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도대체 누가 저런 정책을 만들었을까? 정부 수소발전의무화제도(HPS) 도입계획을 듣고 있노라니 강한 궁금증이 일었다. HPS 도입계획은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애초 첫 이름은 ‘수소연료전지의무화’. 몇몇 대기업 총수들과 공기업 사장의 얼굴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실제 HPS 발표 이후 이들 기업의 주가는 두 자릿수로 뜀박질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수소경제의 찬란한 미래를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이해는 느려도 눈치는 있다. 지난 6월 정부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을 지원해 연료전지를 설치한 경기‧인천지역 가정과 사업장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열에 아홉 곳은 설치 후 얼마 되지 않은 설비를 애물단지로 방치한 상태다. “돈이 안 든다고 멋모르고 설치했다”는 순박한 얼굴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연료전지 앞에서 죄를 지은 양 무안해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씩 건넨 말은 같았다. “국민 세금인데, 나랏돈을 잘 써야지, 이건 아니다”였다.

혹자는 한국판뉴딜(그린뉴딜), 수소경제에 수십조원씩 쏟아 붓는데 그깟 보급사업이 대수냐고 한다. 하지만 천문학적 그 예산들도 라면 한개 시금치 한단 가격을 이리저리 재는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미래 산업의 씨앗이 되어 국민경제를 살찌울 자신이 없다면 한 푼도 허투루 쓰여선 안된다. 오늘도 어려운 이웃들은 에너지바우처 보조금 몇 만원으로 겨울을 버텨낸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렇게 파격적이고 맹목적인 정책 발표에 앞서 공정한 분배와 산업효과를 면밀하게 따져봤어야 했다. HPS는 몇몇 수소테마기업 주가호재는 될지 모르나 온실가스 감축에도 역행할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과도 거리가 멀다.

에너지정책을 쥐락펴락하면서 그 비용을 아무렇지 않게 국민에게 청구하는 폐습을 이대로 둬야할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정책실패는 일정 시차를 두고 에너지비용 상승을 초래한다. 가스공사가 연료전지용 LNG를 저렴하게 공급하면, 그 차액은 반드시 일반 LNG소비자가 교차보조할 수밖에 없다. 한전이 실패한 해외 재생에너지사업 청산비용이나 발전공기업들의 묻지마식 에너지전환사업도 언젠가 전기료 청구서에 포함돼 국민이 대가를 지불한다. 산업·경제 필수재인 에너지로 이렇게 쉽게 국민 호주머니에 손을 대는 나라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