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혁신학회 회장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등으로 보호무역의 여파가 강해지더니 중국 우한발 코로나 사태로 국제무역 경색의 위기가 더해지고 있다.  95%의 에너지와 99%의 원재료를 수입하며 무역으로 대부분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는 애써 그 현실을 외면하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있더니 그냥 하릴 없이 당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역상대국과의 협상과 외교 역시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이거나 아예 진행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은 21세기에 진입하자마자 기후변화협상의 대응책이라는 미명 아래 중장기 에너지정책을 모두 자국의 기술개발 실적과 자국의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방안들로 채웠으며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목표 달성에 성공하였다. 유럽은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북해유전과 프랑스 원자력에 더하여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절약기술개발로, 미국은 자국 내 셰일가스 개발기술의 성공으로 기후변화협약 대응과 에너지 자급자족이라는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하였다. 이는 선진국들이 자국의 이해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첨단기술과 고급인력으로 무장하고 동시에 충분한 자체자원을 확보하였음을 의미한다. 최소한 에너지 측면에서는 말이다.

우리나라로서 다행인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내수가 버텨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민의 이동을 제한한 적이 없는 국가이며, 택배시스템의 견고함 덕분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수시장의 에너지사용은 선진국들과 같은 큰 수요하락 없이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에너지의 경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유럽과 미국이 이미 목표를 달성하여 에너지와 원재료의 수입량이 급격히 줄어든 상태이며, 동시에 자체적인 청정연료 보급에도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이미 유렵과 미국 모두 OPEC 등 중동국가에 의존할 일이 거의 없으며 미국은 우리나라에 셰일가스를 수출하는 수출국이 되었다. 경제는 엉망일지 모르나 에너지는 오히려 남아돌아 걱정인 상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발전부분에서 석탄과 원자력을 줄이고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런데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이라는 선진국의 21세기 대표적인 정책은 정부 발표 초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선진국 모두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으로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수입의존도를 크게 낮추고 기후변화협상에 대응하는데 성공한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그대로이고 에너지 분야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관련 예산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굴지의 대기업들 역시  원재료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기술개발이나 고급인력양성에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천연가스발전의 경우 가스터빈을 아직 국내에서 자체개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장비 역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자체적인 기술개발과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중장기 정책 보다 매번 그냥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오기만 하는데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보호무역 장벽과 코로나 사태로 여기저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지금, 기술개발과 고급인재풀의 구축으로 미리 준비하여온 선진국 기업들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반면 이를 게을리 한 한국 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이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국내에 가져오는 충격과 영향이 2016년에 벌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과 비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전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AI와 로봇, 빅데이터에 대하여 대통령후보들을 비롯한 모든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번 정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그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여 ‘타다’가 실패하고 ‘배달의 민족’이 국제적 기업으로 커지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AI, 로봇 분야의 최고급 인재들을 충분히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 역시 이 기회에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의 방향에 맞춘 인력양성과 기술개발이 함께 진행되지 못하면 새로운 분야의 기업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며 결국 시장에서 위기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 까 한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똥을 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을 게을리하면 다음의 변화와 기회에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코로나사태와 같은 외부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하면 우리는 정부의 정책변화가 아니고 그 외부 사태에 적응하기 위하여 힘들게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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