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
서해 관측소서 온실가스 급변 확인 30년간 연구 천착
"기후위기 근본원인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국가책임"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이투뉴스] “안면도가서 1년쯤 쉬다 와라” 인사권자(기상청장)에 자주 직언(直言)한 대가는 외딴 연구소로의 발령이었다. 2005년 국립기상과학원 안면도기후감시센터. 조천호 당시 기상연구소 과장의 새 근무지는 태안반도 서쪽 끝자락에 들어선 작은 관측소였다. 20여년간 ‘기상판’에서 날씨만 다루다 기후연구를 맡은 것도 처음. 하지만 격지 생활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예사롭지 않은 온실가스 변화를 직접 확인했다.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그에 대해 설명해주는 이도 없었고 스스로 설명하지도 못했다. 이태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후연구에 천착한 이유다. 지난 21일 서울 통인동 에너지전환포럼 ‘공간 1.5’에서 조 전 원장을 만났다. 그는 ‘번잡하게 흩어진 앎의 조각들을 모으고 연결해(책 서문 中)' 작년 3월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를 펴냈다. 2016년부터 신문과 웹진 등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 최근 기후변화 대중강연 요청이 쇄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과학은 물론 역사,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당면한 기후위기를 쉽게 풀어 설명해 줘 반향이 뜨겁다.

 

-15년 전 안면도에 내려가 확인한 건 무엇인가

“그전까지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왜 그런 시설(기후감시센터)이 있을까, 그냥 연구하는 곳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변화가 확확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내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직관적인 느낌과 인식으로 깨닫게 되어 아는 것과 그 차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조금만 더 오르면 큰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가을철엔 하루에도 20℃가 변한다. 우리보다 10℃ 낮은 북쪽나라에서도 잘 살고 있고, 반대인 남쪽나라도 살만하다. 그런데 왜 문제라는 걸까.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나 스스로 굉장히 답답했다.”

- 기후변화와 거리가 먼 분야는 아니잖나

“논문에서 기후변화는 ‘악기상(惡氣象)이 많아진다’, ‘재해성이 많아진다’ 정도로 표현된다. 그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내외 관련서적과 논문을 모두 찾아봤다. 그러면서 스스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갔다. 당시만 해도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가 1990년대에 1차 보고서 낼 때 21세기말이 되면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을 경우 산업혁명 이후 평균기온이 4~5℃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IPCC 보고서는 5~6년마다 업데이트 되는데, 그 내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문제는 그게 급변적으로, 굉장히 파국적인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지난해(2018년) IPCC보고서가 중요한 건 1.5℃ 이상일 때부터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경고한 거다.”

- 재앙으로 달려가는 속도가, 시간이 짧아졌다는 뜻인가?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니다. 파국이 1.5℃ 이상일 때도 시작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인 내용이다. 과학으로 미래를 예측할 때 항상 불확실성이란 게 있지만, IPCC는 사실 매우 보수적인 곳이다. 전 세계 기후과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만 보고서에 담긴다. 그러다보니 설령 합리적이더라도 누구나 인정하기 어렵다거나 검증이 안 되는 건 실지 못한다. 그런 부분을 미래 예측 시뮬레이션에 넣지 못한다. 가령 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릴 위험이 있다거나, 북극해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끓어오를 수 있다거나 그런 모델을 (시뮬레이션에) 걸 수 없다. 다 빠져 있다. 또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 계산 역시 두께가 2~3km에 달하고 폭이 수천km인 것을 표면부터 녹는다고 가정하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수면이 20cm가 올랐으니까, 앞으로 금세기말까지 90cm가 더 오르는 상황이 시나리오상 극단이다.”

