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전력거래소 사옥
▲나주 전력거래소 사옥

[이투뉴스] 미국 상무부 조사단 일행이 전력거래소 청사로 들이닥친 건 작년 10월 21일 일이다. '한전이 발전자회사로부터 싼값에 전기를 사들여 간접보조금 형태로 국내 철강업계를 지원하고 있다'는 자국 철강사들의 제소에 따라 나주까지 현장실사를 왔다. 전력거래소는 계통운영과 시장운영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이곳을 직접 겨냥해 중점 조사를 벌이는 게 한국의 전력시장 내부를 가장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이라 판단한 것이다.

미 상무부는 2016년에도 한국의 산업용 전기가 정부 보조금이라는 자국 철강업계 주장에 손을 들어준 이력이 있다. 당시 국산 냉연강판은 높은 반덤핑 관세를 맞았다. 이후로도 미국은 에너지다소비 사업장인 국내 철강사들이 수요자원시장(DR)에 참여하자 이를 문제 삼아 0.1%의 관세를 추가로 얹기도 했다. 이렇게 빈틈을 놓치지 않고 꼬투리를 잡아온 미국 철강회사들이 새로운 표적으로 정산조정계수를 지목한 것이다.

정산조정계수는 애초 변동비반영시장(CBP)에서 원전이나 석탄화력 등 저원가 발전기의 초과이익 환수를 목적으로 도입했다. 지금은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간 총괄원가 보상과 적정수익 분배 툴로 활용되고 있다. 수직독점 체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다. 오래전 전력시장을 자유경쟁체제로 전환한 미국 입장에선 매우 낯설고 의아한 시장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 이용해 한국 철강업계가 도금강판 대외 가격경쟁력을 높였다고 의심했다. 

실제 전력거래소를 방문한 조사단은 비용평가, 가격결정, 정산운영 등 시장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중점적으로 캐물었다. 방대한 양의 각종 규칙개정 자료는 물론 실무작업에 쓰인 엑셀파일까지 직접 확인했다. 이 과정에 전력거래소는 10여명의 대응인력을 붙여 질의에 즉답하고, 투명한 자료공개로 미 상무부 측 의혹을 불식시켰다. 한국 시장제도 전반을 헤집은 고강도 조사는 이튿날 밤 10시에나 끝났다.

그 결과가 지난 11일 미국 상무부를 통해 공개됐다. 미국은 한국산 도금강판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결과 발표에서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고 관세율을 하향 조정했다. 미국 상무부는 “전력거래소 구매가격 산정방식이 시장원리에 부합하므로 상계관세 조치가 필요한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최종판정했다. 이에 따라 그간 최대 15.8%까지 부과됐던 업체별 관세율은 최대 9.5% 수준까지 낮아졌다.

산업부와 전력당국의 공조와 적극적인 대응이 모처럼 빛을 발했다.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 전력시장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 국제적인 공인을 받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전력시장 회원사들과 함께 시장 투명성을 높인 결과라고도 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당시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젠 국내외 누가 보다라도 쉽게 납득이 가고 국가 전체 산업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시장제도를 선진화 할 때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