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임기응변식 대책에 산업계도 '속앓이'
배터리제조사 특수소화시스템도 실효성 논란

▲18일 국회에서 열린 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성윤모 장관과 간부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성윤모 장관과 간부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투뉴스] “불이 왜 나는지 밝히지 않고 불이 나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배터리업체들의 대책 정도만 나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불은 계속 날 수밖에…”, “정부가 미래 신산업 핵심인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국민안전을 운(運)에 맡기고 있다. 발본색원의 자세가 아니라면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ESS 화재에 대한 정부차원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자 각계 전문가들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부실한 사고조사로 1년을 허송한 정부가 또다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처가 갈길 먼 이차전지 산업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ESS화재에 대한 명확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책을 촉구하자 지난 6월 사고조사결과 발표 이후 추가로 발생한 3건의 화재에 대해서만 별도 사고조사단을 꾸린 상태다. 부실조사 논란이 일고 있는 기존 23건의 화재에 대해선 재조사 계획이나 추가조치도 없다는 게 원론적 입장이다.

반면 책임 회피에는 민첩한 모습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이달 초 산업부 국감에서 인명사고 위험이 높은 다중이용시설 ESS 가동여부를 묻는 한 야당의원 질의에 “이미 가동을 중단시켰다”고 즉답했다. 하지만 실제 산업부가 가동중단 명령공문을 이들시설에 발송한 건 최근 들어서다. 일단 위증으로 상황을 모면한 뒤 슬그머니 행동을 취한 것이다.

정부 내부 대응상황에 밝은 학계 관계자는 “산업부가 2차 사고조사위를 구성하는데 까지만 관여하고 직접 참여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방향은 자기들이 정하고 나중에 책임은 지지않겠다는 얘기”라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문재인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실정(失政)을 산업부가 만들고 있다"고 직격했다. 

정부가 미적이는 사이 코너에 몰린 배터리 제조사들은 부랴부랴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 14일 긴급설명회와 발표를 통해 자사 배터리 모듈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특수 소화시스템을 추가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글로벌 제조사로서 일단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산업 생태계 복원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들업계가 내놓은 대책 역시 근본적 화재 예방대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차전지 전문가인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제조사들의 이번 대책은 중단기 대책으로, 셀 하나 정도의 화재는 몰라도 셀 단락이 일어났거나 이미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승온(昇溫)된 경우엔 소용이 없다"면서 "향후 정부 차원의 장기대책은 반드시 모든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차 조사도 새로 불이 난 3개 사업장만 조사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회가 주도권을 쥐고 ESS 보급정책의 적정성, 정책 설계과정, 전지업체나 인증기관 등 이해관계자 인증시험평가 적정성까지 두루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하나마나한 조사로 또다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고 지적했다. 

전기안전 전문가들 역시 배터리 제조사들의 자체 소화시스템 실효성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효과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리튬전지 특성상 화재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견해다. 배터리제조사들의 이번 안전성 강화 대책에 투입되는 비용은 삼성SDI만 최대 2000억원이다. 

사고조사위 시험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소화액으로 불꽃을 일시 진화할지 모르나 일단 열폭주가 일어나면 사그라졌던 불꽃이 10~20분 뒤 다시 살아나 큰 불로 이어진 사례가 많다"면서 "자체시험과 인증시험만으로 효과를 장담하는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서 개발된 나노타입 유사 소화약제가 이미 전기분전반 등에 적용되고 있지만, 이를 ESS배터리에 적용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화재재발은 시간문제로 본다"고 경고했다.

전기·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제3의 독립기관이 실험계획법(Design of experiment)으로 시스템 관점에서 원인규명에 나서지 않는 한 ESS화재의 근원적 해결은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엔지니어링전문기업 관계자(공학박사)는 "현 ESS는 리튬배터리, EMS·BMS(에너지·배터리관리시스템), PCS(전력변환장치) 등의 핵심 구성품 특성을 전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스템만 구성하는 조립산업 수준"이라며 "누군가가 시스템 컨트롤러가 돼 그들의 책임 아래 ESS가 설치·운영하도록 해야 배터리결함이든 다른 이유든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 부문이 기초정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정보가 정확한지, 제대로 작동하는지다. 지금은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제대로 된 외부검증을 받은적도 없다"면서 "제3 기관에 권한과 책임을 주고 처음부터 다시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그런 뒤에 REC지급방식이나 SOC(충방전률) 적정성 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에너지 전문가는 "빠른 시간내 결론을 내겠다는 조바심으론 안된다. 시간이 1년 이상 소요되더라도 제대로 설계하고 준비해야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어쭙잖은 대처와 위기관리로 특정산업이나 기업이 공중분해된 사례는 많다"면서 "정부가 4차 산업의 핵심인 ESS산업과 국민안전을 이런 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이 알게된다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냐"고 꼬집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특수 소화시스템은 ESS 화재를 막아줄까'. 삼성SDI가 지난 14일 긴급 안전성 강화대책을 발표할 때 공개한 배터리 셀과 모듈.
▲'특수 소화시스템은 ESS 화재를 막아줄까'. 삼성SDI가 지난 14일 긴급 안전성 강화대책을 발표할 때 공개한 배터리 셀과 모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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