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회장사인 대성쎌틱 임원 스카우트로 물밑 갈등
6년 전 보일러사 대표 회동 ‘순번제’ 결의 삐거덕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 회관.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 회관.

[이투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 경영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에너지기기 산업의 구심체인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 신임회장 선출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현 회장의 임기가 만료돼 총회를 열어 앞으로 3년 간 단체를 이끌 새로운 선장을 뽑아야 하지만 여전히 안개속이다.

경영환경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수장을 뽑아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요인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러다 자칫 14년 전 회장공석 사태로 인해 파행적으로 운영됐던 아픈 전철을 또 다시 밟는 게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신임회장 선출에 잡음이 빚어진 것은 보일러제조사 간 임원 스카우트에 따른 갈등 때문이다. 6년 전 보일러제조사 대표들이 회동을 갖고 각사 대표가 돌아가며 순번제로 회장직을 수행하자고 한 약속에 틈이 생긴 것이다.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는 전신인 한국가스석유기기협회 시절부터 관례적으로 기기산업을 대표하는 보일러제조사 대표가 회장직을 맡아왔다. 강성모 린나이 회장이 창립 때인 1983년부터 22년 간 회장직을 수행하다 20059월 건강 상의 이유로 사퇴한 이후 2006년 손연호 경동나비엔 회장이 협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6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 회장자리가 공석인 채 상근부회장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협회 집행부가 보일러제조사 대표 가운데 차기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결국 2008년 총회에서 중소제조업체인 라니세인트웰 대표이사인 함의인 사장이 회장으로 보임됐다. 이후 2008314일 지식경제부로부터 한국가스석유기기협회에서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로 명칭변경을 승인받은 협회가 또 다시 보일러제조사 대표를 회장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20113월 기기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인인 에쎈테크의 조시남 대표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어 정관에 회장의 단임제를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4년 정기총회가 다가오면서 보일러제조사에서 회장직을 맡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어렵게 보일러제조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물꼬가 터졌다. 이 자리에서 린나이, 대성쎌틱, 귀뚜라미, 경동나비엔, 롯데E&M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수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2014년 린나이 강영철 사장에 이어 2017년부터 대성쎌틱 고봉식 사장이 3년간 회장직을 맡은데 이어 올해부터 귀뚜라미가 회장직을 맡을 수순이었다.

이직은 개인 문제” vs “도의적 수준 넘어

이런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귀뚜라미가 지난해 11월 투자 부문 지주사 귀뚜라미홀딩스와 사업 부문 자회사 귀뚜라미로 분할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올해 초 신임 대표이사에 각각 송경석 사장, 최재범 사장을 선임했다.

최재범 귀뚜라미 대표이사는 대우일렉트로닉스 해외사업본부 본부장, 미국 GE 백색가전 대표이사, 메디슨 대표이사, 경동나비엔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조직운영과 함께 해외사업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사업발굴과 해외시장 개척 등에 경험이 풍부한 최재범 대표이사 영입을 통해 해외시장 개척에 추진력을 더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겠다는 포석이다.

문제의 발단은 해외 영업력과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최재범 대표이사와 함께 대성쎌틱에 오래 몸담은 임병익 본부장을 영입한데서 빚어졌다. 대성쎌틱 측에 따르면 임병익 본부장은 고문직을 맡아 급여와 사옥, 차량을 지원받는 기간에 귀뚜라미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봉식 대성쎌틱 사장이 발끈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김영대 그룹 회장도 대노(大怒)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인사를 취한 귀뚜라미가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한 고봉식 대성쎌틱 사장이 이사진에 정황을 설명하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6년 전 보일러제조사 대표들이 회동을 갖고 각사 대표의 순번제 회장직 수행을 다짐한 약속이 뒤틀어진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성쎌틱 측의 이런 움직임이 지나치다는 반응도 나온다. 보일러제조사 대표의 순번제 회장직 수행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승적인 차원에서 에너지기기산업의 구심체인 협회를 활성화시키자는 공감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새로 회장직을 맡을 최재범 대표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점에서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주장도 더해진다.

2006년 3년 가까운 기간의 회장 공백에 이어 온갖 어려움 끝에 8년 만에 보일러제조사 대표가 다시 회장직을 맡은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가 신임회장 선출을 놓고 또 다시 혼돈에 빠지는 것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곤혹스럽다. 한때 회장공석 사태로 인해 빚어졌던 파행적 운영의 데자뷰를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가스석유기기협회로 출범해 2008년 정관개정을 통해 새롭게 도약한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의 역할은 크다. 기존 석유가스기기협회는 사업자 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는 KOLAS 시험기관검사기관, 국가규격을 제·개정하는 표준개발협력기관, KS지정기관 등 가스연소기를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기기산업을 선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만큼 협회 수장은 모든 기기산업의 지속성장을 도모하는 의미가 큰 자리다. 신임회장 선출을 놓고 갈등과 잡음 속에서 혼란스러움으로 빠져들지, 아니면 조율과 상생을 통한 최적의 공약수를 찾아낼지 주목된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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