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용도별요금제 도입 후 지난해 처음 단가 역전
평균 판매단가도 2015년부터 역주행 적자전환 부추겨

▲한전 용도별 전력 판매단가 추이
▲한전 용도별 전력 판매단가 추이

[이투뉴스] 제조업체나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가 주택용보다 비싸졌다. 지난해 한전의 용도별 판매량과 판매수입을 분석한 결과다. 두 종별 요금의 단가 역전은 1973년 용도별 요금체계 도입 이후 처음이다.

한전이 지난달 중순 집계한 작년 1~12월 전력통계와 2009~2018년 연간 판매실적을 토대로 본지가 산출한 작년 산업용 판매단가는 kWh당 106.55원으로 주택용(104.95원)보다 1.60원 비쌌다.

산업용 판매단가는 10년 전인 2009년 73.69원에서 2011년 81.23원, 2013년 100.70원, 2015년 107.41원, 2018년 106.46원 순으로 꾸준히 상승해 주택용(106.87원)과의 격차를 0.14원으로 좁혔다. 

같은 기간 주택용은 114.45원(2009년), 119.99원(2011), 127.03원(2013) 순으로 완만히 상승하다가 2015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해 처음 산업용보다 저렴한 전기가 됐다. 

산업용은 표준산업분류상 제조업이나 광업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말한다. 전체 수요의 53.9%(2018년 기준)를 차지한다. 대규모 공장의 경우 345kV나 154kV 초고압으로 직접 전기를 수전해 한전 입장에선 공급원가가 저렴하다.

반면 주택용은 3kW 이하 주거용과 독신자합숙소, 주거용 오피스텔 고객 등이 사용하며, 발전소-변전소-배전망-변압기 등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는데다 사용량이 적고 관리비용이 높아 국내외를 불문하고 산업용보다 비싸다.

OECD-IEA 국가별·종별 요금 현황자료(2018)를 보면, 한국 주택용을 100으로 봤을 때 일본은 208, 영국은 189, 미국은 118이며, 같은기간 국내 산업용 가격이 100이라면 일본은 153, 영국 128, 미국 70으로 주택용보다 저렴하다.

지난해 국내 사정은 대형마트나 농산물센터 판매가격이 동네 슈퍼마켓보다 비싼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73년 이전까지 전압별 요금체계를 유지하다가 석유파동을 겪은 뒤 용도별 요금체계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결정에 따라 마진이 높은 종별이 적자를 보는 종별을 교차보조하고 있다.

현재는 주택용, 농사용, 심야용 등은 원가이하로 공급하고 산업용과 일반용은 비교적 마진이 넉넉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같은 종별이라도 부하시간‧계절‧사용량에 따라 기본료와 계량요금이 달라지고 체감수준도 제각각이다. 

전례가 없는 주택용과 산업용 단가역전은 정부의 주먹구구식 전기료 요금 조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한해 주택용을 11.6% 인하한데 이어 2018년 폭염 때 누진구간을 100kWh씩 늘리는 방법으로 전기요금을 깎아줬다. 반면 산업용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4.4~8.1%까지 요금을 올려 수지를 개선했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교차보조가 심하다보니 원가가 높은 주택용보다 고압 산업용이 더 비싸졌다"면서 "국내 전기료는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 않고 소비자 선택권도 없다. 그러니 가격시그널이 소비자 행동에도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기료 원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요금인상 불허로 전체 판매단가가 되레 하락하고 있는 정황도 확인됐다.

한전의 용도별 전체 평균 판매단가는 2009년 83.59원에서 2011년 89.32원, 2013년 106.33원 순으로 꾸준히 상승하다가 2015년 111.57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듬해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2017년 109.53원, 작년 108.65원까지 낮아졌다.

반면 전력당국은 석탄감발과 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전력구매비 외 각종 정책비용이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지난해 기록적인 영업적자 역시 배출권, RPS정산비, 각종 특례할인 등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 한전은 지난해 전기요금 개편 논의 과정에 용도별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천명했다가 산업부가 역정을 내자 이 방침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공공기관 출신 한 민간 CEO는 "정부가 에너지산업과 시장을 어떻게 가져가고, 탄소감축은 어떻게 하겠다는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용도별 요금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면서 "국가가 할 일은 기업이 에너지절약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을 현실화하고, 그를 통해 고용과 신산업이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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