-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사탕을 입안에서 녹이면 천천히 오래간다. 그건 과학으로 온도 등을 측정해 정확이 계산할 수 있다. 빙하가 녹는 것도 그렇다. 문제는 그 빙하가 불안정해져 깨지고 쪼개지는 상황이다. 입안의 사탕을 깨무는 순간 표면이 늘어나 순식간에 녹는다. 그런데 우린 빙하가 언제 어떻게 깨질지 모른다. 그런 건 예측의 범주 안에 없다. 그런 걸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 예측모델을 쓰고 있다. 우리의 예측은 운에 맡기는 수준이다. 지금 예측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위험 수준이다. 거기에 더해지는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과학에선 검증도 안되고 불확실한 것은 시뮬레이션에 넣을 순 없으니 다 뺐다. 현재의 위험이란 건 그런 거다.”

- 2018년 인천 IPCC 총회는 어쨌든 1.5℃ 이내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예측모델로도 1.5℃ 상승에 파국이 온다는 뜻이다. 온도가 조금 더 오르면 폭염이 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단 0.5℃만 올라도 식량부족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3500만 명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0.5℃가 더 올라 2.0℃가 되면 농업생산량 변화가 크게 일어나 3억60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만약 3.0℃가 오르면 그 수가 18억 명에 달하게 된다. 이건 어떤 한사람 연구결과를 정리한 게 아니다. 여러 연구결과를 모아 정리한 거다. 그런 기아사태가 벌어지면 사회 불안정은 어떻겠나.”

- 0.5℃ 변화가 그렇게나 위험한 건가

“시리아 난민 사태는 2010년 러시아 가뭄으로 밀가루 가격이 몇 달 새 60% 폭등하면서 시작됐다. 이미 2005년부터 가뭄이 들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는데, 소득의 대부분을 식량구입에 사용하던 가난한 이들이 가격 폭등을 참지 못해 폭동을 일으키고, 그게 내전으로 이어져 IS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내전을 피해 식량을 구하려는 이들이 난민이 됐다. 그들이 유럽으로 밀려가니 유럽연합에선 국가안보의 문제가 됐다. EU국가들이 분산해 수용하자고 했는데, 영국은 난민을 안 받겠다면서 블렉시트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가뭄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문제로 파생된 거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증폭돼 일어날 거다. 단순하게 0.5℃ 가 올라가는 문제가 아니다. 악기상이 약간 늘어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과거 역사로 볼 때 그럴 때 국가나 사회가 아끼고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전쟁을 벌였다. 굉장한 사회불안이다. 위기는 그런식으로 온다. 지금보다 단 0.5℃가 오르면 그런 위기가 올 수 있다. 모든 데이터가 그렇다고 말한다.”

- 국부(國富)가 넉넉한 나라는 좀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5%에 불과하다. 지금이야 반도체나 스마트폰, 중화학공업을 수출해 식량을 수입하면 된다. 러시아도 가뭄이 있기 전 밀을 수출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자급도 어려워지자 수출을 못했고, 전 세계 밀가루 가격이 올라갔다. 물론 현재 식량의 4분의 1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상황이라 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곡물은 투기자본이 매달려 있어 1%만 과잉생산만 해도 가격이 폭락하고 반대의 경우 폭등한다. 생산량에 따른 가격 민감성이 높다. 가난한 나라가 먼저 피해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전 지구적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얘기가 다르다. 지금처럼 우리가 수출을 통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0.5℃가 올라갈 때마다 기아자가 3500만명에서 3억6000만명으로, 다시 18억명으로 증가한다. 그 얘긴 이런 일이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 아시아, 특히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란 얘긴데

“올초 호주 안보전략가들이 기후보고서를 냈다.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대륙에서 사는 이들은 자기들 머리 위에 사는 35억명을 걱정한다. 인구밀도도 높고 아시아몬순이란 비로 농업생산을 해 먹고 사는데, 본격적인 기후위기로 진입하게 되면 아시아몬순 자체에 문제가 생겨 상당히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기근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본다. 강수대 폭이 변하면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 보수적으로 예측한다고 해도 그렇다. 다만 그 숫자가 1억명이냐, 5억명이냐 그런 불확실성은 있다. 호주입장에선 나중에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난민들이 이들 지역서 몰려올 수 있다고 걱정하는 거다. 그렇게 됐을 때 어디서부터 차단해야 하나 뭐 그런 걸 걱정하지 않겠나.”

