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상상해본다. 만약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가 아니었다면 우리 에너지정책은 기존처럼 유지되었을까. 매년 1기 꼴로 원전을 증설하고, 전국에 송전탑‧송전선을 새로 깔고 석탄발전을 계속 늘려나가는 일들이 과연 가능했을까. 어떤 정권이든 그렇게 할 순 없었을 터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우리 전력망은 그런 거대 발전설비들을 추가 수용할 여력이 없다. 지금 강원권에 건설하는 신규 석탄 4기와 원전 2기(신한울 1,2) 상황이 단적인 예다. 새 송전선로 완공전까지 최소 수년간 개점휴업이 불가피하다. 그마저도 언제쯤일지 기약하기 어렵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이 육상 초고압직류송전설비(HVDC)의 정상운영 여부는 별개다. 도로도 없는 맹지에 덩그러니 호화주택을 지은 셈이다. 제 아무리 원전‧석탄 원가가 저렴하다 해도 무선(無線)으로 전력을 실어나를 순 없다. 그런 맥락에서 터도 닦지 않은 계획원전을 철회한 결정을 ‘탈원전 폭주’라 하는 건 심한 비약이다. 부탁컨데, 앞으로 원전‧석탄을 계속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실현가능한 송전대책부터 제시하면 좋겠다. 2만2000볼트 전신주 배전망도 여유가 없어 수십kW단위 태양광도 계통접속이 어려운 게 2019년 한국의 전력망 현실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높이는 정책은 어떤가.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개도국이나 후진국, 우리와 에너지수급 여건이 유사한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명색이 세계 12위 경제대국인데, 최소 이 정도 체면치레는 해야하지 않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후대의 뒷감당도 생각하지 않으면 원전도 당장 쓰기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연료자체가 불필요한 태양광‧풍력만큼 에너지자립과 안보, 온실가스 감축에 두루 기여하는 발전원이 될 순 없다. 기실 문 정부의 과오는 이런 보편적 에너지정책의 방향성이 아니다. 에너지전환을 단순한 전력믹스 조정 정도로 인식해 수치와 가격논쟁으로 담론이 흘러가게 방치한 책임이 더 크다. 초장부터 '탈원전', '탈석탄'이란 자극적 용어로 기득권의 전의를 불타게 한 것도 실책이다. 보수언론과 공동운명체가 된 그들이 사활을 걸고 정책의 발목을 잡는 빌미를 줬다. 그보다는 최대 다수 국민이 전환정책의 이해당사자이자 주체가 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데 힘을 쏟았어야 했다. 물론 그 전략과 경로는 반도체 회로처럼 치밀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정책 목적지에 유망 신산업과 지속가능한 일자리, 그리고 절체절명의 기후위기를 벗어날 출구가 있음을 강조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에너지전환은 낡은 시장제도와 산업구조를 혁신·재편하는 정치적 결단을 요구한다. 이대로 가는 상상은 참담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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