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獨 등 석탄발전 전환 과정에서 지역경제 대책 마련
에너지전환에 맞춰 지역주민 피해 최소화할 방안 필요

[이투뉴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주요 정책에는 에너지전환에 따른 산업축소 예상지역엔 공정한 전환을 지원한다고 했다. 공정한 전환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사업축소가 예상되는 위기지역에 신재생에너지로 업종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독일,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석탄산업에서 신재생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종사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공정한 전환이 어떤 의미인지 생소한 부분도 많다.

공정한 전환을 이뤄지고 있는 해외사례와 국내 적용을 준비 중인 지자체 등의 현황을 파악, 향후 어떤 방식으로 국내에 공정한 전환을 이행해야 할지 알아본다.

◆공정한 전환 통해 기후변화 및 일자리 창출 모색
공정한 전환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90년대다. 미국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가 ‘노동자를 위한 슈퍼기금’을 제안하면서다. 환경보호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을 위해 재정 지원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OCAW는 미국 노동연구원과 함께 공정한 전환 연대를 설립했다. 이후 국제노동조합연합은 교토의정서와 관련해 공정한 전환을 언급했으며, 1998년 캐나다 노동조합연합 활동가인 브라이언 콜러는 캐나다에너지화학노조 뉴스레터에서 공정한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처음 공정한 전환은 일자리 위기에 놓인 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등장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제고와 함께 환경·사회·경제적 차원의 의미로 발전했다. 이런 담론은 국가·지역 단위 노동조합을 통해 확산됐다. 주로 환경변화가 사회·보건 측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됐으며, 스페인·영국·호주 등은 기존 직업안전보건에서 기후·환경 의제로 공정한 전환을 확장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공정한 전환은 유엔환경계획, 국제노동기구 등이 공동 수립한 ‘녹색일자리 이니셔티브’에도 반영됐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도출된 칸쿤 합의에도 반영됐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공정한 전환은 독일, 캐나다 등 연방정부, 그린피스와 세계자연기금 등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 냈다.

2010년대 이후 공정한 전환의 개념은 지역별·분야별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발전한다. 유엔 산하기관, 각국 정부기관,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단체가 공정한 전환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사용 주체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 발표한 파리협정문에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공정한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8년 폴란드에서 열린 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는 연대와 공정한 전환에 관한 실레지아 선언이 채택되며 기후 취약계층의 사회적 포용에 대한 논의를 내포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이를 통해 공정한 전환을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포용적 전환을 보장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필수적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해외연구기관은 공정한 전환이 모두에게 공정해야하며 경제·금융 모든 부문에서 심층적인 탈탄소화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는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할 수 있는 속도와 수준으로 공정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글로벌 환경시민단체 지구의 벗은 공정한 전환을 통해 노동자와 그 커뮤니티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결정권자들은 전환이 실업률 제로, 커뮤니티 단절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하고 공정한 전환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노동자 기술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루르 지방은 과거 석탄 및 철강산업으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에너지전환 선도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독일 루르 지방은 과거 석탄 및 철강산업으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에너지전환 선도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해외선 사회합의체·지역사회 대책 등으로 공정한 전환 준비
에너지전환에 대한 사회적 지원 필요성은 몇 년 전부터 미국, 호주, 남아공 등을 중심으로 기후정책으로 의제화하기 위해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2018년 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공정한 전환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의장국인 폴란드는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저탄소 전환이 공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동반해야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공정한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사회합의체 조직 ▶전환계획 논의 ▶일자리 및 지역사회 대책 마련 ▶기금 조성 및 운영 등으로 공정한 전환을 이어나가고 있다.

EU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2050년까지 80% 이상 감축할 것을 선언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기존 화석연료 기반에서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발전부문에서 석탄 감축이 선행돼야 한다. 석탄발전은 대규모 시설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규모가 크고 대부분 일년 내내 가동되고 있다. 주변지역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선 지역사회와 합의가 필수적이다.

