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적 제품을 내놓고도 거대기업의 자본과 정부의 묵인 아래 십수년째 사무실 월세를 걱정하고 계신 A사장님, 죄송합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같이 고민해 보자"던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꼭 그렇게 제목을 달아야 했냐, 너무하지 않느냐"며 전화주셨던 지식경제부 B사무관님, 죄송합니다. 자료를 받아갈 땐 '기사와 무관한 일'이라며 넉살을 떨더니 신문기사로 입장이 많이 난처해지셨을 줄 압니다. 사무관께서 느꼈을 배신감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연구원 C박사님, 역시 죄송합니다. 3~4년간 땀흘려 만든 연구보고서의 전ㆍ후 맥락은 다 빼놓고 입맛에 맞는 통계자료만 추려서 기사를 썼습니다. 박사님의 깊이 있는 분석이 담긴 보고서가 가십거리로 만들었습니다. 밤늦게 성심껏 설명해주시던 일을 떠올리니 면목이 없습니다.

 

에너지 양극화 문제를 취재한다며 세 평 남짓한 허름한 터전에 함부로 들이닥쳐 시시콜콜 가정사를 캐묻던 제게 지난한 삶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신 D선생님, 죄송합니다. 당장 난방비가 걱정인 빠듯한 살림에 도움은 못 주고 괜시리 마음의 상처만 준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빠가 많이 아파 입원해 계실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는 착한 딸 E양이 소망처럼 선생님이 되는 꿈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공단 F실장님,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낯을 붉혔던 G과장님 죄송합니다. 나름의 애로와 입장이 있으셨을 텐데 매번 비판만 퍼붓고 충분한 해명을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해명자료를 또 다른 기사의 소스로 활용하는 작태로 일관했습니다. 금명간 찾아뵙고 그간의 속사정을 경청하겠습니다.

 

<이투뉴스>가 첫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편집국 일개 기자는 이처럼 사죄드릴 일이 쌓여만 갑니다. 당

장 떠오르는 허물이 수두룩한데 저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받고 상심한 분들은 오죽 많겠습니까. 근신할 일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어떤 칭찬이나 격려보다 이 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속죄의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더 듣고, 한번 더 생각하고, 또 다른 입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센세이셔널리즘이 아니라 분석과 대안이 있는 기사를 위해 더 뛰겠습니다.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을 추구하기보다 열독률이 높은 신문, 흥미 위주의 기사보다 풍부한 정보와 깊이 있는 해설이 담긴 지면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투뉴스>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습니다. 심지가 곧은 신문은 기자나 광고주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만듭니다. 지금처럼 채찍과 응원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칭찬은 비판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에너지ㆍ자원계의 풍부한 칭찬거리를 전달하는 데 힘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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