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전기를 공짜로 쓰는 시대가 오고 있다. “독일은 전기요금이 마이너스다. 전기를 쓰면 돈을 준다” 몇 주 전 한 공중파 TV 토론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한 말이다. 또 다른 출연자는 “이미 제주도는 신재생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전기가 남을 때가 있다. 이때 전기를 쓰면 kWh당 80~90원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조금 있으면 육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다” 탈원전 논쟁 중에 재생에너지가 좋다는 취지의 발언 중에 나온 말들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팩트를 확인하지 못한 말을 엉겁결에 하게 되는 때가 있다. 토론자들의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전문가의 말이니 시청을 하는 일반인은 믿을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의 잘못된 인식이 더 굳어지기 전에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먼저 한전 제주본부에 확인해 보았다. 담당자의 처음 반응은 질문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 당황하는 눈치였다. 한참 동안 질문을 이해시킨 후 돌아온 답은 “전기가 필요할 때 안 쓰면 돈을 받는 제도(수요반응제도, DR)는 있으나 전기를 쓰고 돈을 받는 제도는 없다” 그리고 전력 과잉생산으로 금년 들어 가동 중지가 더욱 빈번해진 제주풍력에 대해서 가동 중지에 따른 보상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가동중지되어도 풍력발전사업자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는다”였다. 적어도 현재는 전기를 쓰면 돈을 받는 제도는 없다.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전기가 과잉생산될 때 적용할 목적으로 +DR 제도가 검토 중”인 것은 맞다. 전력거래소에서는 전기가 과잉공급될 때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발전을 하면 전력시장에서 SMP를 지급하지 않는 제도가 +DR이라는 설명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SMP를 받지 못하지만 REC를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다.
이 제도를 왜 +DR로 부르는지(시행 중인 DR 제도와 연관성이 없다), 과잉공급된 전기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짐작이 어렵지만 이 제도는 소비자 전기요금과 무관하다.
토론자의 말대로 전기를 쓰고 돈을 받는 제도였다면 소비자들은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어 쓰려고 할 것이 뻔하여 에너지 낭비를 조장하는 제도로 둔갑할 것이고,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결국 대다수 전기소비자 요금의 인상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량이 저감되므로 탄소배출 저감의무가 있는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윈-윈 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탄소배출량이 감소하려면 에너지소비가 줄거나 화석연료 발전량을 재생에너지가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전기가 과잉생산될 것으로 판단되면 재생에너지를 차단하거나 다른 발전기의 출력을 제한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석유수요가 감소하자 석유생산업자가 과잉생산된 석유를 웃돈을 주고 파는 일이 발생했다. 마이너스 가격으로라도 파는 것이 저장비용보다 부담이 작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유럽은 전력시장에서 공급과잉으로 인한 마이너스 도매가격이 종종 발생한다. 재생에너지 설비비중이 높은 독일은 마이너스 가격 발생빈도가 유럽에서 가장 높다. 2019년 한 해 동안 211시간이 마이너스 도매가격이었고 평균 -17유로/MWh(-23원/kWh)로 거래되었다. 
마이너스 도매가격에도 발전사업자들이 발전을 멈추지 않는 것은 발전소를 완전히 중단한 후 재가동하는 비용이 마이너스 도매가격으로 계속 발전하는 것보다 더 크거나 지역난방 열공급 의무 때문에 할 수 없이 발전을 해야 하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발전을 계속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발전을 멈출 이유가 없다. 독일의 전력망 사업자는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나라에 저가로 전기를 수출하거나 저장(배터리, 양수, 수소)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전기수입을 거부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을 차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차단 보상비용과 저장비용, 마이너스 가격 수출 중에 비용이 적은 대안부터 선택해 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이너스 도매요금으로 전기를 구입한 소비자는 도매가격 외에 송・배전망 이용료, 세금, 각종 부과금은 지불해야 한다. 독일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도매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분의 1에 불과하므로 소비자 전기요금이 마이너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전력시스템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 가격으로 발생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므로 이득을 취한 소비자를 제외한 나머지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소매가격은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 독일의 소비자 전기요금이 세계최고 수준인 이유이다. 

재생에너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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