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보고서 작성한 마티아 로마니 "GDP 1% 투자로 경제재앙 예방 가능" 역설

 

"알려진 아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알려진 모르는 것들이 있

다.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또한 우리가 모르는 모르

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다."

 

(There are known knowns: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owns.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ings we don’t know we don’t know.)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 '기후변화의 경제학'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하던 마티아 로마니(사진) 영국 스턴팀 수석연구원이 퇴역한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의 발언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는 "기후변화처럼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기후변화는 대응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싸움이다. 방위산업과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 있다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 않으면 2050년 각국이 GDP의 5~20%를 기후변화 대책 비용으로 지불하게 될 것이란 영국 니컬러스 스턴경 팀의 '스턴보고서(Stern Review)'의 실무책임자로 활동해 온 그가 이날 방한했다.

 

기후변화센터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주한영국대사관 등이 공동 주최한 특별강연 참석을 위해서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기후변화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준비를 해야 한다"며 "만약 세계 각국이 매년 GDP의 1~2%만 투자하면 2050년까지 CO2 농도를 550ppm 수준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며 한층 강화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적나라하고 객관적인 보고서'란 찬사와 '지나치게 과장된 보고서'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스턴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국내 산업이 기후변화가 몰고 올 경제학적 재앙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짚어봤다.

 

▼ "GDP 1%냐, '지옥'이냐" = 마티아 로마니의 설명대로라면 600페이지에 달하는 스턴보고서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대로 지구온난화를 방치하면 2050년에 이르러 전 세계는 GDP의 5~20%를 기후변화 대응에 쏟아부어야 하고, 지구 온도가 3℃ 상승하는 550ppm(CO2)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GDP의 1%를 비용으로 쓰면 된다.

 

그렇다면 인류가 뜻을 모아 후자를 이행해 온도 상승을 3℃ 이하로 제한한다면 지구촌은 재앙을 피할 수 있을까? 적어도 대재앙은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로마니 수석연구원은 "3℃가 상승하며 인구 절반이 식량난과 물부족, 극단적 이상기온을 겪게 되지만 그 이상일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대도시 침수, 작물 급감으로 인한 '지옥'이 연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를 경제학적 '외부요인'으로 정의한 그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면 알게 모르게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면서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은 미래 세대의 가치를 생각하는 윤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GDP 1% 내외로 투자하는 것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특히 새로운 시장이 창출돼 많은 윈-윈 요소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시급한 분야는 에너지 부문이란 설명도 눈길을 끈다. 스턴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CO2는 전력생산에서 24%, 수송과 산업부문이 각각 14%, 건물부문이 8%, 기타에너지 부문이 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비에너지' 부문에 속하는 농업부문은 14%, 토지개발 18%, 폐기물 3% 순 등이다. 마티아 로마니는 "2020년 CO2 농도 500ppm을 달성하려면 매년 전 세계가 1인당 2톤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며 "한국의 경우는 지금보다 80%를 감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와 한국의 대응 = 로마니 수석연구원은 "경제 구조적 변화는 승자와 패자를 분명히 가른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승자란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선 부문이나 유리한 부문, 패자란 감축에 미온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체질변화가 쉽지 않은 부문을 일컫는다.

 

그는 "기업 규모나 감축 성과에 따라 사업등급이 바뀔 수 있다"며 "이는 어디까지나 '제로섬 게임'으로, 가능한 한 규모를 키워 승자를 많이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온실가스 집약적인 123개 부문을 상대로 탄소 저감비용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2% 이상 비용이 증가하는 부문이 19개로 나타났다고 그는 소개했다.

 

이중 석유, 정유, 발전, 시멘트, 비료, 어업 등 6개 업종은 5% 이상 부담이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이들 산업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해당 부문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셀, BP, 도요타, 혼다, GE 처럼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팔거나 기술 이전 등을 통해 재정적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산업을 기준으로 향후 5% 이상 비용이 증가하는 분야는 가스공급(28%), 석유정제(24%), 발전ㆍ송전(19%), 시멘트(9%), 화학비료(5%), 수산업(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체제가 본격화되면 연간 12조 4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석탄화력을 천연가스나 원자력으로 전환하면 각각 연간 5조, 12조원 가량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CO2 집약도를 낮춤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며 "연구개발을 통해 위기를 전환해 시장을 선점하면 패자가 승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저탄소 체제로 전환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볼 때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서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일수록 올바른 길을 택해야 하며, 활발한 대정부 활동을 통해 정책 수립시 업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한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38위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 비해 매년 배출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에너지다소비 업종이 경제를 이끌고 있고, 그나마도 이미 에너지 효율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여서 추가 감축이 쉽지 않다.

 

로마니 수석연구원은 "효율, 비효율 산업을 구분해 정책을 추진하고 탄소세 도입, CDM체제 개혁, 산림훼

손 방지, 기술개발 등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강연을 경청한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지구상에 산적한 환경문제는 많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같은 위험은 없다"면서 "기후가 1℃ 상승하면 쌀 생산량이 10% 감소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목표도 없다"며 정부의 현실적 목표 수립을 촉구했다.

 

 ■ Mattia Romani …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로 세계은행을 거쳐 쉘 그룹에서 CO2 감축 정책과 미래 에너지 분석 및 전략을 담당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스턴보고서 팀에 합류해 수석 경제학자로 미래 탄소시장과 연결된 국제적 재정 흐름과 경쟁력에 관한 분석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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