- 한국이 기후문제의 원인자란 생각은 해봤어도 피해 당사자가 될 것이란 생각은 못해 봤다.

“결국은 배고픔의 문제, 식량부족의 문제다. 그렇게 난민이 된다. 이미 미국도 2000년대 초반 그런 대응 시나리오를 만든 적이 있다. 먹을 게 부족하면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결국 그 땅을 떠나 살만한 곳으로 몰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린 (난민)대상이 되는 쪽이다. 과연 억명 단위로 기아사태가 왔을 때도 수출로 식량을 구할 수 있을까. 곡물 수출국이 그 때가 되어도 안정적인 생산‧수출이 가능할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그걸 걱정하는 이들은 따로 있고, 우린 멀뚱멀뚱 하고 있다. 이게 더 위기다. 기후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인식 못하는 것, 그것이 진짜 위기다.”

- 우린 온실가스 다배출국가면서도 신규석탄을 건설하고 있다

“서구 투자사들은 석탄화력에서 자본을 모두 뺐다. 국부펀드도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압박한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데 대한민국은 과거 성공방식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석탄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가서 건설하도록 융자를 해주고 있다. 세상의 에너지 패러다임이 모두 변하고 있는데 ‘태양광판이 눈부시다’, ‘환경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졸속도 있다. 하지만 전환이란 가치를 갖고 어떻게 보완할지를 얘기해야 한다. 태양광 패널은 지난 10년간 가격이 5분의 1이 됐고 배터리 가격도 급락했다. 이렇게 가격혁신이 일어나는 분야가 어디있나. 다른 주요국들이 어마어마한 혁신이라며,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린 과거의 성공만 쥐고 앉아 있다. 태양광을 하기에 국토가 좁다면 옥상이 벽면 등 굉장히 전환적인 준비들을 해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좌초자산이 될 석탄화력만 붙들고 있다. 과거 성공방식에 집착하는 시스템이다. 전환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젠 시장의 논리로도 들어가면 안된다.”

- 유독 한국서 에너지전환 논의가 정쟁화 되고 있다.

“원자력 같은 경우가 그렇고, 재생에너지도 그 수준으로 들어가 힘을 못 쓰고 있다. 원자력은 위험도 위험이지만 이미 시장논리로도 끝났다고 본다. 일본 도시바가 터키와 영국 진출했다가 수조원을 손실보고 나왔다. 우린 일부서 원전을 짓자고 하고, 수출산업화를 운운하지만 그렇게 이익이 남는 사업이라면 왜 그런 경쟁력을 놔두고 해외사업서 정부더러 돈을 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옛 소비에트가 왜 망했나. 자본주의 논리에 그렇게 철저한 이들이 그럴 때면 소비에트 시스템을 요구한다. 그게 무슨 진짜 경쟁력인가. 원전을 최소 40년 가동한다고 하면 그 기간 다른 에너지는 어마어마한 기술혁신이 될거다.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이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보고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다.”

- 한 나라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관성이 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독일은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나라다. 그런데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가 넘는 지역이 많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재생에너지가 10%를 넘어서면 기저전력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40%를 운영하는 단계다. 논문으론 100%도 가능하다고 한다. 10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혁신이다. 그간 원전은 기술혁신이 있었나. 이런 변화를 안 따라가고 파산자본이 될 여지가 큰 걸 계속 잡겠다는 거다. 또다른 측면에선 우리가 계속 이대로 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앞서 말했듯 기후위기가 사회적 불안정성을 갖는 위험체계로 들어가게 됐을 때 전 세계가 화석연료를 보는 관점이 달라질 거다. 그땐 강제적이 될 거다. 그런 면에서 빨리 전환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굉장히 느긋하다. 위기가 2100년대에 일어난다는 가정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선 태양광과 풍력이 어마어마하게 확산되고 있고, 미국은 파리협정 탈퇴에도 화석연료를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만 한손에 원자력, 다른 한손에 석탄화력을 쥐고 있다. 우리 경제구조가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가 아니잖나.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아 자체로 버틸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RE100이나 국경탄소세처럼 우리가 변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변화)당할 상황이다. 유럽시장 하나만 잃어도 파산이 일어날 텐데, 그런 나라가 국경을 탄소가 넘어오도록 허용하겠나.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인데, 전환하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하니 굉장히 느긋한 이야기로 들린다.”

