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에너지화 사업 놓고 주민소환-소송전 등 전국이 시끌
대안 없는 반대민원에 지자체·정부도 방관, 결국 매립만 늘어

[이투뉴스] SRF(폐기물 고형연료)를 놓고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포항에서는 SRF 발전설비 건설을 둘러싸고 시의원을 소환하는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등 민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또 원주화훼관광단지 열병합발전소 등 곳곳에서는 소송전으로 번져 제도개선과 행정적인 절차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와 추진사업자들은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이라고 나름 거창한 이름을 부여한 반면 반대하는 주민들은 ‘쓰레기 태우는 발전소’라고 폄하한다. 이러한 시각차이는 전국의 수많은 SRF 관련 사업을 대표적인 민원유발 사업으로 만들었다. 이미 완공돼 운영되는 곳을 제외하고는 순탄하게 사업이 전개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다.

심지어 건설은 물론 시험가동까지 마친 발전소도 2년 넘게 올스톱한 곳도 있다. 나주 SRF는 발전용량이 큰데다 매몰비용만 2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이라 미치는 여파가 클 전망이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환경영향조사를 위한 시험가동을 준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SRF 사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국적으로 가연성 폐기물만 쌓이고 있다. 언론에서 ‘쓰레기 산’이라 불리는 야적장이 수도 없이 늘고 있지만, 매립 이외에는 대안이 없어 인근 주민은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 여기에 바지사장을 내세워 쓰레기를 야적한 후 나몰라라 내빼는 사업장이 늘면서 결국 국민세금으로 이를 다시 치우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주민 반대가 극심해지자 기초지자체는 더 이상은 SRF 사업추진이 어렵다고 판단, 점차 발을 빼는 곳이 늘었고, 광역지자체 역시 뾰쪽한 대안 없이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을 통해 ‘꿩먹고 알먹고’를 생각하던 환경부와 산업자원부 역시 개입을 최대한 삼가면서 납작 엎드려 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의 선봉에 섰던 SRF발전이 주민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처리하지 못한 가연성쓰레기까지 모두 매립으로 몰리는 현상이 가파르다는 지적이다.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의 선봉에 섰던 SRF발전이 주민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처리하지 못한 가연성쓰레기까지 모두 매립으로 몰리는 현상이 가파르다는 지적이다.

◆주민소환, 반대시위 등 반대민원으로 몸살
지난 12월 경북 포항에서는 이색적인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페기물 에너지화 설비가 있는 포항 오천지역의 기초의원 2명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였다. SRF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역구 기초의원이 SRF 반대민원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이유로 주민소환을 제기한 것이다. 다만 주민소환 투표에는 오천읍 유권자 9577명이 참여했으나 전체 유권자 수(4만4028명)의 21.75%에 그쳐, 개표 요건(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투표)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주민소환 발의로 업무가 중지됐던 시의원 2명은 업무에 복귀했다.

비록 부결로 끝났지만, 이번 투표는 대구경북에서 벌어진 첫 주민소환 투표라는 점에서 파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 SRF 정책을 둘러싸고 기초자치단체 및 기초의회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비록 부결됐지만 1만명에 달하는 주민이 투표현장을 찾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SRF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투표 무효에 따라 투입된 시민혈세 5억원을 낭비했다는 점과 주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말썽을 빚고 있는 원주화훼관광단지 내 SRF 열병합발전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반대가 심하자 한때 원주시장이 나서 사업포기를 선언하는 등 해결기미가 보였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원주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돌아섰고, 반대시민들은 원주시가 출자한 3억원을 즉시 회수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사업자 측은 통합환경허가 취득을 추진하며 사업 강행 및 매몰비용 보상 등을 주장하고 있어 마찰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광주광역시에서는 위생매립장이 당초 예상보다 30년이 빠른 2040년께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상무소각장을 폐쇄했으나 나주 열병합발전소 가동중단이 지속됨에 따라 생활쓰레기를 전량 매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광주 양과동 ‘고형연료(SRF) 생산시설’ 또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상무소각장을 폐쇄했으나 나주 SRF 열병합의 먹통으로 광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매립장에서 처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매립장 수명이 30년 정도 단축될 것으로 보여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준공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가동을 못하고 있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준공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가동을 못하고 있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내포그린 포기가 큰 영향, 나주 회생여부 주목
주민소환으로 소란이 일었던 포항시는 최근 시장까지 나서 뒷수습에 골몰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SRF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약속까지 내놨다. 그는 “도시에 꼭 있어야 할 쓰레기처리시설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극심한 갈등과 분열이 초래되고 행정과 재정적인 손실은 물론 지역 이미지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폐기물 에너지화 시설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한편 주민참여와 엄격한 관리체계를 유지해 주민건강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주민을 달랬다.

폐기물 에너지화 시설은 지역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생활필수시설이다. 매일 쏟아지는 생활쓰레기를 소각 내지 에너지화 하지 않을 경우 결국 매립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경우 아예 소각장을 의무적으로 짓고 여기서 나오는 열을 지역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SRF설비 건설을 둘러싸고 엄청난 내홍을 겪었던 내포신도시와 나주혁신도시가 비슷한 사례다. 다만 이 곳에는 소각장 대신 규모가 더 큰 SRF 열병합발전소가 계획된 것만 다르다. 특히 내포신도시 SRF사업이 좌초되면서 민원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기폭제가 됐다.

물론 정부가 SRF를 신재생에너지로 과대 포장,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라는 편법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 생활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떠넘긴 것은 문제가 있었다. 주민들에 대한 설득노력과 함께 철저한 배출시설 관리 및 환경규제를 통해 건강권과 환경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것도 정부와 지자체의 실책이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쓰레기 발전’이라며 반대만 하는 주민도 큰소리 칠 형편은 아니라고 환경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안 없는 반대는 쓰레기 매립 증가라는 풍선효과를 유발, 결국은 우리 후손에게 더 큰 부담을 떠넘긴다는 이유에서다.

전국적으로 폐기물 에너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쌓이는 것은 결국 쓰레기 더미다. 여기에 재사용이나 재활용, 해외 반출 등이 상당부분 중단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초 겪었던 비닐과 플라스틱 반출 중단이 언제 또 이어질지 모른다는 진단이다. 매립장으로 가지 않은 가연성 쓰레기가 계속해서 산처럼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는 공식적으로 120만톤 가량의 폐기물이 전국에 적치 또는 방치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경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180만톤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환경영향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의 향방이 주목받고 있다. 내포는 아직 짓기 전이었지만, 완공된 설비의 가동중단은 또다른 여파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변곡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열병합발전을 SRF 처리하는데 있어 유력한 대안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산단 집단에너지사업자들이 현재 대부분 석탄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SRF를 연료로 변경, 환경도 지키면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단지에 공정용 스팀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정부의 지원취지도 갖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갈수록 산업단지와 거주지역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어 강력한 민원이 발생할 여지는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모두 SRF를 반대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는 주민 눈치만 보면서 환경부가 처리해주기를 원하고 있으나, 환경부는 쓰레기 발생 원칙에 따라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모른척한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선 비용을 대폭 올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리비용을 올리는 것은 주민들이 반대할뿐더러 정부도 부담스러워 한다. 소각이나 에너지화가 안되면 쓰레기는 결국 매립할 수밖에 없다. 환경권은 내 주변만이 아니라 국토, 아니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환경을 지켜야만 달성 가능하다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