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전기?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무슨 변화?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낮다. 사실, 이해의 필요성조차 거의 없다. 어디에나 있는 전기 콘센트에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꼽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전기는 꼽으면 나오는 것이다. 자동차는 조금만 사용해도 10만 원이 넘는 연료비를 지불해야 하지만 전기는 정부의 누진세 인하로 아무리 사용해도 10만 원을 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일은 벽보고 연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완벽한 무관심 속에서 지금도 충분히 나쁘지 않은, 아니 훌륭한 수준의 전기 서비스를 누리고 있는데, 무슨 변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전력산업의 최근 5년의 변화는 그 이전 30년의 변화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느낌이다. 조금 과장하면, 탄생 이래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이제 코끝까지는 전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일반 소비자까지 전달되지 않았지만 전력산업 내부 혁신은 2020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수요자원시장, 소규모전력중개시장 등 과거에는 논문, 보고서 등 글자로만 존재했던 추상적 개념이 실제 우리나라 전력시장에도 도입, 확장된다. 선진 국가, 지역과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미진한 수준이지만 공무원, 전력회사 임직원 책상 위에서 오랫동안 ‘미래 발전(안)’으로 놓여있던 것들이 이제서야 실현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이런 변화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일부도 있다. 이런 변화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한다면 억울하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안정적인 곳에서 사업을 원활하게 전개했던 사람들이 변화로 사업 영역의 축소를 경험하게 될 위협도 상존한다. 현 체계의 주류라 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은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은 좋지 않다. 충분히 검증을 하고 천천히 시도해도 늦지 않다”라고 주장하며, 변화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도 한다.

◆가상발전소 개념의 출현과 함의: 누적된 지식이 기술을 만나 신세계를 열다

이런 회의론자의 생각과 다르게, 최근의 전 세계적 전력사업의 변화는 일시적이거나 불현듯 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충분히 숙성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전력산업의 미래 핵심 축인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만 해도 그렇다. 가상발전소의 개념은 거의 25년 전인, 1997년 다수의 전문가의 논의를 담은 책 ‘가상 전력회사(The Virtual Utility)’에서 처음 제안됐다. 이 책 서두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하고자 한다. 

“통신기술의 향상, 태양 및 기타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기술은 발전, 송배전 프로세스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존의 수직 통합 중앙집중형 체계는 분산된 발전, 저장, 전력 판매/계약 등으로 구성된 더욱 유연한 운영으로 전환할 수 있다. 가상 전력회사는 해당 자산을 소유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요구하는 효율적인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적이고 유연한 협의체를 의미한다. 태양광, 풍력, 전력저장장치 등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원을 네트워크에 통합해 특정 요구(저탄소, 에너지 자립, 높은 신뢰도 등)에 적합한 자원을 과거의 방식보다 더 유연하게 더 낮은 거래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상적인 조건에서,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은 더 낮은 평균 비용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지만 점점 더 역동적인 에너지 산업 환경은 이 체계에 대한 근본적 인식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상 전력회사는 새로운 기술을 중심으로 전력 생산 기능을 재정의하고 있다.”

전력산업, 전력시스템의 미래 방향성은 급작스럽게 제시되지 않았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한계와 대안적 모색이 40여 년 전부터 있었으며 재생에너지, 수요자원, 전력저장장치 등 새로운 자원이 매우 비싼 자원이었던 25년 전부터 이를 통합하는 논의와 관련한 기술 발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런 역사적 발전 흐름과 함께,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변화의 가속도를 높여주고 있다. 우리의 재생에너지 계획과 목표, 새로운 전력시장 개설과 운영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늦은 편에 속한다. 보다 빠르고,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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