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택용 누진구간 확대의 해석
[칼럼] 주택용 누진구간 확대의 해석
  • 노동석
  • 승인 2019.07.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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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위촉연구위원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위촉연구위원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위촉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국민들은 누진제 폐지와 주택용 전기요금 인하를 요구하고, 감사원은 ‘가구별 필수 전기사용량에 에어컨이 빠져있으니 개선하라’했다.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는 논의를 거쳐 여름철 누진구간 확대안을 산업부와 한전에 권고했다. 한전 이사회는 요금인하의 배임 여부를 고민하다 슬며시 필수사용공제의 폐지·축소를 끼워 넣고 권고안을 확정했다. 이번에 이사회를 통과한 전기요금 개편안은 지난해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여름철 할인 요금제와 같다. 개편안이 적용되면 대부분의 주택용 소비가구가 7,8월 2개월간 월평균 만원 정도 요금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

산업부는 전기요금이 결국 인상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통해 요금체계 개편방안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마디로 ‘에어컨 틀고 이번 여름 시원하게 보내세요’다. 한전이 통과시킨 필수사용공제의 폐지·축소에 대해서도 정부와 협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전 이사진들은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액투자자들은 이사진을 포함한 관계 당국 책임자를 ‘배임죄와 강요죄’로 고발했다. 누진제 개편안은 예상대로 진행 중이다.

사실상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이번 누진제 개편안을 보면서 몇 가지 짚어봐야 할 관점을 정리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첫째, 한전은 왜 원치 않는 전기요금 인하 결정을 했을까. 대규모의 적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요금인하라니, 사기업이라면 절대 불가능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기사업법에는 전기요금 수준을 ‘적정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것일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법을 어겨가며 요금을 인하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한전의 적자, 요금인하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우량기업이던 한전이 부실기업이 됐다’, ‘요금인하에 따른 부담을 한전이 떠안게 됐다’ 등의 기사를 내 보냈다. 그러나 한전은 우량기업도 부실기업도 아니다. 영업이익이 많이 발생했다면 원가보다 높은 요금을 받았다는 것이고, 영업손실이 났다면 원가보다 낮은 요금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적자가 발생한 작년도 실적을 기준한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한전은 B등급 ‘양호’를 받았다. 요금인하에 따른 부담을 한전이 떠안는다는 뉴스는 가짜에 가깝다. 적자 규모가 커지면 부채규모가 늘어날 뿐이다. 회사 실적이 나빠졌다고 한전 직원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도 않고 급여가 깎이지도 않는다. 보너스 수준을 결정하는 경영평가도 올해 결과를 보면 실적과 무관한 듯하다. 적자로 쌓인 채무는 언젠가는 소비자가 갚아야 한다. 한전을 우량기업이라 오판한 주주들만이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본다. 분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사들이 본연의 임무에 반해 요금인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의 전기요금 수준에서 주택용 요금을 인하하는 것은 정상적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2018년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kWh당 106원으로 산업용과 같아졌다. 누진제 개편안은 올해도 작년과 같이 산업용과 주택용 요금을 같게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부와 한전이 산업용 소비자보다 주택용 소비자를 우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주택용 전기요금은 산업용에 비해 훨씬 비싸다. 다른 나라의 전기요금 결정담당자가 전부 바보들도 아니고, 주택용 소비자를 호갱으로 보기 때문도 아니다. 그 이유는 주택용 공급비용이 산업용보다 높기 때문이다. 220볼트로 공급하는 주택용 전기와 15만4000볼트로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의 원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요금은 발생된 비용을 반영하여 책정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독일도 주택용 전기요금이 산업용의 2.5배 수준이다. 당연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을 높이고 주택용 요금을 낮추는 것은 상품가격을 높여 수출을 어렵게 하고 소비자 물가를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주택용 요금 인하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착시다.

셋째, 누진제 완화의 혜택이 모든 주택용 소비자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주택용 누진제는 고소득층이 더 많이 내고 저소득층은 적게 내도록 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기대하는 제도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전기요금 누진제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그래도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월 200kWh 이하 소비자 중에 저소득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월 400kWh 초과 소비자 중에 고소득층 비율이 높은 것은 여전히 팩트다. 에어컨 보급률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에어컨 없이 여름을 지내는 가정은 여전히 있다. 만일 한전 이사회의 의결대로 누진단계는 확대하고 필수사용공제를 폐지했다면, 소액주주로부터 소송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고소득층의 시원한 여름을 위해 저소득층의 요금을 높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이 한전의 적자가 누적돼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되면 전기요금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다음번 요금 조정 시에는 원가 이하 공급이 의심되는 주택용 요금이 우선적인 인상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한전은 요금할인으로 유보된 비용을 그 때 회수할 것인데 이번에 혜택을 받는 소비자만 골라서 요금을 인상하는 방법은 없다. 요금제의 개편 방향에 따라서는 이번 여름을 시원하게 보낸 소비자가 받은 혜택을 모든 소비자가 나누어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2040년까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시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얼마 전 확정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다. 에너지를 아끼고, 효율적으로 써서 에너지 수요를 대폭 줄이는 것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 봐도 ‘편하게 에어컨 켜세요’와 ‘전기 아껴쓰세요’는 상반되는 말이다. 에너지다소비와 에너지의 낭비적 소비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낮춰진 요금을 다시 올리기는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요금인하도 충돌한다. 2016년 대폭적인 누진단계 축소 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다. 누진단계 축소는 옳은 방향이지만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국민들이 자가용, 소규모 발전사업자가 되려는 동기를 위축시킨다. 누진제 완화는 높은 누진단계의 요금 인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분산형전원이라 생각되는 자가용, 소규모 태양광발전을 위축시키는 것은 에기본과 방향성이 다르다. 독일, 일본의 소규모 태양광 사업이 활발한 이유는 지원제도뿐 만 아니라 전기요금이 비싸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1600만 가구에 두 달간 만원, 총액 3000억원 정도의 요금 할인. 전체 경제규모로 보아 결코 크지 않은 규모의 요금 조정이지만 생각해 봐야 할 측면은 적지 않다.

외상이지만 혜택을 받는 소비자와 전기소비가 늘 것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높아질 수 있어 친원전론자들은 은근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한전은 부담스러워 한다. 소액주주들은 화가 났지만, 정부는 국민의 바람을 들어주고 감사원의 지적을 해소하려 했다. 올여름만 잘 지내면 미래도 잘 될 것이다. 혹시 이렇게 생각들 하시는가. 늘 주장이 강한 환경론자와 에너지전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웬일인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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