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發 한전발전사업 허용안 놓고 산업계 ‘냉가슴’
전기사업허가 풍력사업용량 95%가 40MW 초과
전문가들 "공기업 특혜성 법안 여당 발의 비극"

▲한전 발전사업 허용을 골자로 하는 여당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산업계가 공분하고 있다. 사진은 한 발전공기업이 건설한 회처리장 대형 태양광.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한전 발전사업 허용을 골자로 하는 여당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산업계가 공분하고 있다. 사진은 한 발전공기업이 건설한 회처리장 대형 태양광.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이투뉴스] “이훈(국회의원)이 떠나니 더 센 송갑석(의원)이 왔네요.”

전기판매사업 독점권을 보유한 한전에 재생에너지 발전사업까지 허용하는 내용의 여당발(發)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전력산업계가 때아닌 냉가슴을 앓고 있다. 한전은 이미 6개 발전자회사를 통해 국내 발전사업의 70%(설비용량기준)이상을 과점하고 있는데다 전력망 건설과 관리·운영을 전담하는 유일한 송전망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발전업계는 “글로벌 전력산업은 대형 유틸리티 기업이 자연스럽게 쇠퇴하며 분산형·분권형으로 진화하는데, 한국은 한전이 발전, 송·배전, 판매까지 독점하는 퇴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분하고 있다.

사달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여당 간사이자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인 송갑석 의원이 지난달 중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시작됐다. 법안의 골자는 동일 사업자에게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을 금지한 현행법을 허물어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업은 예외로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여기서 한전이 주장하는 예외는 발전용량 40MW 초과 신재생발전사업과 영농형·염전형 태양광 등 정부 고시사업이다. 굵직한 사업만 추진하니 민간 사업영역 침해 우려가 적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전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정부·대여(對與) 설득작업에 나서 일부로부터 ‘그 정도면 고려해볼만 하다’는 우호적 여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사한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19대 국회(노영민)와 20대 국회(홍익표·손금주)에서 발의됐을 때 야당의 원칙적 반대로 무산된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산업부도 한전안에 일부 동조하는 분위기”라면서 “이 마당에 여당까지 중심으로 못 잡고 한전 말만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과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의 몰이해와 무책임이 극에 달했다고 개탄한다. 전력산업구조개편에 관여했던 한 당국 관계자는 “바뀌어야 할 건 정부와 국회”라고 직격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돌아올 올 것이라고 믿는 중년”이라면서 “이미 모든 환경이 바뀌어 서둘러 산업과 시장을 바꿔야 할 판에 할 일은 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한전을 정부와 국회가 두둔하는 격"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구조를 건드리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구조개편 당시와도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져 이것 만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식의 도그마도 이젠 곤란하다”면서 “법안이 가져올 파장과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이 논의를 지속한 건 매우 위험하다”고 역설했다.

40MW 초과 발전사업으로 사업규모를 제한해 민간영역 침해 우려가 낮다는 한전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민간업계의 반론이 나온다. 풍력발전의 경우 전기사업허가를 득한 육상풍력 198건 중 42%(83건), 해상풍력사업 26건 중 58%(15건)가 각각 한전이 말하는 40MW 초과사업이다. 설비용량으로 따져보면 전체 허가 해상풍력사업 3136MW의 95%인 2977MW가 40MW초과사업에 해당한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도 RPS로 민간을 줄 세우는 한전이 앞으론 풍력사업을 싹 쓸어하겠다는 것”이라면서 “한전의 사업능력은 10년이나 지체된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으로 이미 검증됐다. 무슨 낯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이끌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전환을 기치로 내건 정부와 여당이 김대중 정부부터 이어져 온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철학과 에너지분권 정당의 본분을 잊고 특혜성 법안 논의를 방관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민간기업 한 CEO는 “그런 법안이 나왔다는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진행한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취지와 배경에 대해 철저히 무지하다는 반증”이라며 “산업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 없이 특정 공기업 특혜성 법안을 여당 간사가 버젓이 내놨다는 건 다소 비극적”이라고 일갈했다.

이 CEO는 “십수년전부터 민간이 갖은 고생을 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것인데, 정작 한전이 해야 할 본분은 발전사업이 아니라 계통을 확보하지 못해 적체된 수GW 단위 허가사업 조기 해소”라면서 “한전이 그간 해외시장 개척한다며 미국, 멕시코, 일본 등에 투자한 재생에너지 사업의 비참한 결과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 수준이 너무 낮다”고 했다.

한전이 굳이 발전사업을 영위하겠다면 송전사업 분리나 판매사업 개방을 전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판매회사가 재생에너지를 책임지므로 한전 발전사업 참여자체는 가능할 수 있다”며 “다만 그 경우 판매를 반드시 개방하거나 계통을 독립시켜 망중립성 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그런 전제없이 발전, 계통, 판매까지 다 하자는 건 전 세계 산업 흐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라면서 “만약 도로공사가 고속버스만 통행시킨다거나 트럭 판매권을 갖는다면 납득이 되겠나. 전력망과 같은 사회적 설비 개방과 공유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산업의 조류”라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나주혁신도시 한전 본사 전경
▲나주혁신도시 한전 본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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