EU는 석탄 광산 및 발전소 노동자가 23만8000명에 이르고 있다. EU의 탈석탄 계획에 따라 노동자 23만8000명 중 16만명이 2030년 직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석탄산업은 지역적 편중성으로 특정 지역의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는 석탄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재훈련 및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EU 공동체 장기 예산 계획인 '2014~2020 다년도 지출계획'에는 EU 예산 20% 이상을 기후변화 관련 항목에 지출하도록 계획돼 있다. 이 예산을 활용해 사회 자금으로 근로자 재교육 지원과 구직 활동을 돕는데 활용하고,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활동에 대한 자금지원은 재생에너지부문 개발 및 에너지네트워크 현대화를 지원하고 있다. EU는 공정한 전환 기금과 관련해 지원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EU는 석탄 채굴지역과 같이 탈탄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을 위해 공정한 전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독일 역시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공정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독일 석탄 및 철강산업을 대표했던 루르(Ruhr)지역은 에너지전환 선도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정부의 단계적 석탄 폐지에 따라 루르지역은 일방적인 결정 없이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일선상에서 토론하며 공정한 전환을 일정부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르지역은 대규모 산업전환이 이뤄졌지만 2018년 기준 실업률이 독일 평균인 9.5%보다 낮은 5.2%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지역경제에 현실적 대안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부족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석탄산업 폐지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환경단체와 노동자, 산업계가 협의체를 만들어 공정한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석탄 퇴출을 위한 일정을 만들고 있다.

캐나다는 탈석탄의 영향을 받는 범위를 비교적 좁게 보고 해당 영역 내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지원하며 정부 주도로 석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석탄산업으로 생계를 의지하는 앨버타(Alberta) 주와 서스캐쳐원(Saskatchewa) 주는 단계적 석탄 퇴출에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공정한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앨버타 주는 지역사회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석탄공동체 전환기금(CCTF)과 석탄노동자 전환프로그램(CWTP)을 설치해 기금 4500만 캐나다 달러를 조성했다. CCTF는 근로자,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목적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에너지전환 전략을 개발하고 석탄산업 폐쇄로 인한 지역경제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CWTP는 국가 고용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석탄 근로자에게 소득지원, 이주지원, 기술 재훈련 및 구직활동을 지원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공정한 전환은 단기간에 달성하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사회의 지속적 대화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공정한 전환을 단순히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보상하는 복지차원이 아닌 새로운 기회와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특별대책위원회를 통해 보령화력발전 1·2호기를 올해 조기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쇠퇴하지 않으면서 에너지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특별대책위원회를 통해 보령화력발전 1·2호기를 올해 조기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쇠퇴하지 않으면서 에너지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국내 석탄발전 폐쇄과정서 소통과 공감 필요
우리나라는 지난 7월 그린뉴딜 세부방안 발표를 제외하면 본격적인 정책이나 방안 수준에서 공정한 전환이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발전량 중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편으로 다른 국가들이 석탄비중을 빠르게 줄이는 것과 비교하면 1992년 이후 전반적으로 석탄발전량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특별대책위원회를 통해 공정률이 낮은 석탄발전소 재검토에 나서 노후발전소 6기를 조기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중 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는 올해 12월로 앞당겨 폐쇄하기로 했다. 석탄화력 폐지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고용승계 및 전환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석탄산업에 종사하는 외주 인력과 비정규직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노동시장의 불일치로 고용 취약점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사회연구소가 석탄화력발전이 가장 많이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이해관계자들과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저탄소·친환경 에너지전환은 대부분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석탄발전소가 지역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충분한 대안 없이 폐지를 수용하기 힘들며 정부의 모호한 전환 계획에 우려를 나타냈다.

석탄화력 폐지와 관련해 발전사 노조와 발전사는 인력과 수익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크다고 답했다. 지자체도 석탄화력 폐지에 찬성하지만 지역일자리 손실과 시설폐쇄에 따른 인구감소 및 지방정부 지원금 감소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이해관계자들은 석탄화력을 폐지하면 좁게는 발전사와 협력업체 직원이 고용시장이 취약해지고, 넓게는 발전소 인근 주민까지 공정한 전환을 통한 정책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는 석탄화력이 폐지되면 일자리 축소뿐만 아니라 인구감소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어 공정한 전환을 추진하는 데 있어 발전사 노조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게 아닌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자체는 지역주민 피해 최소화와 공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피해를 감수했던 시민이 에너지전환에 의해 또다시 추가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최소화하자는 의미다.

반면 환경시민단체는 기후변화 대응과 약자에 대한 피해 최소화를 공정한 전환의 속성으로 꼽았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자보다 기후변화 대응 실패로 발생하는 피해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에너지전환 이해관계자를 지역주민으로 한정하는 게 아닌 전지구적으로 보고 기후변화 대응 속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정한 전환을 국내에서 이루기 위해선 에너지전환에 따른 긍정적인 변화가 되도록 빨리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지역 핵심산업이 문을 닫으면서 발생하는 지역쇠퇴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관련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고용안정, 재교육, 생활안정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지역주민 및 노동자, 그리고 지자체와 중앙정부 모두가 함께 대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각 지역이 처한 상황에 맞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에 맞는 전환계획을 세워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지역사회 동의가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공정한 전환 기금의 목적과 범위를 정해 사회적 책임투자를 견인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진경남 기자 jin0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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