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절차 무시한 막무가내式 민원에 곳곳서 피해 막심
정부·지자체 줏대 없이 매번 후퇴로 일관…사태 더 키워

[이투뉴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단민원으로 집단에너지업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피해를 앞세운 지역주민 민원으로 인해 이미 완공된 열원시설이 멈춰서 있는 것은 물론 대안으로 짓는 열병합발전소 건설마저 반대에 직면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역주민의 집단민원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끌려 다니면서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민요구를 들어주면 당장은 문제를 피해갈 수 있지만, 이 추세로 갈 경우 에너지 기반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내포신도시 555MW 발전소 저지 주민대책위원회’는 내포열병합 용량이 당초보다 5배 이상 많아져 유해가스 배출 등 환경피해가 우려된다며, 환경영향평가를 중단하고 발전용량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 “충남도가 주민들에게 발전용량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은 채 밀실행정을 통해 주민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충남도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폐기물 고형연료(SRF) 사용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집단민원이 오랫동안 이어지자 연료를 LNG로 전환, 495MW의 열병합발전소와 연료전지 60MW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부-주민-사업자 간 합의로 일단락됐던 내포신도시 집단에너지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발전용량 문제로 재점화 된 것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의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년 전에 건설을 완료하고, 시험가동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나주시와 주민들의 반대로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생활폐기물 연료가 대기오염물질을 내뿜고 냄새까지 유발하는 만큼 LNG로 연료전환을 하도록 공사를 압박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환경영향 및 주민수용성 조사를 통해 가동여부를 결정한다고 의견을 모았으나, 2000억원이 넘는 매몰비용에 대한 처리와 광주시 쓰레기 반입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거버넌스 무산위기까지 몰렸다. 한난이 매몰비용 및 향후 운영비 등 손실보전 방안이 사전에 합의되지 않을 경우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GS포천그린에너지가 추진하는 포천 집단에너지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3월 열병합발전소 등 집단에너지 공급시설을 완공했으나, 주민민원을 이유로 포천시가 준공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일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포천시 공기를 망치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거나 LNG로 연료전환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GS측은 의정부지방법원에 준공허가 지연에 따른 ‘위법행위(행정부작위)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 법적 다툼에 나섰다. 포천시장까지 나서 발전소 가동을 완강히 반대하자, 주민설득을 비롯해 더 이상 정상적인 절차로는 쉽게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들 집단에너지사업은 모두 제도와 규정에 따라 정부 및 지자체로부터 허가를 받는 등 법적 하자를 발견하기 힘든데도 자꾸만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주 및 내포 SRF의 경우 해당 지역 생활쓰레기 자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또는 지자체가 먼저 제안한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와 지자체는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슬금슬금 물러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 내포신도시의 경우 법원이 행정부작위라며 산업부에 후속조치를 촉구했지만 주민동의를 받으라는 조건부 허가를 내줘, 연료전환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빌미를 제공했다.

법과 절차는 무시하고 내포신도시 집단에너지사업의 연료를 SRF에서 LNG로 전환하자 둑이 무너진 것처럼 여타 사업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착공 전이던 내포와 달리 이미 발전시설을 완공한 곳의 가동까지 막아선 것이다. 특히 포천의 경우 석탄발전소 절대반대만 외칠 뿐 기존 저급 유류 연료를 쓰는 염색업체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주지 인근에 들어서는 열병합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모두 집단이기주의와 님비(NIMBY)현상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정부는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도록 사전에 폐기물 발전이나 소각 등에 대한 철저한 배출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사업자 역시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에너지업계는 제도 개선과 국민 설득보다는 우선 급한 불만 끄자며 사업자를 압박, 연료전환을 유도하는 대신 발전용량을 키워주는 정부와 지자체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지역주민들이 해당 사례를 들어 다른 지역 사업까지 압박하는 등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SRF나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시설이 아닌 재생에너지인 바이오매스 또는 LNG·LPG를 쓰는 사업으로까지 점차 집단민원이 퍼져나가고 있다. 서울에너지공사의 마곡열병합, 한난의 양산열병합, 청라에너지의 김포열병합은 물론 LPG로 연료전환을 추진하는 곳까지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집단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밟아 허가를 받고, 규정을 지켜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사업자가 오히려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주민이라기보다는 정부와 지자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반대민원이 SRF와 석탄으로만 한정될 것이란 희망은 너무 안일하다”며 “떼법이 모든 것에 우선해서는 에너지는 물론 국가 인프라 전체를 제대로 구축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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