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원 (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원 (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1. 시이불견(視而不見) : 보아도 보이지 않음

“왜, 전력산업이 바뀌어야 되나요? 지금 충분히 싸고 만족스러운데…”

얼마 전, 에너지 정책 토론회에서 한 참여자가 던진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력산업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전기는 싸게 공급돼야 하고 정전은 발생하면 안 되며 내가 쓰고 싶은 만큼 사용해야 한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에너지 전환’은 공허한 외침이고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에는 관심이 없다. 석탄,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갈등과 해당·주변 지역 사람들의 거센 반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의 우려는 과장이고, 비현실적인 공상과학(SF)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전 세계적인 노력과 그 일환인 환경 규제는 쓸 데 없고 귀찮게 하는 일일뿐이다. 무언가 변화를 이야기 하는데, 전기요금이 오를까 짜증나기도 한다.

전기는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람과 같은 전기를 싸게 사용할 수 있다니 참 좋은 일이다.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고 전달하는지는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전력산업을 생각하면 한전과 요금고지서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굳이 떠올리자면 전신주(전봇대)가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무리다.

전력산업의 현재는 “헤엄치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백조의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부력(浮力)을 만들어 물 표면으로 띄우고 있다”로 표현할 수 있다. 억지로 만드는 부력은 ‘특정 지역의 희생’과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바뀌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2. 번연개오(幡然開悟) : 모르던 일을 깨닫게 되다.

“모두들 기후변화가 존재론적 위협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이미 관련된 모든 사실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야 할 것은 정신 차리고 변화하는 것뿐입니다.”

그레타 툰베리, 가장 유명한 16세 환경 운동가의 TED 연설 내용 중 일부이다. 그의 외침은 유럽 전역을 넘어 우리나라에까지 전달됐다. 환경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청소년 기후소송단이 만들어졌고, 기후변화와 우리의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모아지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결국 우리 모두다. ‘에너지 전환’의 과거와 가장 차별되는 특징은 모두의 참여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에너지 용량을 늘리는 게 과거의 패러다임이라면 이제는 모두가 참여해 지속 가능한 삶을 지키는 게 현재와 미래의 패러다임이다. 전력산업의 미래상은 선명하다. 다수의 참여로 다양한 에너지 공급자가 출현하고, 에너지 효율과 수요 자원의 활용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다수의 참여가 에너지 전환의 원동력이라면,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도 시민의 참여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 대표가 국민의 관심 없이 결정하는 현재의 방식은 완전히 바뀔 필요가 있다.

2017년, 우리나라 최초의 숙의민주주의 실험이 신고리 공론화를 포함한 에너지 정책 수립에 적용됐다.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경험을 통해, 밀실 협의가 아닌 국민 지지 기반의 정책 형성과 긍정적 효과를 체험할 수 있었다.

5년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에너지기본계획에 주요한 안건에 숙의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어떨까? 일관성과 유연성이라는 상충되는 중요 방향의 접점을 국민에게 묻는 방식은 지나치게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 에너지 정책의 지속성 기반을 형성해줄 수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10년 전보다 크게 변화했다. 미래를 결정하는 방식이 과거의 것을 고수한다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갈 지(之)자 걸음으로 과거의 덫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의 에너지 정책이 말해주는 방증(傍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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