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이종영] 우리나라는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화력발전, 원자력발전, 신재생발전 등에 필요한 건설·운영기술은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의 매장량은 지질적인 특성과 관련돼 있어 국가와 국민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활용한 발전과정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은 각종 기술과 설비의 연구개발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에너지분야의 국가경쟁력은 해당 국가에 매장된 에너지원과 이를 활용하는 기술수준을 통해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원의 매장량이 거의 없음에도 에너지의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에너지원의 부족을 에너지시설 등에 대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력으로 극복한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정부도 에너지분야의 기술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해 연구개발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공공부문의 에너지분야 연구개발비는 매년 약 2조원씩 투입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2019년도 산업부와 17개 에너지공기업이 각각 7697억원, 1조216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예산을 확보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연구개발의 성공률도 평균 90%에 이르고 있으나, 연구 성과가 상업화되는 비율은 약 5%에 그치고 있다. 연구개발과 상용화 사이에 연구개발과정과 비슷한 정도의 노력과 재원의 투입을 필요로 하는, 소위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실증시험의 장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분야의 연구개발을 통해 성공한 기술은 실험실에서 성공한 기술이고, 실제 운영되는 발전시설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실증시험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험실에서의 연구는 제한된 조건에서 결과를 도출하나, 현장은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상황에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증시험연구는 연구개발에 성공한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이 상용화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며, 이때 검증을 거친 기술과 제품만이 비로소 상용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에너지분야의 실증시험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적·물적 기반이 형성돼 있지 않아 성공한 연구개발기술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전력기술과 같은 에너지기술과 발전설비의 부품은 연구·개발에 성공한 후에 실증시험연구 과정을 거쳐 안전성과 성능성을 검증받아야 비로소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연구개발과정을 거친 전력기술과 관련된 혁신부품은 다른 과학기술이나 산업기술과 달리 현재 가동 중인 발전설비에서 실증시험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개발에서 성공한 전력기술이나 부품은 검증되지 않아 가동 중인 발전설비에서 실증시험연구를 쉽게 할 수 없다. 발전설비의 운영자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과 부품을 적용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발전설비의 비정상적인 작동, 효율성 저하 또는 환경오염 등과 같은 발전설비의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리스크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이 마련되어야만 비로소 실증시험에 발전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발전설비의 운영자 입장에서는 당연지사이다. 공공부문에서 에너지분야의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성공하더라도 실제 상용화되는 기술이나 제품이 적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원인에 있다. 최근 화석연료를 전력으로 전환할 때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열효율이 40% 초반에 정체돼 있는 주된 원인도 에너지효율 혁신기술 개발에 따른 실증시험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제도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분야의 기술혁신을 위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실증시험연구를 위한 정책과 제도의 구축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장된 에너지원이 부족한 대신에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혁신으로 이를 상당하게 극복하고 있다. 에너지효율혁신, 이산화탄소의 감축, 미세먼지의 저감 등과 같은 에너지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개발정책과 더불어 실증시험연구를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책도 수립해야 한다. 에너지분야의 기술은 산업용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산업기술에 속한다. 산업기술은 상용화되지 않으면 기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이제 에너지분야의 연구개발정책은 실증시험연구의 활성화를 통해 죽음의 계곡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도록 제도적 다리를 설치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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