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메이저 BP, 위안화 결제로 석유거래에 시장 들썩
전문가 긍정·부정 의견 분분…“안착 시 파급 엄청날 것”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원유저장탱크 및 송유관.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원유저장탱크 및 송유관.

[이투뉴스] 석유메이저 중 하나인 영국 BP사가 7월 상하이국제에너지거래소(INE, Shanghai International Energy Exchange)를 통해 중국에 원유 300만배럴을 납품하면서 위안화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된 원유는 중국 산둥성 INE저장시설에 인도됐으며 BP는 8월 아부다비 어퍼자쿰 원유 100만배럴을 추가인도했다.

이에 시장전문가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원유거래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 싱가포르상품거래소(SMX), 런던대륙간거래소(ICE) 등에서 달러화로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INE가 개장한 것은 2018년이지만 그동안은 중국 내에서의 거래에 국한됐을 뿐 BP와 같은 석유메이저가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INE 개장 당시 전문가들은 WTI, 브렌트와 비등한 경쟁시장으로 떠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다. 또 위안화 거래는 자국기업의 시장참여는 독려할 수 있으나 환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외국기업에는 걸림돌이 돼 시장확장의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시장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원유시장의 흐름을 동북아로 끌어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득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페트로위안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BP의 거래가 중국투자자들의 강력한 매수로 INE 선물이 브렌트 선물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가지면서 수익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INE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장비용으로 인해 원유저장을 통한 수익을 내기 쉬워졌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중국은 급증하는 원유저장량에 대처하기 위해 4월 이후 저장탱크 용량을 6000만배럴로 기존의 두 배 이상 증대시킨 바 있다.

이처럼 세계원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점차 가속되고 있다.

▲리 치앙 상하이 공산당대표(왼쪽)과 류 시유 중국증권규제위원회 위원장이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 원유거래를 시작하면서 징을 치고 있다.(사진: 신화통신)
▲리 치앙 상하이 공산당대표(왼쪽)와 류 시유 중국증권규제위원회 위원장이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 원유거래를 시작하면서 징을 치고 있다.

◆INE 미결제약정, 전년대비 88% 성장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는 경제를 바탕으로 원유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해 세계 최대의 원유수입국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대수요자임에도 불구하고 중동시장의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불안정인 원유공급 상황을 이어가자 이를 대비하기 위해 원유선물 도입을 추진한 것이 INE의 시작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전통적으로 구입해 온 중질유를 거래하기에는 경질유가 주력인 NYMEX, ICE의 수급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외에도 두바이상업거래소(DME), 도쿄상품거래소(TOCOM), 인도멀티상품거래소(MCX) 등이 있지만 이들은 거래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이 미흡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 원유선물시장 도입배경으로 ▶위안화 가치상승 유도 ▶국제 원유시장 영향력 배가 ▶아시아지역 새로운 벤치마크원유 등극 등을 꼽고 있다.

먼저 원유선물거래에 위안화가 사용될 경우 위안화를 국제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 등 일부국가와의 상품거래를 위해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거래규모가 크고 시장참여자가 많은 원유선물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제도화할 경우 페트로위안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 원유시장에서의 위상이 커지고 있는 중국이 그 위상을 더 키우기 위해 원유선물거래 시스템 구축으로 표출됐다는 시선이다. 자국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INE를 개설하고 중국인이나 중국 석유회사가 당사자인 원유거래를 할 때는 이 거래소를 활용하게 함으로써 최대수요자로서의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비친다.

아울러 INE를 동북아지역 원유 벤치마크로 성장시켜 중동의 아시아향(向) 원유가격에 아시아의 수급상황이 반영되기 힘든 현 상황을 수정해나갈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된다. 현재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중동산 원유를 구매할 때 활용하는 벤치마크 지표는 플래츠, 아거스 등의 가격발표기관이 자체적으로 평가해 발표한 두바이, 오만유 평균가격이기 때문이다.

개장 직후에는 INE가 일정이상 커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시장의 중간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 등에 힘입어 INE가 원유시장의 주도권을 동북아로 끌어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 덕분인지 INE의 원유선물계약은 지난 1년 동안 약 2배의 미결제약정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기준 상하이원유계약 미결제약정은 12만874개로 1년전 같은달 6만4168개에서 88.4% 증가했다.

미결제약정은 결제가 이뤄지지 않은 계약을 뜻한다. 유통되는 원유의 물량에 한계가 있는 이상 한도를 넘어서면 원유를 매수할 수 없다. 반면 선물시장은 매수와 매도에 대한 약속만 있다면 무한정 늘릴 수 있다. 실제 거래량보다는 잠재적인 수요를 예측하는 지표가 되는 셈이다.

다만 INE의 성장이 코로나19 유행에 편승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간상업은행 포브스&맨해튼의 스탠 바티 CEO는 최근 “INE는 WTI와 브렌트유를 뒤쫓고 있지만 국내시장에 초점을 맞춘 계약”이라며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주요산업의 가격을 변경할만큼 충분한 석유를 생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자문사 메르카투스에너지어드바이저의 마이클 콜리 사장 역시 “출시 이후 2년이 조금 넘었음에도 INE의 석유선물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의 10%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만 WTI, 브렌트와 유사한 글로벌 벤치마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거래가 한창인 상하이 선물 거래소.
▲거래가 한창인 상하이 선물 거래소.

◆“INE는 위안화 안정 위한 포석”
서병기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INE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긍정·부정 의견이 갈리는 사항”이라며 “다만 부정적인 의견도 INE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깨끗하지 못한 정책과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문제시하는 것임을 감안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INE는 결제통화를 위안화로 지정함으로써 위안화 기축통화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이다. 위안화를 기반으로 국제 원유선물 거래시장을 개시하는 것은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힘들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한편 안착시켰을 경우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서 교수는 “INE는 8월기준 전체 원유거래량 25억배럴을 기록하는 등 이미 작은 시장이라고 볼 수 없다”며 “INE거래량은 브렌트와 WTI의 5분의 1수준까지, 미결제약정은 10분의 1까지 따라잡았다”고 말했다. 또 “한참 멀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라며 “INE는 이미 코스피 선물시장 수준으로 성장해 중국 내에서는 충분한 입지를 구축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년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INE 원유선물 미결제약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최대의 원유수입국인 점과 위안화가 특별인출권 통화에 포함된 점,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원유자급도 상승과 지정학적 이유 등으로 위안화 결제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페트로달러에 대한 새로운 양상을 불러올 수 있다. 안정적이지 않은 위안화를 원유결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화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이다.

서병기 교수는 “상하이 입장에서는 INE가 여러 국가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미래를 그리고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이 INE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국과의 관계 등 국제역학관계상 지금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선물시장에 들어가는 일 자체는 쉬우니 민간정유사들은 INE가 충분히 커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초 유가가 급락할 때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INE였던만큼 민간사 입장에서도 위안화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오 기자 kj123@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