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기후비상사태, 지금 거대한 변환을 시작할 때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듯하다.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는 비상 상황에서도 사회적 안정망과 경기 부양은 확대되고 있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바이러스 국면 전에 논의를 시작한 그린뉴딜(green new deal)을 통해 경제 충격을 완화하려는 정의로운 경기부양(just recovery)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상경제 지원정책이 논의되고 실행되고 있다.

경기부양책이 자칫 고탄소·고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하게 되는 부작용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지난 7일,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프란세스코 라 카메라(Francesco La Camera) 사무총장의 성명서 역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이 코로나19 국면에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파급효과는 간단하지 않다. 일시적으로 에너지소비와 탄소배출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지만 바이러스 확산이 진정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됨과 동시에 배출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특히 경영실적 악화를 이유로 탄소규제 강화 흐름을 유예하려는 에너지 다소비·탄소 다배출 기업들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또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예정된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조차 코로나19 여파로 내년으로 연기됐다. 2021년 신기후체제의 출범을 앞두고 신기후체제의 위기가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9년 칠레-마드리드 기후총회(COP25)의 합의 실패에 더해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식 결정이 늦어져 신기후체제가 제때 작동하기 어렵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코로나19에 잘 대처하는 모범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효과적인 방역·의료체계, 그리고 최근에는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른 역량에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대응을 비상경제나 그린뉴딜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하거나 불확실하다.

21대 총선 결과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슈퍼 여당을 구축한 정부와 여당은 에너지전환과 탄소제로사회를 포괄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긴급지원과 경제 활성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코로나19 국면 이전에도 에너지전환 계획 및 정책은 정치 쟁점화, 이해당사자과 해당 지역의 반발, 속도 조절론, 에너지원의 기술적·사회적 수용성 등 여러 측면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2018년부터 에너지전환에 적극적인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기후변화 완화·적응과 연계된 쟁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올해 하반기 유엔에 제출하기로 되어 있는 두 계획서는 기후위기 극복과 에너지전환 실현의 준거점 역할을 하고, 경제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에너지원의 변화를 뛰어 넘는 국가 중장기 비전에 속하는 문제다.

2019년 국제적으로 전개된 기후파업(climate strike)을 계기로 결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청소년·청년, 노동, 과학기술, 채식, 생협, 보건, 사회·정치, 여성, 인권, 환경, 농민, 교육, 에너지, 종교, 지역 부문을 총망라한 대규모 네트워크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비상행동은 각 정당의 총선 정책 질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의지박약”, 미래통합당 “기승전핵”, 정의당 “타의모범”, 국민의당 “한참부족”, 녹색당 “타의모범”이라고 평가했다.
 
총선이 끝나고 난 후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와 안정적인 의회권력을 확보한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대응에 필요한 개별 정책들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과 함께 기존 프레임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와 21대 국회는 인류와 자연의 역사가 바뀌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국가를 개조한다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듯이 비상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상황을 진단하고 민주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실행하는 것이다.

