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규사업 2018년 반토막 "산업 고사위기"
전기료 할인특례·REC가중치 내년 종료 無대책

▲ESS 배터리팩을 적층한 컨테이너 내부
▲ESS 배터리팩을 적층한 컨테이너 내부

[이투뉴스] “배터리를 만드는 대기업만 빼고 PCS(전력변환장치)나 ESS 전문기업 모두 도산 직전이다. 산업 생태계도 밑바닥이 살아야 먹이사슬이 만들어지고 생태계가 유지된다.”(ESS 엔지니어링사 임원), “작년 6월 안전대책 발표 때 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 말로는 매일 신산업 육성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운운하지만 ESS산업 육성에 대한 로드맵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EPC기업 임원)

잇단 화재사고와 원인규명 조사로 2년 가까이 개점휴업 신세를 면치 못했던 ESS산업이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 정책으로 고사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서 그린뉴딜 시대의 유망 신산업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과 상황이 딴 판이다. 업계는 산업활성화 측면에 공공부문 사업을 확대하고 민간부문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도보완과 규제완화, 정책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기산업진흥회가 최근 ‘ESS 생태계 육성 통합협의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82개 ESS 제조‧시공‧운영사 회원기업 가운데 약 60% 이상은 사업을 포기했거나 신규 사업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단적으로 2018년 973곳에 달하던 신규사업장은 지난해 476곳으로, 같은기간 신규 설치용량은 배터리기준 3700MWh에서 지난해 1800MWh로 각각 반토막이 났다.

각종 지원제도 종료와 REC(신재생공급인증서) 가격 하락으로 사업성이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연계형 ESS 설치사업자는 “ESS는 오로지 REC만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가중치를 높게 부여해 사업을 장려할 때만 해도 REC단가가 10만원대였지만 지금은 4만원수준이라 수익구조가 나올 수 없다"며 "15년을 바라보고 설치한 ESS가 1~2년만에 사업 존폐 위기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다"고 말했다.

업황은 올해도 마찬가지. 이번 조사에서 주요 EPC기업들은 상반기에 평균 2건, 약 7MWh의 사업실적을 올렸으나 하반기 들어서는 수주실적이 거의 전무하며 내년엔 올해보다 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글로벌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 급성장하는데 한 때 세계시장 신규설치량의 3분의 1(2018년 기준)을 점유했던 한국은 산업생태계 존속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시장이 황폐화 된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ESS를 에너지신산업 핵심주자로 육성하겠다며 전기요금 할인특례와 REC가중치 추가부여 정책을 폈다. 피크저감용은 2017년 1월부터 올해말까지 충전 기본료를 3배 할인해주고, 경부하 시 충전요금도 50%까지 차등 할인했다. 또 풍력발전 연계형과 태양광용은 REC가중치 4~5배 부여로 보급을 촉진했다. 하지만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부터 이들 할인특례와 가중치는 일몰제가 적용돼 모든 사라진다.

가뜩이나 정부의 안전강화대책으로 충전률(SOC)을 제한(옥내 80%, 옥외 90%)해 수익성이 급감한 상황에 이들 지원정책까지 종료가 예고되자 시장수요가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700곳에 달하던 피크부하용 ESS 신규사업장은 '끝물' 이랄 수 있는 올해 10여곳으로 쪼그라 들었고, EPC기업들은 앞다퉈 관련 사업부를 축소·폐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연계형 역시 사업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업계는 인센티브 단계적 축소나 일몰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전기산업진흥회 관계자는 "피크부하용 신규는 기존 일몰제를 개별기간제로 개편해 15년간 기본료와 충전료 할인을 적용하고, 기존 사업장은 방전시간대를 추가 부여해 심야피크 1~2시간을 평균 최대수요전력 감축량 산정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정부 권고로 SOC를 하향 운전한 사업장은 해당기간만큼 일몰연장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PC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산업부가 안전대책을 발표하면서 약속한 손실보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로선 정부가 ESS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거나 부활시키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즉흥적이던 ESS 정책마저 그나마 사라질 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한전은 ESS비용만 강조하고 피크부하 저감이나 계통제약 해소에 따른 편익에 대해선 보고서하나 쓰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력시장 규제완화를 통해 ESS 신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ESS 엔지니어링기업 관계자는 "전력거래소가 만들어 놓은 ESS 참여시장 규칙이라도 정산기준을 만들어 해외처럼 사업자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또다른 기업 관계자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ESS의 도매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규제로시장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규제를 풀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A사 임원은 "모든 신산업이 초기엔 관(官)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민간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나와 자생할 때까지 제도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갖지 않는다. 국내경험으로 해외 진출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B사 임원은 "대기업에 줄을 대야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탈피할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전문기업들이 진입할 시장을 만들고, 거기서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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