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관전기
[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관전기
  • 노동석
  • 승인 2020.02.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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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미래에너지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석 미래에너지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석
미래에너지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작년 말 발표되었어야 할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이 지연되고 있다. 이번 계획부터 적용되는 ‘전략환경영향 평가’가 빌미다. 전력수급정책위원회는 계획 발표 시기를 늦추면서 계획 수립기간을 2034년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한 관계자는 “기한을 1년 조정하는 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수요전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필요물량도 달라질 수 있다. 신규·폐지 발전설비도 조정해야 하는 큰 사안”이라며 허풍을 쳤다.

계획수립이 지연되니 계획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연기를 결정한 시점이다. 전력수급계획을 전략환경영향 평가에 포함시키는 것은 갑자기 결정되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법은 2016년에 개정됐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전략환경영향 절차와 평가기간을 감안했다면, 9차 전력수급계획은 2018년도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데 2020년이 되어서야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의제로 위원회를 개최한다니 기가 막히다. 환경영향평가, 국회보고 등 절차를 다 마치려면 상반기는 고사하고 올해 말 발표에도 갈 길이 멀다.

계획 수립기간이 굳이 15년일 필요도 없다. 10년 이상이면 법에 명시된 요건을 충족한다. 탈원전, 탈석탄 정책으로 건설공기가 긴 원전이나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고, 신규 가스발전도 구체적 입지없이 용량만 제시하면서 15년의 계획기간을 고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스발전소를 기존 부지에 짓는다면 2년 정도, 신규부지라 해도 4~5년이면 충분히 짓는다. 수립기간 1년 연장의 의미를 굳이 짐작한다면 원래 내년에 수립되어야 하는 10차 수급계획을 내후년(2022년)에 수립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마저도 내년에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내후년에 완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전력수요예측을 1년 연장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2019년 실적을 반영할 수 없다면 기존 예측모형과 전제를 이용하여 예측기간을 1년 연장하는 것이고, 계획기간에 새로 포함되는 1년간의 폐지설비와 증설해야 하는 설비의 규모를 계산하는 것은 다년간 전력수급계획에 참여하고 관전한 바에 의하면 간단한 문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과장이다. 

전력수급정책위원회의 결정 며칠 전 산학연 전문가 워킹그룹은 ‘전력수급기본계획 5대 추진방향’을 정부에 제안했다. 에너지전환 정책 이행과 친환경 분산전원믹스 개선을 위해 중장기 석탄감축 로드맵 제시,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전력시장 제도개선 및 미래산업 트렌드를 반영한 전력수요전망 등이다. 계획수립의 추진방향이라면 계획수립 시작 시점에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법상 계획수립이 종료되어야 하는 시점에 느닷없이 추진방향을 정부에 제안하다니, 전문가 워킹그룹은 그동안 무었을 했단 말인가. 1년 동안 추진방향을 고민했다는 것인데 어이가 없다. 

전문가들이 제안했다는 추진방안도 8차 전력수급계획에 또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거론되지 않은 사안이 하나라도 있는가. 

석탄감축 로드맵은 별도로 제시할 필요도 없다. 수명 30년 이상이 되는 석탄발전소는 폐지한다니까. 일단 가동을 중지하고 폐지할 것인지, 아니면 예비설비로 당분간 보유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는다. ‘온실가스감축로드맵 수정안(2018.8)’으로 전환부문의 추가 감축 물량 3410만톤을 발전대체로 대응하려면 석탄의 발전량을 더 줄이고 가스발전량은 더 증가시켜야 한다. 이것은 건설이 아니라 운영의 문제다. 주어진 전원별 발전용량을 가지고 이용률을 조정해 가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면 된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최근의 전력수급계획에는 전원별 발전량도 제시하지 않으니 말이다.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은 몹시 어려운 문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되어 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시행해야하는 대응책도 지난 계획과 3차 에기본에서 이미 제시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지만 전력시장 제도개선의 필요성도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로 더 급해 졌다. 지금의 시장운영 제도와 정산방식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 필요한 문제가 아니고 전력수급계획에서 수정 방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미래산업 트렌드를 반영한 수요전망은 수요예측시에 당연히 반영됐어야 하는 문제다. 

이 과정에 신난 사람들도 있다. 가스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다. 30년 이상된 석탄발전소를 전부 폐지한다니 ‘그래도 되나’ 싶지만 대량의 가스발전 신규 물량이 계획에 반영될 것이므로 발전사업자들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폐지대상 노후 석탄발전소가 전부 발전자회사 소유고 송전선로가 이미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신규물량 배정에 발전자회사가 유리할 것이다. 이에 대해 민간의 불만이 있을 수는 있겠다.  

이번 전력수급계획 수립 과정을 지켜본 결과는 마치 나무늘보나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는 듯 했다. 시간 지연이 목적인 침대축구팀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아니면 여러 사람이 짐작하듯이 전력수급계획 수립결과가 총선에서 이슈화될 것을 꺼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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