- 빠른 전환을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막으려면 엄청난 양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 2030년까지 전 세계가 2010년 배출량의 45%로 수준으로 줄여야 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순배출량 ‘0’)로 가야한다. 지금 갖고 있는 상식과 관성으론 달성하기 어렵다. 생각조차도 못해 본 수준이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줄여야 하는 양으로 따지면 매년 18%씩 감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 IMF 때 14%가 줄었다. 이젠 전 세계가 한꺼번에 그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니 전시상황이랄 수밖에. 그런데 꼭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미국이 약간 늦게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모든 산업을 군수산업으로 전환하는데 걸린 시간이 불과 1~2년이다. 자동차를 만들다가 탱크를 만들고, 징집된 남성을 대신해 여성이 공장으로 들어가 일했다. 사회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2년 만에 모든 산업구조를 그렇게 뒤엎었다. 수십년이 걸리는 일이 아니다.”

- 전시(戰時)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거다

“이 기회에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 유발하라리가 쓴 <싸피엔스>엔 '허구를 발명한 인간이 위대하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 돈이란 게 종이 쪼가리가 아닌가. 그러나 돈에 교환가치가 있고 물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에 가치를 갖게 된다. 법전 역시 종이에 쓰여 있지만 사람들이 이건 지켜야 한다고 하면 우리를 지배하지 않나. 물질적인 것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허구에 믿음을 부여하는 순간, 그래서 우리가 믿고 사람들의 신뢰가 한꺼번에 모아지면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수십년씩 걸릴 일이 아니다. 문명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니겠나.”

- 어디서부터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오늘날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탓이다. 현재도 식량의 4분의 1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공산품도 생산과잉이다. 그런데도 우린 여러 문제를 이야기 할 때 항상 경제를 성장시켜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성장이란 물질의 팽창을 더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결핍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이런 모순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 모든 일은 어떤 견제와 균형의 작업이 필요하다. 자본과 노동, 기업과 노동자 등 모두 타협점이 필요하다.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 유독 성장과 관련해서는 견제나 균형이 없다. 지구는 한계가 있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이 상태로 인구가 늘고 소득이 증가하면 당연히 에너지소비도 지금보다 많아지고 식량도 더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2차대전 이후 지구가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일을 벌리고 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간 필연적으로 붕괴한다. 예를 들어 유리접시 안에 세균 한 마리 풀어놓으면 갑절로 불어나면서 증가해 접시 절반을 차지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절반을 넘어서 한 세대를 넘어가면 모든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절멸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과거 모든 문명들은 물질적 소비가 최고치에 이른 다음, 도시가 최대로 팽창한 다음, 복잡성이 굉장히 늘어난 상황에서 몇 십년 뒤 훅 하고 무너졌다. 지구는 거의 그 수준에 임박해 있다. 기후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그널이 그렇다. 더욱이 과거엔 개별 문명이라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문명이 일어서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묶여 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순차적으로 다 같이 무너진다. 더욱이 우린 (붕괴하는)앞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번 문명이 무너진다면, 인류문명의 붕괴가 아닐까 생각한다.”

