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진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일단 믿어주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예의인데도 말이다. 지금은 퇴임한 과거 에너지 분야 공무원들과 이야기해 보면 정작 현직에 있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요금과 같은 가격문제이다. 요금인상이 어쩔 수 없었지만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해가 간다. 솔직히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공무원의 잘못된 생각이나 고집이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으로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40년까지 30∼35%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가격이다. 물론 에너지 가격체계를 합리화하고 에너지전환 이행을 위해 전력·가스·열 시장제도를 개선한다는 내용도 이 계획에 포함돼 있기는 하다. 그런데 잘 믿기지가 않는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발표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명박 정부의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한 ‘1차계획 평가’부터 시작했다. 과거의 에너지정책은 경제성장과 산업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본원적 기능에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특히 낮은 전기요금으로 전기에 수요가 집중되는 에너지 소비의 전기화 현상이 심화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내용 때문에 필자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말뿐이었다. 요금인상은 거의 없었고 에너지 시장의 왜곡은 더 심해졌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도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잘 믿기지 않는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실행계획이 아니다. 그대로 안 되어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이런 점에서 실제 공무원들이 신경 쓰는 것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발전소 건설허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진입규제 권한을 놓지 않기 위해 공무원들은 에너지기본계획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더 중요시한다. 에너지기본계획은 그대로 안 되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도 지난번처럼 좋은 말은 다 모아놓은 말 잔치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권고안에는 에너지 가격 합리화를 위해 독립적 규제기구를 설치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작 정부 발표에는 빠졌다. 전문가들이 권고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삭제한 것이다. 가격규제 권한을 놓기 싫은 정부가 이를 전담할 독립규제기구를 설치한다는 것은 말도 꺼내기 싫은 모양이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바로 며칠 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도 발표되었다. 크게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제1안은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것이고, 제2안은 현재의 3단계를 없애서 2단계 누진제로 줄이는 것이며, 제3안은 누진제를 없애고 연중 단일요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사실상 요금인상 없이 하계에만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제1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방안을 보니 에너지 가격은 올리지 않으면서 에너지 전환정책을 시행하고 누진제 구간을 확대해서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난다. 이제 한전의 적자는 더 커질 것이고 전력시장의 왜곡은 더 심해질 것이다. 정산조정계수로 한전과 발전회사의 수익을 재조정하려고 애쓰겠지만 한전이나 발전회사나 수익성 악화는 명약관화하다. 이번에도 에너지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소비자 눈치를 보고 있다. 

옳은 정책이라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당당하게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총리 수락연설에서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 줄지 묻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라고 호소했다. 에너지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국민들의 희생을 불러들이지 않으면서, 에너지전환정책을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것인지, 적자 투성이인 전력산업을 어떻게 정상화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진지하지 않다. 진지하지 않은 정부정책을 믿을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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