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 해양대학교 산학연ETRS센터 초빙교수

▲김재민 해양대학교 산학연ETRS센터 초빙교수
김재민
해양대학교
산학연ETRS센터
초빙교수

[이투뉴스 칼럼 / 김재민] 건축·토목만큼 경기부양 효과가 크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은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뉴딜 정책에도 건축·토목 개발 프로젝트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국형 뉴딜정책에서도 공공건축물 대상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예산이 마련돼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한편 건축물에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제로에너지건물 보급 촉진 정책은 금년부터 공공건축물에서 의무화됐고, 2025년에는 민간 건축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그러나 그린리모델링이나 제로에너지건물 정책 추진이 건축물을 보수하고 새 건물을 짓는 정도로 진행된다면 ‘뉴딜’이 될 수는 없다. 새로운 거래의 법칙을 세우고 지속가능한 신산업 성장 동력으로 세우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업의 특성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로에너지건물이란 연간 수요 총량과 건축물에서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총량이 같은 건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는 제로에너지건물의 시장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기준을 완화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이루기에는 단편적이다. 석탄발전과 같은 대형 탄소배출원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력수요 측에서 일정규모 이상의 수요량 저감이 일정기간 이상 예측 가능하게 지속돼야 한다. 건축물이 이러한 발전체계의 탄소배출 저감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에서 건축물로의 순간전력 유입량 즉 피크수요를 낮추는 것과 함께 건축물 혹은 부지에서 생산된 신재생에너지의 잉여발전량을 전력망에 내보내는 양도 일정 제한토록 해야 한다. 이는 지역 전력망 내에서 불규칙한 전력수요의 출렁임을 최소화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전력망을 운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시간대별 수요와 공급의 실시간 밸런스까지 고려한 에너지 제어시스템은 고도화된 데이터 처리 및 통신기술로 구현된다. 이것을 한전 독립형 제로에너지건물·단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필수로 도입되는 제로에너지건물은 정적 구조물이 아닌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설계자의 의도에 맞추어 시공을 제대로 했는가와 함께 준공 후 에너지 성능이 보증되어야 한다. 설계 목표와 실제 운영의 성능 차이에 대해서는 건물 에너지 성능 평가 제도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유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다. 영국의 경우 설계 에너지 소비량 목표와 실제 에너지 소비량 데이터를 건물별로 공개하는 카본버즈(https://www.carbonbuzz.org)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건물 유형의 에너지 소비량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데 설계 목표와 운영상의 실제 소비량 차이는 10∼20% 오차 허용범위 수준을 넘어서는 때로는 100∼200% 차이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최초의 제로에너지 공공건축물인 서울에너지드림센터도 설계 시의 부하 예측이 실제 보다 커서 과용량 설비가 설치 운영이 되고 있으며 제로에너지 주택인 노원이지하우스도 설계 시의 예측보다 다소 높은 실제 에너지 소비량이 보고됐다. 

현재의 공공건축물 발주 사업에서 에너지 운영 성능을 생산자가 보증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제로에너지건물의 운영 성능을 보증 받기 위해서는 준공 후 일정기간 에너지 시스템의 모니터링 후 평가가 요구되는데 준공 검사 기준과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품질의 문제가 있을 시 책임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투명하고 공정한 분석법과 법적으로 보상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제로에너지건물 준공이후 운영 성능의 검증제도는 궁극적으로 건축물 소유자와 사용자에게 고품질의 생산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기술적으로는 건축물 설계, 시공, 운영과정에서 데이터 처리와 분석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게 된다. 건설 사업자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금전적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관 산업의 파급효과를 기대하면서 제로에너지건물 사업 참여자들에게 합당한 이익과 공정한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축 산업에서의 하나의 작은(?) 제도 개선을 통해 한국형 뉴딜의 핵심 목적인 신성장 산업 공급망 구축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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