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요즘 에너지 공기업들의 임원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도 훌륭한 대졸 신입사원들이 들어왔으나 최근에는 그 인재들의 스펙과 능력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공기업에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에너지 공기업에 점점 더 훌륭한 인재들이 몰리고 있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이런 우수한 신입사원들의 이직률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많이 아쉽다고 에너지 공기업 임원진들은 고백한다. 또한 회사를 떠나지 않더라도 몇 년 후에는 갓 입사했을 때의 패기와 열정은 사라지고 풀이 죽은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공기업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에 더하여 우리 공공부문의 성격상 공기업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똑똑한 신입사원들이 눈치채기 때문이다.

최근 신입사원들은 이른바 ‘90년생’들이다. 요즘 베스트셀러인 임홍택(2018)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보면 90년생들은 권위주의적인 기업문화에 혐오를 느낀다. 속칭 ‘꼰대’식의 훈계를 싫어하는데 공기업 이곳저곳에 넘쳐나는 ‘꼰대’들은 이들을 지치게 한다. 이 책의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 90년대생 신입사원들은 ‘칼퇴’라는 말부터 잘못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정시 퇴근이란 것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엄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공기업에 만연한 보여주기식 업무에 대해서도 염증을 느낀다. 말로만 고객을 외치고 사실은 상사를 최우선 고객으로 모시는 위선적인 모습에 새로운 세대는 매우 비판적이다. 형식에 빠져 낭비되는 시간들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사장보고도 아니고 임원에 보고하는데 보고자료를 41번이나 수정해서 ‘ver.41’이 나오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입직원들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는 에너지 공기업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대부분의 에너지 공기업들도 주말 끼고 연찬회나 MT를 다녀오는 것, 등산대회나 체육대회의 개최도 금기시한다. 심지어는 저녁에 부서 직원들이 함께 회식하는 것도 젊은 직원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최소화한다. 게다가 주 52시간 근무시스템이 정착되고 이른바 상사의 ‘갑질’에 대한 내부고발도 있어서 오히려 부서장이나 팀장이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부처의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규제와 속박을 알아가면서 젊은 사원들의 낙심은 ‘태생적 한계’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칸막이식 규제로 마음 놓고 다른 사업으로 진출할 수도 없고, 규제대상인 가격의 인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정원과 예산은 물론 인건비, 출장비, 회식비까지도 일일이 규제되어 있고 1년 내내 자체감사, 주무부처 감사, 국회 국정감사와 때때로 감사원의 사안별 질의와 감사에 시달린다. 상여금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영평가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청렴도 평가, e정부 평가, 고객만족도 평가와 더불어 일자리 창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지역경제협력 등 공기업으로서 눈치 봐야 할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아침마다 에너지 관련 기사를 살펴볼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에너지 공기업의 준 광고성 소식이다. 채용박람회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중소기업 구매 상담도 친절히 벌이고, 벤처 사업자들을 여러모로 돕고, 임직원들과 반부패 청렴문화 행사를 벌이고, 공공기관 혁신사례를 발표하고, 창업지원 교육을 개최하고,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등과 같은 소식들(인증샷 필수!)이다. 이런 노력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에너지 공기업을 포장하고, 경영평가에 대비하며, 정부정책에 잘 따른다는 화장술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가장 본질적인 일은 못 하고 부수적인 일에 매달리는 것에 젊은 신입사원들은 염증을 내고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에너지 공기업에 입사하였지만 정작 정부규제와 공공부문 규제로 회사가 민간기업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젊고 패기 있는 사원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분야와 상품을 개척하고, 독점에서 벗어나 경쟁을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되지 못해 비명 지르는 우리 에너지산업과 그 소비자들이 내쉬는 한숨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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