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혁신학회 회장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디즈니의 영화 어벤져스(Avengers)는 마블(Marvel)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시리즈로, 지난 10년 동안 나온 4편 모두 최고의 흥행실적을 올렸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어벤져스 엔드게임(Endgame)’은 2019년 개봉하여 역대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에서만 1,400만 여명이 관람하였다. 대표적인 상업영화인 어벤져스는 재미있게도 영화의 배경이 먼 미래나 멀리 떨어진 우주 저편의 세상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이자 지구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구성에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재 우리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특히 그 사상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선명하게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악당과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선악의 구도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대표 악당은 타이탄족인 타노스(Thanos)이다. 타노스가 6개의 인피니티 스톤들을 붙인 갑옷장갑(건틀렛)을 착용 하고 손가락을 튕겨(핑거스냅) 전 세계 모든 생명의 절반을 없앤다는 줄거리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타노스는 친절하게도 왜 이런 악행을 하는지 영화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타이탄 행성은 자원이 고갈되고 인구가 과밀화되는 격변을 겪었다. 타노스는 멸망을 막기 위하여 타이탄의 인구 중 절반을 무작위로 제거하여 남은 절반만이라도 살리자고 주장했으나 거부당하였다. 결국 타이탄 행성은 멸망했고, 타노스는 자기 고향이 당한 것과 같은 비극이 다른 세계에도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우주의 모든 생명 중 50%를 쓸어버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타노스가 악행의 이유라고 밝힌 ‘자원은 고갈되고 인구는 과밀화’된다는 문제는 바로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이라고 불리는 오래 된 경제학 이론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맬서스는 1798년 발간한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멜더스 트랩이며 바로 타노스가 밝힌 악행의 이유와 동일하다. 또한 맬서스는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이후 영국정부가 빈민법을 개정하여 빈민을 위한 복지제도를 없애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이 식량의 증산은 물론 산아조절과 전염병 예방 등에서 성과를 내었기 때문이다.

멜더스가 활약하던 18세기 중엽은 바로 제1차 산업혁명이 영국 전역으로 퍼지던 시기였으며, 농업사회가 중심이었던 영국은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맬서스는 그러나 경제를 기존의 노동과 토지라는 농업생산시대의 사고로 생각하였고 산업혁명이나 기술혁신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땅을 많이 가지고 있던 기존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재미있게도 타노스가 그의 악행을 모두 끝내고는 휴식을 취하러 간 곳이 바로 농장이다.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이 타노스를 농업시대를 대표하는 대표 캐릭터로 상정하였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급격한 변화는 경제학 이론에도 새로운 사조를 등장시켰는데, 바로 땅이 아니라 산업이 만들어내는 자본을 중요시한 아담스미스 등과 지주가 아니라 노동을 중요시한 마르크스 등이다. 이후 2차 및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은 20세기를 관통하는 주요 경제사조가 된다. 이는 어벤져스의 주인공이자 마지막에 타노스를 물리친 영웅, 아이언맨(Ironman)으로 대표된다. 

아이언맨은 타노스와 달리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특별한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무기판매로 벌어들인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기술에 투자하여 엄청난 기능을 가진 장비를 새로 제조하고 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혁신가이자 사업가이다. 또한 가슴에 소형원자로를 박아 넣고 스스로 망치질하여 아이언 수트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기능공(영화에서 본인을 이렇게 칭한다)이다. 즉, 아이언맨은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기술혁신의 긍정적인 측면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인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언맨은 마지막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인류의 미래를 구원한다. 그렇지만 타노스가 걱정하던 ‘자원은 고갈되고 인구는 과밀화’될 위기에 인류를 그대로 남겨둔다. 인류가 기술혁신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는 그러니까 농업시대의 신격 존재인 타노스에 대항하여 산업혁명시대의 인간들이 모여 힘을 합치고 기술혁신을 통하여 타노스를 무찌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비관론과 운명론으로 기존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에 대하여 낙관론과 혁신론으로 인류의 자율적인 해결능력에 믿음의 한 표를 보내는 영화인 것이다. 평범한 인간들이 힘을 합쳐 기술혁신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에 응원을 보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중심 사상은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서양의 사고를 관통하는 주요 사상이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COVID-19 사태는 우리에게 또 한 번 묻고 있다. 비관론과 운명론을 이야기 할 것인지 낙관론과 자발적인 혁신을 믿을 것인지 말이다. 

맬서스의 트랩에 버금가는 인류문명 종말론은 지금도 다양한 이름으로 성행 중이며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한 두려움 역시 온갖 이론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COVID-19 덕분에 이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반발과 규제가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미래를 견인할 기술혁신이 보다 빨리 자리 잡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이나 정보통신 중심의 산업혁명에 더하여 위생, 안전, 보건, 교육, 에너지, 환경, 교통, 도시 등 사회 인프라의 혁신에 중점을 두는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가고 혁신이 유도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류의 발전과정 중에 바로 이들 부분에 빈틈이 있었음을 일깨우는 중대 사건이 바로 작금의 COVID-19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 역시 기존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판단한다. 단순한 새로운 에너지원의 소개나 스마트미터기 보급의 수준이 아니라 에너지원간의 융합, 합병은 물론 건물, 교통 등의 다른 인프라 시스템과의 융합, 공급자-소비자간 양방향연동 시스템, 아시아국가간 에너지망 연계 등 새로운 인프라 구축의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류가 COVID-19의 문제를 넘어서면 경험하게 될 새로이 나타날 기술혁신과 사회 인프라가 기대된다. 그것이 인공지능로봇과 자율주행자동차가 다니는 세상일지 스마트시티에 살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세상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미래 사회에서도 문제의 해결은 평범함 인간들의 몫일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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