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주 출력제한 증가에 부랴부랴 기준 마련
새만금 3GW 신재생 사업도 전용선로 건설 난항

[이투뉴스] 원전과 석탄화력은 입지로 외진 바닷가를 선호한다. 거주민이 적은데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쓸 수 있고, 연료를 선박으로 실어나를 수 있어서다. 지역내 전력수요는 우선 고려사항이 아니다. 송전선로를 새로 건설해 수요지로 보내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대부분의 기저발전소가 서해와 남해, 동해에 접한 외딴 곳에 들어선 배경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발전소를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 부지는 포화됐고, 송전망도 여유가 없다. 전기를 소비하며 혜택을 누리는 쪽과 전기를 생산·수송하는 과정에 피해를 입는 쪽이 다르다보니 수용성도 낮다. 전력설비가 들어서는 곳마다 제2, 제3의 밀양이 된다. 정부가 틈만 나면 분산전원을 늘리겠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기조에도 불구하고 6차 전력수급계획(2013~2027년) 이후 분산전원 정책을 무력화 한 건 다름 아닌 정부와 전력당국이란 지적이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도 수요와 입지, 계통 여건 등을 두루 고려하면서 확대해야 과거 대규모 원전·석탄 건설 당시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란 조언이다.     

장기송변전계획에 관여해 온 한 관계자는 "분산전원 정책 헛발질은 산업통상자원부 책임"이라고 직격했다. 전력계획 수립 때마다 수요와 계통을 고려해 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했으나 말 뿐이었다는 것. 실제 산업부는 2013년 6차 계획에 동해와 남해 대규모 민자석탄을 허가했고, 2015년 7차 전력계획에도 원전 2기 건설계획을 반영했다.

하지만 이들 대형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요지를 실어나를 송전선로(강원~수도권)는 아직 착공조차 하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6차 수급계획 때 한전도 내부적으론 수요가 없는 동해에 발전소를 짓는데 반대한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산업부가 민자발전에 가점을 줘가면서 밀어 붙였다. 전원-송전 통합계획이 물건너간 계기"라고 꼬집었다.

대표적 분산전원인 재생에너지 확대도 과거 원전·석탄 건설 방식과 달리진 게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정부는 입지나 계통여건에 대한 사전분석이나 제도개선없이 3GW 새만금사업처럼 대형 신재생발전사업 발표에 급급한 모습이다. 졸속 정책으로 현장은 벌써 손발이 맞지 않아 삐걱댄다.

산업부는 이달말 전기위원회를 통해 1MW이상 태양광·풍력설비의 출력감시·제어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운영규정을 신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에서 태양광·풍력설비 증가로 풍력발전기 출력제한(Curtailment) 횟수와 양이 급증하자 부랴부랴 신뢰도 기준을 새로 정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주는 빠르면 내달부터, 육지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새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앞서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3020 정책 발표 이후 계통운영 안정화를 위해 선제적인 기준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발전사업자들의 저항을 고려해 이를 차일피일 미뤄왔고, 이번에도 적용대상을 1MW이상으로 한정했다.

전력수급계획에 관여하는 한 관계자는 "이 속도라면 제주는 머잖아 추가설비 진입이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다"면서 "진즉부터 이런 상황이 될거라 경고했는데 (정부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짜는 9차 계획도 8차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착공 행사에 참석해 관심을 모은 새만금 재생에너지사업은 345kV 전용선로 건설에 진땀을 빼고 있다. 애초 이 사업은 수상태양광 건설을 맡은 한국수력원자력이 특수목적법인을 앞세워 2022년까지 완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공동투자사가 결정되지 않아 51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할지가 불투명하다.

제때 송전선로가 완공되더라도 3GW규모 발전단지에서 생산되는 간헐성 전력을 계통에서 안정적으로 수용하는 일은 또다른 문제다. 낮시간대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가 발전을 시작하면 기존 화력설비는 가동을 멈추거나 출력을 최대한 낮췄다가 일몰 이후 단시간에 출력을 크게 높여야 한다. 새만금 발전단지는 ESS 연계운영 계획이 없다. 

계통분야 한 당국자는 "단기에 성과를 내겠다고 생각에 앞다퉈 동양 최대, 세계 최대 발전소 건설계획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발전사업자 마음대로 입지를 정하기 보다 계통연계는 가능한지, 배후수요는 충분한지 등을 두루 따져봐야 한다. 현재의 방식은 예전에 원전이나 석탄을 건설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사업금융 관계자는 "규모를 대형화 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산전원 취지에 부합하는 소용량을 먼저 활성화 해 국민적 공감대를 키운 뒤 규모를 점차 키워나가는 게 재생에너지 정책을 연착륙시키는 방법"이라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지 않다보니 남부지역에선 난개발과 사업자간 줄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의 재생에너지 확대"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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