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고장난 라디오도 이렇게 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 탓에 당장 전기요금을 크게 올려야 할 판이란 일부 언론보도가 그렇다.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다시 한 번 사실은 짚고 가자. 이 정부는 아직 제대로 탈원전을 이행해 본 적이 없다. 문정부 출범 전과 현재의 통계만 비교해도 간단히 확인되는 사실이다. 원전이용률, 설비용량, 전원내 원전비중은 이전 정부말보다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 한때 모든 수치가 ‘탈원전 착시’를 일으킨 적은 있다. 품질보증서를 위조한 부품 수만개를 들어내 재설치하거나 부실시공으로 원전 격납건물에 뚫린 구멍을 메우느라 다수호기를 동시에 세웠을 때다. 그걸 문제 삼아 안전을 포기하자는 국민은 없을 거다. 현 정부는 지금까지 ‘원전을 늘린 정부’이지 ‘탈원전을 한 정부’는 아니다. “5년 내 탈원전으로 전기료를 올릴 일은 없다”는 전 산업장관이 호언장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탈원전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 때문에 전기료 인상요인이 쌓였다는 주장은 그래서 말이 안된다. 적어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가 그렇고, 원전설비가 가장 많아지는 향후 2~3년 뒤까지도 그럴 것이다. 지금 전기료 원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건 석탄화력 쪽이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을 감발하고 가스발전을 늘리면, 석탄화력 중심 한전 자회사는 손해를 보고 가스발전 위주 민자발전사는 반사이익을 얻는다. 발전자회사들은 모기업인 한전과 딴집 살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전 식솔이다. 그들이 곤궁해지는 걸 모기업이 마냥 지켜볼 리 없다. 도매 전력시장의 '도깨비 방망이'로 통하는 정산조정계수는 그럴 때 쓰려고 만든 제도다. 한전의 곳간이 넉넉할 땐 자회사에 더 퍼주고, 반대일 땐 자회사 곳간에 됫박을 들이밀면 된다. 그런데 최근 저유가 영향으로 가스발전 연료인 LNG가격이 매우 저렴해졌다. 그 덕에 한전은 전력시장가격(SMP) 하락의 수혜를 보고 있다. 지금 한전의 요구는 일회성 전기료 인상이 아니다. 연료비와 연동한 요금 책정으로(연료비 연동제) 한전과 자회사가 천수답 신세를 면하게 해달라는 요구다. 그런 주장을 일부언론이 왜곡해 '한전이 탈원전으로 적자가 났다, 탈원전으로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기사를 쓰고 있다.

감사원과 검찰처럼 문외한들까지 끌어들인 월성1호기 조기폐로 공방은 느와르 영화가 따로없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사태는 현 정부의 자신감 결여와 미숙한 일처리가 만든 ‘긁어 부스럼’이다. 월성1호기는 2017년 1월 사법부로부터 수명연장 허가취소 판결을 받아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설비 규모도 요즘 가스발전소보다 작다. 그런데 그 원전을 앞당겨 닫겠다며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안전성이 아닌 경제성이다. 원전 수명연장 중단 및 신규원전 백지화는 이 정부가 국민들과 한 약속(대선공약)이다. 차라리 대통령이 나서 "국민을 위해 불안한 원전을 하루라도 빨리 닫겠다”고 선언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안전을 도외 시 한 졸속 수명연장 때는 그렇게 당당하게 했던 정부가 왜 국민안전을 챙기는 행정행위를 하면서는 그렇게 주눅이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혼란을 틈타 기다렸다는 듯 허허벌판에 기둥하나 박지 않은 계획단계의 백지화 원전(신한울 3,4호기)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어설픈 탈원전으로 국정을 마비지경으로 만든 여당 일각에서 군불을 때고 있다. 등잔 밑이 더 어두운 법이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계획상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정부가 상·하한을 정하는 정책성 전원이다. 특히 원전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집권당이나 위정자가 신념과 철학에 따라 단박에 4기 건설계획을 확정하기도 하고 돌연 폐로결정(고리 1호기)을 내리기도 해왔다. 언제까지 눈치만 살피는 '우왕좌왕 탈원전'을 지켜봐야 하는지 갑갑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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