지난달, 에너기후정책연구소는 배출제로, 그린뉴딜, 에너지전환, 지역전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기후국회·녹색사회 5대 전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추상적인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겠지만, 온건한 변화를 선호하는 정부의 정책과 여당의 당론과는 정책 목표와 추진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복합위기 시대에 역사적 과제를 엄중하게 받는다는 다짐은 사회 곳곳에서 표출된 다양한 대안들을 포용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연구소의 ‘5대 전환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향후 법·제도 변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첫째, 배출제로는 녹색국가와 녹색사회의 원칙이자 전제이며, 기존 시스템 해체적 관점(destruction functions)에서 배출제로를 실현하는 전략과제를 의미한다. “탈석탄과 탈내연기관차로 2050년 배출제로”를 위해 ① 신규 석발전소 건설 중단, 2030년까지 기존 석탄발전소 폐쇄 ② 제철산업을 포함한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탈탄소화 ③ 2030년 내연기관차 생산·판매 금지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쟁점은 탈석탄 단계적 시점과 탈내연기관차 수용 여부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일부 석탄발전 감축 시나리오가 포함될 것으로 보이나 2030년 탈석탄 시점과는 괴리가 상당할 것이다. 정부가 수소차와 전기차 보급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탈내연기관차 시점 설정에는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그린뉴딜은 개념상 녹색전환 전 분야를 포괄할 수도 있지만, 노동·산업과 인프라스트럭처의 전환(commoning과 infrastructuring)에 초점을 맞춘 전략과제로 고안할 수 있다. “그린뉴딜 전환과 좋은 일자리, 더 나은 삶”을 위해 ①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주도하는 그린뉴딜 계획 수립·실행 ② 모든 산업의 탈탄소 녹색산업 전환과 일자리 창출 ③ 녹색 공공 인프라스트럭처 확충과 보편적 복지 실현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감안하면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관련 법 제정과 계획 수립은 가능하겠지만, 그린뉴딜에 부합하는 정책과 사업으로 구체화될지는 미지수다. 탄소세와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될 것인데, 무엇보다 사회적 공론화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에너지전환은 탈탄소 논의에서 제외되기 쉬운 탈핵을 포함해, 창조적 관점(creation functions)에서 양질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그 범위로 해서 연성에너지시스템 전환을 위한 전략과제를 제안한다.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통한 RE100”을 위해 ① 2035 탈핵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② 2050 재생에너지 100%와 인프라스트럭처 확충 ③ 에너지 낭비 근절과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수요 저감 ④ 전환 비용 분담과 재생에너지 접근성 향상이 중요하다.

그러나 탈핵 시점 변경과 재생에너지 100%는 정부의 선택지가 아님이 분명하지만, ‘2050 탄소중립’ 검토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재생에너지 목표가 상향 조정될 여지도 있다. 올해 뜨거운 감자는 곧 시행 예정인 ‘사용후핵연료 공론조사’가 될 것인데, 공론조사 결과가 사회에 미칠 영향은 신고리 5·6호기와 유사할 것이다. 

넷째, 지역전환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방향에서 에너지·기후 대응 및 전환의 자치·분권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과제를 종합한다. “에너지 분권·자치와 기후대응을 위한 지역전환”을 위해서는 ① 2050년 지역에너지 전환·자립 실현 ② 에너지 분권·자치로 지역에너지시스템 구축 ③ 지역 맞춤형 그린뉴딜 자기조직화 ④ 시민참여 활성화와 지역전환 역량 강화를 실현해야 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더 많은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자체에서 에너지분권, 탄소제로와 그린뉴딜에 관심이 늘고 있고, 정부 역시 “지역 에너지전환 활성화를 위한 분권형 에너지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일정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섯째,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전환 프로젝트들을 실행하는 전환과정에서 필수적인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유용하고 타당한 전환정책(transition policy)의 틀을 구상하고 그에 따른 전략과제를 추진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① 국가·지역의 주요 계획에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실행방안 반영 ② 정의로운 전환의 다층 거버넌스 및 플랫폼 구성·운영 ③ 전환정책 프레임 도입 및 전환 프로그램 구상·실행을 시도해야 한다.

현재까지 주요 에너지·기후 관련 계획에서 빠져 있고, 에너지전환(원전)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과 제3차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 소극적으로 수용된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과 정책은 그린뉴딜과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에 일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동시에 핵발전과 석탄발전의 직간접 노동자들의 고용전환이 쟁점으로 부상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탈핵과 탈석탄 시점에 따라 해당 쟁점의 양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상의 배출제로, 그린뉴딜, 에너지전환, 지역전환,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과제는 비록 각론에서 정책 경합이 있더라도, 정책 우순선위의 최상단에 위치해야 한다. 에너지와 기후를 특정 부처의 개별 소관 업무로 인식하는 관행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후비상사태가 코로나19와 맞물려서 인류세(anthropocene)를 대표하는 현상이 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거대한 변환을 시작할 때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scmaru34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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