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합동 원인조사서 제조결함 확인 불구 뒷짐
전문가들 "운영기간 진행성 발화 불가피" 우려

▲분진-염수시험에서 ESS시험설비가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부
▲분진-염수시험에서 ESS시험설비가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부

[이투뉴스] “살아있는 시한폭탄이다. 특히 특정회사 배터리는…”

정부 차원의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결과 발표와 안전대책 강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향후 관련화재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당국이 특정기업의 배터리셀 제조결함을 확인하고도 어물쩍 이 문제를 봉합한데다, 운영기간 경과에 따른 진행성(進行性) 셀 발화사고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민간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에 의하면, LG화학 배터리는 이번 조사에서 음극판 접힘, 판 절단 불량, 양극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결함이 드러났다. 화재가 특정시기, 특정공장 생산 배터리에서 집중 발생했다는 지적<본지 1월 21일자 ‘ESS화재 절반 이상 LG화학 특정 배터리에 집중’>에 따라 동일 배터리를 확보해 겹겹이 쌓인 셀을 일일이 분리‧해체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극판불량이나 코팅불량은 초기사용 땐 문제를 드러내지 않다가 ESS 충‧방전이 거듭되면서 단락 등의 치명적 상태로 치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가 된 파우치형 셀은 알루미늄 등으로 코팅한 양극재 동판과 음극재 사이를 분리막으로 구분, 그 사이를 전해액으로 채우는 형태로 제작된다. 그런데 절단 불량 등으로 극판 단면이 날카로워지거나 미세 쇳조각이 되면 분리막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양극 접촉(합선)으로 순간 과다 전류가 흐르는 단락현상을 유발, 발화의 원인이 된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제기된 배터리 제조상 결함의 실체가 당국조사로 드러난 셈이다. 2017년 8월부터 올해 5월 26일까지 발생한 전체 23건의 ESS 화재 중 LG화학 배터리 비중은 13건에 달한다. 나머지 7건이 삼성SDI, 탑‧인셀‧레보 등 기타 메어커가 각각 1건을 차지하고 있다.

이중 LG화학 배터리를 적용한 사업 상당수는 2017년 말부터 이듬해초 사이 현장에 설치돼 상업운전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사위가 특정기간, 특정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로 조사‧시험 범위를 좁힌 이유다.

하지만 이어진 모사시험은 석연찮은 뒷맛을 남긴 채 성과없이 종료된다. ESS분야 학계 전문가와 산업기술시험원 등 9개 기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는 극판접힘과 절단불량을 모사한 셀을 만들어 180회 가량 충‧방전을 반복 수행했으나 셀 내부 단락은 없었다고 밝혔다. 배터리 제조결함은 확인했지만, 이를 모사한 실증에선 불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재 원인을 셀 결함으로 단정하기도, 제외하기도 애매한 발표다.

업계에 의하면, 배터리 모사시험은 6시간 단위로 하루 최대 2싸이클씩 최대한 충‧방전해도 180회까지 최소 3개월여(24시간÷충‧방전 12시간=1일 2회)가 소요된다. 5개월 남짓한 조사기간으론 시험이 불충분하다는 얘기다. 실제 화재가 난 배터리 대부분은 상업운영 6~18개월 사이에 발화했다. 여기에 충분한 시료가 동원됐는지, 상업운전과 같은 가혹한 시험조건이 부여됐는지도 베일에 가려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당국이 코너에 몰린 해당 배터리메이커의 난처한 상황을 감안해 '셀 결함은 발견했으나 모사실증에선 화재가 나지 않았다"는 모순된 결론을 서둘러 내리고 사태 봉합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사고조사 발표에서 "제조결함이 있는 배터리가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되면 (화재)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ESS업계 관계자는 "짧은기간 한정된 시료로 이뤄진 시험에서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고 문제가 없다 할 수 있나. 지난해 BMW 연속화재와 같은 맥락"이라며 "오히려 정부가 배터리회사 퇴로를 만든 게 아닌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위가 LG화학 배터리를 제조결함으로 정의한 배경과 해당결함이 향후 어떤 문제로 진행되는지, 발화가능성이 있다면 교체 등의 후속조치는 완료됐는지도 모두 의문부호"라면서 "만약 이런 문제가 완벽히 해소됐다면 이를 공식화 해야 한다. 최근처럼 제품을 교체해 놓고 향후 문제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징구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민관합동 조사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모든 리튬배터리는 수명기간동안 열화에 의한 화재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이번 안전대책을 포함해 장기운영에 대비한 별도 안전관리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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