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주최 재공론화 토론회서 각계 한목소리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주최로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면한 고준위 핵폐기물 공론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토론회 장면 -에너지정의행동 제공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주최로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면한 고준위 핵폐기물 공론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토론회 장면 -에너지정의행동 제공

[이투뉴스]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한 뒤 발생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더 이상 임시보관할 곳이 없다면,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원전 중단(또는 동결)선언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역주민 희생을 요구하는 임시저장시설 건설로 상황을 모면하기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기소비자에 알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시 소재 월성원전 2,3,4호기는 임시저장시설 포화로 2021년부터 가동이 불투명한 상태다.

김수진 정책학 박사는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가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최한 ‘당면한 고준위 핵폐기물 공론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독일이 70년대말 원전사업자가 재처리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자 5년간 신규원전을 허가하지 않은 이른바 '원전 모라토리엄'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박사는 "핵폐기물 대안이 없으면 원전을 멈추더라도 대책을 마련하고 가야한다. 우린 지금까지 미루다가 포화가 임박하자 그 딜레마를 지역주민에 안기고 있다"며 "폐기물 대책이 없다면 핵발전소를 멈추란 얘기이고, 이건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잘못한 것, 정치권이 책임지지 않은 것 등을 다 꺼내 얼마라도 모라토리엄 기간을 가져야 국민이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의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비판과 제언’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도 기존 법제와 방폐물관리기본계획,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쟁점 등을 설명하면서 “정부는 당장 시급한 임시저장고 건설지로 월성원전을 꼽고 있으나, 경주는 2005년 중저준위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핵연료 관련시설은 건설하지 않기로 법으로 정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그런데도 정부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맥스터(임시저장고)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맥스터 건설이 좌절되면 2021년경부터 월성 2~4호기 가동을 멈춰야 한다는데, 원래 수명이 2027~2029년이다. 맥스터를 지어 더 운영하기보다 조기폐쇄해 핵폐기물을 줄이고 향후 대책을 수립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중수로 원전인 월성 2~4호기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2% 이내, 전체 고준위 핵폐기물의 절반 가량을 발생시키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가능여부까지 고려해 원전수명을 가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성희 녹색연합 전환사회팀장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인데, 재공론화위원회 출범에도 조용한 이유는 얘기를 꺼낼수록 불리한 찬핵 산업계 침묵 때문”이라며 “하지만 피해갈 순 없다. 전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팀장은 “핵발전소 수명은 발전소 설비수명이 아니라 발생한 핵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로 결정돼야 한다. 만약 (임시저장소가) 포화돼 가동할 수 없다면 가동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갈등을 피해 빨리 처리할 사안으로 보고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채 진행되는 공론화는 수순밟기일 뿐이다. 갈등봉합이 아니라 갈등을 드러내고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졸속 추진된 핵폐기물 공론화를 원점에서 재공론화하는 작업은 현재 지역주민 등 이해당사자를 위원회에서 배제한 정부결정으로 사실상 파행 운영되고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이날 발제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 논의 최종결과'에 의하면, 준비단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재공론화 목표, 항목과 의제, 순서 등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 또 지역의견 수렴범위, 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합의를 못이뤘으나 다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바통을 넘겨받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립적 위원구성안을 밀어부쳤고, 최근엔 준비단 정책건의서조차 부정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준비단의 합의사항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상홍 국장은 "재공론화가 시민사회의 요구와 지지로 추진됐으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외면받고 있다. 산업부는 대통령의 재공론화 공약 정신으로 복귀해 첫 단추를 다시 끼우는 작업부터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원전 주변지역은 무너진 대정부 신뢰회복이 재공론화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국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더 이상 한수원, 원안위, 산업부에 당하지 않겠다는 게 솔직한 영광사람들의 심정"이라며 "굉장히 민주적이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끄집어 내놓고 공론화해야 이후 결과에 대해 동의가 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재검토위원회 구성하면서 중립을 이유로 이해관계자를 뺐다. 재검토위원회가 전부 사퇴하든,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만들든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영태 경주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재공론화 준비단이 그토록 오래 준비했는데, 결론은 기계적 중립인사를 넣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하러 준비단을 수개월씩 운영했나. 정말 진지하게 할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1년만에 비전문 위원들이 무슨수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를 다룰 수 있겠나. 공부를 많이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그게 과연 대통령 의중인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한 위원장은 "경주에선 지금 탈원전한다고, 나라망한다고 (정부를)욕한다. 재공론화에는 관심도 없다. 그런데 임시저장시설이 들어오면 2070년까지 핵덩어리를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제발 월성 2,3,4호기를 세워달라. 지금 경주가 처한 지역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지적에 산업부는 재검토위원회 위원구성 시 중립성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는 원론적 해명을 내놨다.

엄재영 산업부 원전환경과 팀장은 발언기회를 얻어 "당시 재검토 준비단 정책건의서에 명시된 것처럼 합의가 안된 건 다양한 안에서 참고해 결정하라고 돼 있다"면서 "재검토 공론화 위원회는 가장 핵심적 의견수렴 대상인 국민과 원전소재지 지역주민의 의견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관리할거다. 그 과정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할 위원이 누구인지 추천받아 중립적 위원을 선정했고, 정부는 위원회가 자율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원만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영희 카톨릭대 교수는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이 있다. 중립이란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며 "시민사회 안에선 공론화에 대해 우려와 회의적 시각이 있다. 중립이 정말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배석한 정정화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강원대 교수)은 "위원들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고, 몰입도도 높지 않아 어떻게 이해시켜 드려야 하나 고민"이라면서도 "우리가 택한 중립적 프로세스는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으면 아무의미가 없다. 일부 우려처럼 정부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건 제 사전에 있을 수 없다. 산업부가 원하는 대충하는 공론화는 없다. 그 순간 제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고 결의를 내비쳤다.   

황대권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대표는 "문 대통령이 의지는 있지만 관료들을 잡지 못해 정책을 펴지 못한 게 2년째다. 결의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공론화 때 위원들 출석률을 체크해보니 2년간 50%도 안됐다. 무슨 공론화가 제대로 됐겠나. 이런 어마어마한 문제를 다루면서 위원들이 자기일을 하면서 위원회 활동을 한다?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밤잠없이 달라붙어도 될까말까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상홍 국장은 "공론화는 시간에 쫓겨선 안된다. 빠른 공론화란 없다. 임시저장고 포화에 너무 발목잡히지 말고 준비단에서 마련한 순서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헌석 대표는 "고준위 폐기물 문제를 알리려면 논쟁이 붙어야 하고, 그래야 이런 문제도 있었구나, 이게 포화되는구나, 이것 때문에 발전소가 멈출수도 있구나 알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맥스터 증설논란은 현 정부 탈핵정책의 중요한 지렛대"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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