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태양광연계용서 27일 발화 이튿날까지 잔불
SOC 90% 하향제한 안한 상태 특수소화제 역부족

▲전남 해남군 한 태양광발전소 연계용 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배터리를 보관한 건물이 불타고 있다. ⓒ해남소방서
▲전남 해남군 한 태양광발전소 연계용 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배터리를 보관한 건물이 불타고 있다. ⓒ해남소방서

[이투뉴스] 정부 당국의 배터리 충전률(SOC) 상한제한 조치(옥외기준 90%)를 아직 이행하지 않은 태양광연계용 ESS(에너지저장장치)에서 27일 추가 화재가 발생했다. 별도 특수 소화설비를 설치한 배터리였지만 화재 예방에는 실패했다. 잇따른 화재사고와 REC(신재생공급인증서) 가격하락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산업 생태계가 또다시 급랭기류에 휩싸이게 됐다.

28일 본지 취재결과에 따르면, 이날 불은 전남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한 간척지(지목 畓)에 설치된 태양광연계용 ESS에서 오후 5시께 시작됐다. ESS건물 중간 부분에서 발화가 시작돼 불길이 전체로 번졌고, 4억67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뒤 진화됐다. 정부가 공식 집계한 ESS화재로는 2017년 첫 화재 이후 29번째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5시 35분경 화재신고를 접수해 소방인력 32명, 소방차 8대를 현장에 급파했다. 큰 불은 오후 6시 30분께, 잔불은 오후 11시 10분경 잡혔다. 하지만 이튿날인 28일 오전 잔불이 되살아나 현재까지 건물 붕괴위험으로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당국은 낮 시간에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배전계통에 방전하는 과정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내주초 합동조사를 벌여 화재 원인규명에 나설 예정이다.

이 시설은 A사가 생산한 500kW급 PCS(전력변환장치)와 B사가 생산한 1842MWh급 리튬이온배터리 조합이다. 2018년 3월 사용전검사를 받아 운영을 시작했고, 올 초 당국의 SOC(충전율) 상한제약 조치가 내려졌으나 기존처럼 배터리 충전율을 95%로 유지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터리 안전강화 조치는 완료된 설비다. 앞서 B사는 현장에 설치된 ESS 배터리를 회수해 화염 발생 시 소화약제를 터뜨려 불꽃을 억제하는 특수설비(패치)를 추가 설치한 뒤 이를 현장에 재설치했다. 이번 화재에서도 이들 설비가 작동해 전면 화재로의 확산시간은 늦췄으나 배터리 내부에 가득찬 에너지를 감당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제조사들의 추가 안전조치에도 화재가 재발하자 정부와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월 2차 사고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옥내 ESS는 SOC를 80%로, 옥외는 90%로 제한하고 이를 준수하는 사업장만 REC를 지급하겠다고 했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ESS는 배터리기준 5400MWh, 이 중 태양광연계용만 2000MWh에 달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SOC상한을 제한하면서 어떤 선행분석없이 임의로 80%, 90%로 정한 것이 문제이지, SOC 제한자체는 화재저감을 위해 잘한 조치"라며 "SOC 제한의 효용성은 유효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열화(aging)나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오류 등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ESS 전문가는 "SOC상한을 제한해도 이미 과거에 과도하게 충·방전해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라면 90%도 견디지 못할 수 있다"면서 "해외에선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면 몇년안에 10년 사용한 것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BMS에서 데이터를 읽어오는 과정에서도 에러(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전기, 화학, 설계, 시공, 운영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터놓고 대책을 논의했어야 하는데, 무작정 배터업체만 죽이면 안된다고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배터리는 ESS의 하나의 구성품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 세계 ESS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정작 국내만 화재사고 이슈에 갇혀 한발짝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SS 운영조건을 전력계통에 기여하면서 배터리 부하를 낮추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그에 따라 정부 지원·보급 정책도 후속 조율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한 재생에너지 전문가는 "정부가 안전성 검토도 없이 무리해 ESS보급정책을 추진한 것이 문제이지 ESS자체는 태양광 및 풍력 확대에 따라 적정한 보급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다만 배터리기업도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노력 대신 국내시장서 안분지족하며 덮고 가려고 했다. 지킬 것을 안 지켜서 생긴 일들"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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