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수급계획)이 확정되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제도도, 규제도, 정책도 바뀌게 마련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을 수 없듯이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맞추어 발전설비의 급속하고 꾸준한 건설이 필요했던 경제개발기에 한전은 자체적으로 ‘장기전원개발계획’을 입안하였다. 1980~1990년대에는 한전 자체의 계획으로 원전과 유연탄 발전소와 같은 대용량 발전설비의 건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입지선정과 설비건설을 마치는데 10년 가까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소 건설허가를 받기 위해 여러 부처의 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지역주민에 대한 지원 방안도 수립해야 했다. 정부는 1989년 전기사업법에 ‘장기전력수급계획’을 규정하여 발전설비 건설허가를 비롯 여러 인허가를 한꺼번에 의제처리할 수 있었다.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계획에는 향후 15년간의 발전설비 건설계획이 포함되어 원전 및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2001년 한전에서 발전부문이 분리·분할되어 경쟁이 도입되었을 때 전력수급계획은 설비건설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도로만 기능할 수 있도록 그 성격이 바뀌어야 했다. 발전경쟁 이전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발전설비의 건설과 파이낸싱을 위해 수직통합된 전력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전력수급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과 같은 구속적인 장기계약이 필요했고 이를 전력수급계획이 뒷받침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전력시장에서 발전설비는 본질적으로 스스로 위험에 노출되는 상업 발전설비(merchant plant)일 수밖에 없다. 전력시장에 뛰어 들어 돈을 벌고, 못 벌고는 발전사업자의 책임이다.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정부가 할 일은 전력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조건으로 전력을 판매할 때 이를 구매하도록 전력시장 규칙을 설계하고 집행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전력시장 출범 이후에도 정부가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발전설비의 진입을 불필요하게 ‘허가’하게 되면서 사실상 발전설비의 수익성에 대한 암묵적인 책임을 지게 된 셈이다. 에너지전환 시대는 과거처럼 대용량 발전설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원전과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한 결정이 부담스러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산업부가 ‘설비’의 건설과 그 진입허가라는 부처의 고유권한에만 매달리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력수급계획이 ‘설비’에 초점을 맞춰 정작 중요한 전원별 발전량 구성의 일관성과 정밀도는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5차 전력수급계획부터는 연도별 전원의 발전량 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설비건설에 초점을 맞춘 전력수급계획의 특성상 대용량 발전설비 준공시점에 따라 발전량 구성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원별 발전량 예측의 정밀성이 떨어지면서 두 가지 문제점이 파생되고 있다. 첫째는 전력수급계획에 기초하여 발표되는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의 부정확성이다. 발전용 천연가스 물량은 LNG 발전량과 직결되어 있는데 원전과 석탄화력 등 대용량 설비 중심으로 입안된 전력수급계획이 LNG 발전량을 과소예측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LNG 도입량은 항상 적정 이하로 이루어져 왔고 가스공사는 모자라는 물량을 현물거래나 단기계약으로 급하게 도입하는 비효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직수입이 크게 늘어나자 개별요금제를 도입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다. 둘째는 발전량 예측에 대한 정확성 부족으로 연도별 화력발전량 전망의 정밀도가 떨어지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에 대처해야 하는 환경부와의 협의도 어려워졌다. 

전력수급계획은 본래 원전이나 석탄화력과 같은 대용량 발전설비를 안정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만든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설비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전원별 발전량 구성이다. 먼저 전원별 발전량 구성을 제시해야 한다. 설비허가는 여기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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