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최근 정부가 확정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는 에너지가격체계 합리화가 중점과제로 담겨 있다. 에너지 가격에 공급원가 및 외부비용을 적기에 반영하고, 에너지 원별·부문별 과세체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원별 구체적인 개편내용도 망라됐다. 먼저 전기요금의 경우 연료비 등의 원가변동 요인과 외부비용이 적기에 탄력적으로 반영되는 요금체계를 정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용도별 요금제는 원가기반 전압형 체제로 전환하고, 가격 신호를 통한 전력피크관리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가스요금은 소비자 수용성과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요금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원가주의 강화를 위해 원료비 연동제를 준수하고, 용도별 체계 합리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난방 열요금 역시 지역별 생산원가, 열생산 대체재 가격, 소비자수용성을 감안한 요금제로 개선하겠다고 정책방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정부가 제시한 에너지가격체계 합리화 추진계획이 제대로만 실현된다면 지금까지 흐트러지고 왜곡됐던 가격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체적인 정책방향도 제대로 짜였고, 원별 개편방안도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3차 에기본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에너지가격정책은 과거의 습성과 행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이 수조원의 적자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도 산업부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계획이 없다고 철퇴를 내렸고, 여름철 누진제를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전기요금 할인정책을 확정했다. 흡사 빚내서 잔치하는 꼴이다.

가스와 집단에너지 분야도 뒤죽박죽이다. 법으로 정하고 있는 도시가스 원료비 연동제가 1년 가까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가스공사는 1조원이 넘는 미수금을 떠안고 있는 등 과거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LNG 도입가격 상승에도 불구 도시가스요금을 움켜쥐고 제 때 반영하지 않아서다. 지역난방 열요금도 연료비 정산시기가 코앞에 다가왔으나 결론을 못 내리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 마디로 정부 스스로 만든 법을 정작 자신들이 어기는 형국이다. 

에너지가격이 포퓰리즘에 빠지고, 정치에 오염되면 3차 에기본의 핵심과제인 에너지소비구조 혁신도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 수요관리 등 에너지효율 분야가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것은 에너지 저가격 체제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가격이 원가조차 제대로 반영이 안될 정도로  낮은 상황에서 누가 효율을 끌어 올리려고 하겠는가? 왜곡된 에너지가격체계로 인해 특정에너지로의 쏠림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에너지가격을 이대로 끌고 가면 5년 후에 만드는 4차 에기본에 또다시 에너지가격체계 합리화라는 정책목표가 들어갈 것이다. 지키지 못하는, 아니 지킬 생각조차 안하는 국가 최상위 에너지계획. 대한민국 에너지정책의 민낯이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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