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황유 시장 하루 200만배럴·1억6천만달러 규모까지 확대돼
S&P글로벌플래츠 “아시아에서 가장 잘 준비된 것은 한국 정유사”

[이투뉴스]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항행 선박연료유 황함유량 규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해상 규제는 육상배출 규제에 비해 늦게 시행되는 편이지만, 이번 규제는 그만큼 해운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치로 손꼽힌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2020년 IMO 선박연료유 SO2 기준 강화에 따른 영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해운 벙커링 연료유는 전체 수송용 석유 수요의 7%를 차지하는 반면, 전체 SO2 배출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규모순으로 따질 경우 상위 15개 선박에서 배출되는 SO2와 NOx 배출량이 전세계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총량보다 큰 상황이다. 크루즈 선박 1대가 1일 배출하는 미세먼지는 자동차 100만대 배출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선주들은 황 함량이 3.5%인 기존 고유황유(HSFO)에서 0.5% 미만인 저유황유(VLSFO)로 적합한 연료를 사용하거나, 배출가스 처리장치인 스크러버를 장착하는 등 대응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IMO2020이라는 큰 파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을까?

▲SK에너지 울산CLX 내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 공사 현장.
▲SK에너지 울산CLX 내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 공사 현장.

◇ 기존보다 30% 비싼 저유황유, 국내 정유사 앞다퉈 설비증설

최근 저유황유는 기존 선박유보다 약 30%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IMO2020 이후 저유황유 수요 증가에 따라 두 제품 간 가격 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 관련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에너지에스펙츠는 오는 2020년 전 세계 해상연료유 수요 하루 300만배럴 중 저유황유 점유율이 50%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보고 향후 하루 200만배럴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저유황유가 배럴 당 80달러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하루 1억6000만 달러 시장이 열리게 된다.

에너지 정보제공업체 S&P글로벌플래츠 역시 2020년 1월 IMO 2020 선박연료 규제 강화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65달러까지 상승한 후, 2020년말에 60달러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는 IMO2020 대응을 위해 SK울산CLX 내에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가 1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감압잔사유(VR)를 원료로 경질유 및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이 설비는 2017년 11월 약 1조원을 투입해 착공했다.

설비를 연결하는 배관 길이만 240km로 북한산 백운대 높이의 287배에 달하며 토목 공사를 위한 콘크리트 부피도 2만8000㎥에 이른다. 전기, 계장 공사에 들어간 케이블 길이도 서울-울산 거리의 3배이며 설치된 장치들의 총 무게도 15t 관광버스 1867대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다.

건설에 투입된 각종 설비들의 크기만큼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돼 33개업체, 일평균 1300명, 누적 88만명의 근로자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SK에너지가 울산시와 체결한 ‘지역 일자리창출 MOU’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감압잔사유탈황설비는 고유황 중질유를 원료로 저유황 중질유, 선박용 경유 등을 하루 4만배럴까지 생산할 수 있다. SK에너지는 시험가동을 마친 후 3월부터 저유황유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SK에너지는 감압잔사유탈황설비를 통해 환경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환경분야 사회적가치 창출 가속화에도 이바지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제품 수출 및 트레이딩 전문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은 9월부터 아태지역 저유황유 공급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SKTI는 '해상 블렌딩 사업'을 일평균 약 2만3000배럴에서 2020년 9만배럴까지 4배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감압잔사유탈황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SKTI는 하루 13만배럴의 저유황유를 공급하게 된다.

또한 SKTI는 정부기관과 체결한 '친환경설비(스크러버) 설치 상샌펀드 조성' 협약을 통해 19척의 선박에 스크러버를 설치하고, 국내 중소업체와 스크러버 장착사업을 진행함으로써 국내 관련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는 11월부터 신기술을 적용한 초저유황선박유 판매에 들어갔다. 현대오일뱅크는 특유의 중질유 처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도화설비 일부에 신기술을 접목, 저유황유 생산공정으로 변경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선박유 브랜드 ‘HYUNDAI STAR’를 11월 선보이고 대산공장에서 하루 5만배럴 제조할 수 있는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혼합유분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아스팔텐 성분을 독자적인 용제처리 방법으로 완벽히 제거하는 세계 최초의 신기술을 이번 공정에 적용했다. 아스팔텐은 필터, 배관 등의 막힘을 야기해 선박의 연비를 떨어뜨리고 심할 경우 연료의 정상주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혼합유분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현대오일뱅크는 다양한 유분을 폭넓게 배합해 초저유황선박유 수요 증가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기존 설비를 활용해 투자비를 최소화하고 시장수요에 맞춰 기존 모드와 초저유황선박유 생산 모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S-OIL은 5조원을 투자해 2018년 4월 완공한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를 가동함으로써 그 준비를 끝마쳤다는 평이다. RUC는 원유에서 가스, 휘발유 등을 추출하고 남은 잔사유를 처리해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설비다. 또한 잔사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중질유 탈황설비(RHDS)를 증설하고 있다.

중질유 탈황설비 증설은 S-OIL이 진행하는 슈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산설비 처리량 증대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 등을 목표로 한다.

GS칼텍스는 저유황유 생산설비를 새롭게 짓기보다는 기존에 생산하던 저유황유의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특히 자사에서 사용하던 저유황유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저유황유는 판매함으로써 수익성 강화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는 최근 최대 주주인 쉐브론USA로부터 LNG를 공급받기로 했다.

또한 일 27만4000배럴의 고유황 중질유를 휘발유, 경유 등의 경질유로 전환할 수 있는 GS칼텍스 여수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국내정유사의 준비태세에 최근 S&P글로벌플래츠는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에서 내년부터 있을 저유황유 시장에 가장 잘 준비된 것은 한국 정유사”라며 “한국 정유사들은 이미 저유황유 생산 극대화 준비를 끝마쳤다”고 밝혔다.

▲Ship to Ship LNG Bunkering을 실시하고 있는 선박.
▲Ship to Ship LNG Bunkering을 실시하고 있는 선박.

◇ 정부는 LNG벙커링으로 연관산업 활성화 지원

정부도 IMO2020에 대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2017년 7월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발표하고 친환경 선박의 건조기술 개발과 대체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해운 조선 상생을 통해 해운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범부처 합동으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친환경·고효율 선박 신조 지원에 들어갔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11월13일 ‘LNG벙커링 인프라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2018년 5월 ‘LNG 추진선박 연관산업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정부는 서해권역 LNG벙커링 인프라를 구축해 IMO2020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LNG는 기존 선박연료인 벙커C유보다 황산화물(SOx) 100%, 질소산화물(NOx) 80%, 미세먼지 90%를 저감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국내에는 현재까지 11척의 LNG 추진선박이 운영(운항 예정 포함)되고 있다.

LPG, 에탄올, 수소연료 등도 논의 중이지만 기술구현 측면에서 LNG 추진선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LNG 저장탱크 면적이 두 배 이상 필요해 화물적재용량이 감축되고 LNG벙커링 인프라의 제한, 기존보다 20% 이상 비싼 신조선가 등은 LNG의 발목을 잡지만 정부는 연관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는 정유업계도, 정부도 IMO2020을 대비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유례없는 큰 파도에 내년 한 해, 문제없이 헤쳐나갈 수 있기를 업계는 기다리고 있다.

김진오 기자 kj123@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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