- 욕망으로 가득찬 인류가 이런 미증유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사회란 협력하고 연대하고 돌보고, 나누는 것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싸게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하고, 쓰레기를 버릴까 하는 시장논리 뿐이다. 안전하게 숨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안전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가치가 있나? 그래서 유엔은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만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학적으로 어느 부분을 손보거나 개별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모든 체계를 바꿔야 한다. 경제성장이 가파를수록 빈부격차는 커진다. 이제 뒤집어 생각해 볼 때다. 기후위기란 것 자체도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위기라면, 위기인 줄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오히려 기후위기 앞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소빙하기 때 무척 어려웠다. 우리나라도 1700년대 경신대기근 당시 이조실록 보면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문명의 맥아가 탄생한 게 다 소빙하기 때다. 자기 땅에서 살만하다면 왜 영토를 개척하러 갔겠나. 지금의 위기라는 것도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약,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 수 있는 여지가 되지 않을까. 나누고 아끼는 그런 가치들이 다시 우선순위가 되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 온실가스든, 기후위기든 눈에 보이지 않아 개개인의 각성이 더 어렵다.

“어려운 문제다. 스모그든 수질오염이든 눈앞에서 보이는 어떤 피해가 일어나는 쉽지만. 기후위기는 과학자들이 연구하다보니 인지하게 된 거다. 이걸 전혀 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인데, 인간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위험을 인지하고 대응하고 그렇게 진화되지 않았다. 몸은 현대를 살아가지만 아직도 구석기처럼 즉각적인 위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응한다. 그런 면에서 기후위기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다. 개인적으로도 질문한다. 이걸 어떻게 알리고, 모든 사람들이 깨우치게 할까. 하지만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그런식의 전환은 안 일어난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진 교수에 따르면, 항상 3.5%가 완벽히 인식하면 뒤집을 수 있다. 지금은 그 정도 안된다는 얘기다. 국민 100명을 설득해 3.5명만 명확하게 인식시켜주면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가 책임을 지고 끊임없이 깨우쳐 줘야 한다. 정부가 교육이나 합리적 대안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위험하니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시키는 작업들을 해야 한다.”

- 정부는 잘하고 있나

“기후위기는 근본적으로 대전환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혀 안한다. 일전에 환경부가 시민단체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알려줘야 자기들이 힘을 받는다’고 하더라. 나도 공무원을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올해 환경부 예산이 8조원대에 직원만 2500여명이다. 산하기관만 해도 수천명일텐데 어마어마한 예산과 인력을 갖고 기후변화 인지시키는 노력은 아무것도 안한다. 연구개발과 홍보에 아주 조금 예산을 둔 것 뿐이다. 기후위기 퀴즈를 맞추면 통닭을 보내주는 이벤트나 하고 있다. 기후위기 인식을 전혀 안하고 있다. 실제 공무원을 상대해보면 굉장히 민감해 해야 할 사람들이 일반 시민수준이다.”

- 언제까지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을 할 예정인가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실 지친다. 눈앞에 보이는 이 위기는 굉장히 절박한데 세상은 거의 반응이 없다는 것에. 하지만 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잘 해결만 한다면 더 좋은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이 있다. 기후위기는 다음세대가 아니라 우리세대의 문제다. 굉장히 눈앞에 다가온 위험이다. 그런데 작년만 해도 지금처럼 얘기하지 못했었다. 작년 10월부터 위기 징후가 명확해 졌고, 앞으로 점점 더 명확해져 갈거다. 2005년부터 이 일을 했왔는데, 단 한번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과도해 본 적이 없다. 위기성이 훨씬 증가되는 양상이다. 급변적인 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예측에서도 그런 결과들이 나온다.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굉장히, 굉장히 절박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조천호(曺千鎬) [He is...]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에서 대기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기상연구소에 입사해 지구대기감시관측소장, 지구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예보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등을 지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장(고위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변화를 꿈구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부대표도 맡고 있다. 현직 기상과학원 연구원인 부인 전영신씨와의 슬하에 아들, 딸 자녀 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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