너지도 사업자별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다. 또 한전에 내는 송배전망이용료 역시 말도 안되게 높다. 우리 회사의 경우엔 심지어 연결송전망을 기부채납 했는데도 kWh당 17∼18원을 낸다. 전체 요금의 15%를 넘어선다. 처음 산정될 때보다 구역전기의 전체판매량(분모)이 늘어난 만큼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구역전기업계는 송배전망이용요금 현실화와 함께 복지할인요금의 경우 하루빨리 소요비용 전액을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구역전기사업자가 받아 공급하면 REC(공급인증서) 발급이 안되는 문제 역시 즉시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스로 연료전지발전소를 건설, 전기를 생산·공급해도 전력거래소로 전기를 보내지 않으면 REC를 발급받지 못하는 이상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또 정부가 계시별요금제 도입을 위해 추진 중인 스마트계량기(AMI) 투자비 역시 구역전기의 경우 전기사용패턴이 전혀 다른 만큼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구역전기를 비롯한 분산전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개선과 지원 필요성도 제기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MW 규모의 중소 열병합발전시설에 대해 발전차액지원제도, REC 발급 등을 통해 과감하게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국가 전체적인 분산편익을 고려해 비용보상을 하는 것이다. 정영철 회장은 “우리나라는 도심 한복판에서 MW당 40억원을 투자해 생산하는 전기와 MW당 10억원이 채 안되는 투자비로 원거리에서 생산하는 전기 가치를 똑같이 평가하고 있다. 분산전원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말 뿐이며, 무책임하다. 해안가에 발전소 다 짓고 국토는 어떻게 되든 말든 송전망 지으면 된다. 분산전원 하라고 해서 수요지 인근에 비싼 돈 들여 지었더니 망하기 직전인 게 구역전기사업이다”

정부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이어 3차 에기본에서도 ‘구역전기사업 내실화’라는 정책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에너지 프로슈머 및 소규모 중계사업자 양성, 가상발전소 확대, 마이크로그리드 전력망 구축 등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목표를 내걸었다. 모두 구역전기사업자가 실증 및 참여할 때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해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년까지 ‘분산전원 활성화 로드맵’을 마련해 바꿔 나가겠다는 의지만 드러냈다.

“정부가 추진하는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을 비롯해 다양한 에너지신산업 육성 등을 추진하는데 있어 구역전기는 두 말 할 나위 없는 최적의 테스트베드다. 하지만 구역전기사업은 제쳐두고 다른 곳에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다. 정부가 구역전기를 실패작이라고 판단했다면 퇴출까지 포함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혜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편익부터 제대로 보상해달라는 애기다. 더 늦기전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나가야 한다” 정영철 협회장은 마지막 일성은 조용했지만 울림은 컸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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