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사업장 안전성평가동서 공개 강제 발화시험
"화재 나도 소화시스템 작동, 100% 안전 확신"

▲허은기 삼성SDI 시스템개발팀장(전무. 오른쪽)가 ESS배터리용 특수 소화시스템 소화약제(주황색)를 설명하고 있다. ⓒ삼성SDI
▲허은기 삼성SDI 시스템개발팀장(전무. 오른쪽)가 ESS배터리용 특수 소화시스템 소화약제(주황색)를 설명하고 있다. ⓒ삼성SDI

[이투뉴스] "시작해!"

두터운 실험실 철문이 닫히자 투명 고글을 쓴 허은기 삼성SDI 시스템개발팀장(전무)의 지령이 떨어졌다. "강제 발화시험 시작!" 현장요원이 복창하듯 어디론가 무전을 날렸다.

60~80cm 두께 콘트리트로 격리된 실험실 안쪽 상황이 대형 모니터를 통해 외부로 생중계 됐다.

이윽고 송곳 형태 강철심으로 상단이 뚫린 ESS(에너지저장장치) 모듈(셀집합체)이 '팡!'하는 폭음과 함께 맹렬하게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모듈내 셀(리튬전지) 중 하나를 고의로 파손, 단락을 유발한 것이다. 8.3kWh 용량의 모듈은 전압 90.3V(볼트)로 만충상태. 셀이 에너지를 가장 많이 품은 때다.

허 전무는 "이렇게 해도 불은 나지 않는 걸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당사 셀 문제는 아니지만, 국내 ESS 산업을 회복시키기 위해 선제적인 대응방안을 찾아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성SDI 울산사업장 안전성평가동. 모듈&팩 실험실 #1(1번) 앞에서 발화시험을 지켜보던 취재진의 시선이 일제히 내부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화면으로 쏠렸다.

시험 전 21℃로 출발한 타깃셀(파손시킨셀) 온도가 삽시간에 306℃까지 치솟았고, 실험실 내부도 짙은연기로 가득찼다. 하지만 통상 리튬셀 단락 시 나타나는 불꽃은 십수분(分)이 지나 반응이 사그라질 때까지 목격되지 않았다.

최근 삼성SDI는 모듈 상부 플라스틱 외함 내부에 특수 소화약제를 장착했다. 주황색 고체 플라스틱 형태의 이 소화제가 각형 셀 벤트(Vent. 내부 기화가스가 분출되는 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에 반응, 지속적으로 캡슐내 약제를 터뜨리면서 불꽃을 억제한 것이다.

이때 셀과 셀 사이에 삽입된 운모(Mica) 재질 차단제는 문제가 발생한 셀의 고열(高熱)이 인접 셀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호벽 역할을 했다. 이날 시험에서도 인접 셀은 온도가 85~91℃까지 올랐다가 자연냉각했다.

ESS용 배터리는 보통 단락 시 10~15분 가량 에너지를 내뿜은 뒤 반응을 멈춘다. 이 시간을 인접 셀이 견딜 수 있도록 해주면 연쇄 폭주나 대형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

반면 이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은 동일 모듈 비교시험은 위험천만했다. '펑'하는 폭발음과 동시에 용광로처럼 불티를 쏟아내더니 이내 플라스틱 외함을 태웠고 얼마 뒤엔 인접 셀을 과열시켜 또다른 셀 폭발로 이어졌다.

실험실 내부를 비추는 모니터 화면이 단숨에 시뻘건 불길로 가득 들어차자 시험팀이 소화제로 진화를 시작했다. 최근까지 이어진 ESS 연쇄 화재 과정이 실험실 내부에서 재현된 것이다. 물론 실제 현장에선 이런 극단적 외부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는 없다.

허은기 전무는 "만의 하나 화재가 나더라도 이제 이렇게 소화시스템이 작동해 99.9%, 100% 안전하다고 확신한다"면서 "셀 문제는 아니지만 천재지변에도 안전하게 ESS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빨리 한국 산업 생태계가 회복돼 기술 경쟁력을 갖고 세계시장을 다시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SDI가 작심하고 자사 속살을 내보였다. 이날 오후 자사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인공 발화 시험테스트와 셀 생산라인 투어를 통해서다. 지난 14일 긴급설명회를 열어 '고강도 안전대책'을 발표한지 9일만이다. 그만큼 ESS 화재로 인한 산업 생태계 붕괴를 위중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ESS로 산업 생태계를 일으켜 그걸 바탕으로 (세계로)뻗어나갈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국내서 화재사건이 발생해 그것이 시스템 문제든 어쨌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한 뒤 "(자사)9건의 화재에 대한 모든 상황을 분석해 외부충격에 의한 것은 이미 1차 방어조치를 완료했고, 이번 2차 조치도 이달내 완료화겠다"고 말했다. 

전 사장은 "천안사업장과 기흥사업장이 울산사업장보다 더 가깝고 크지만, ESS 시험을 위한 방폭 실험은 쳄버(Chamber)가 있는 울산에서만 가능해 굳이 먼 곳으로 오시게 했다"면서 "국내 산업 생태계가 하루 빨리 복원돼 세계를 리드할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ESS 화재 원인규명이 차일피일 지체되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제조사들의 이같은 공세적 대응이 시장 국면전환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국내 ESS시장은 최근까지 이어진 연쇄 화재로 올초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그럼에도 삼성SDI는 약 1500억~2000억원을 투입해 기존에 설치된 모든 자사 ESS 배터리에 특수 소화시스템을 설치키로 했다. 삼성SDI는 매출의 약 70%를 배터리 부문에서 내고 있고, 그 중 절반은 전기차·ESS 같은 중대형 전지 몫이다. 울산사업장은 연간 7000만~8000만개의 각형 셀을 생산하고 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허은기 전무(왼쪽)가 열 확산 차단재(좌측)와 이미 적용된 외부 고전압·고전류 차단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허은기 전무(왼쪽)가 열 확산 차단재(좌측)와 이미 적용된 외부 고전압·고전류 차단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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