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이투뉴스 발행인

[이투뉴스 사설] 정부가 제 9차 전력수급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작년 말을 넘기더니 아예 계획기간을 2019~2033년에서 2020~2034년으로 1년 연장한다는 소식이다. 전기사업법 시행령은 2년 단위로 전력수급계획을 작성해서 국회에 보고하고 시행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앞선 8차 전력수급계획은 2017년말 발표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말 열린 전력정책심의회에서 9차 전력수급계획이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 평가 등으로 어차피 확정이 어려운 점을 내세워 계획기간을 1년 연장했다. 이로 인해 정부 스스로 법을 어기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업계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사업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다소 급하게 짜여진 8차 계획과는 달리 9차 계획에는 이번 정부의 핵심적인 에너지정책이 반영돼야 하는데다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 등 중요한 정책 시그널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9차 전력수급계획을 무책임하게 연기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수 없다. 물론 산업통상자원부는 9차 계획부터는 환경부의 전략영향평가를 받도록 돼 있어서 물리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 충분히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계획기간 변경으로 정부는 다소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했을지 모르나 앞서 언급한대로 새로운 사업계획 작성 등을 위해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업계는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다.

더욱이 2033년 계획으로 사전 작업을 끝낸 각종 분과위와 실무위는 모든 작업을 새로 펼쳐야 할 판이다. 9차 전력계획 워킹그룹은 그동안 수요전망, 수요관리, 신뢰도, 정책, 분산, 신재생, 전력계통, 제주수급 소위 등으로 업무를 분담해 수요전망과 전원믹스, 재생에너지 지원 대책 등을 수립해 왔다.

정부가 제때 9차 전력수급계획을 작성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계획기간을 변경한 것은 올 4월로 예정된 총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 축소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시점에서 이를 계획에 반영하자니 야당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을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강조해 왔지만 비교적 발전원가가 저렴한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의 축소는 누가 봐도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하게 돼 있다. 이같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선거를 의식해서 정부의 정례적인 계획마저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가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정부는 보다 겸허한 자세로 국민에게 현실을 이해시키고 지지와 이해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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