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외 우려 불구 전기사업법 개정 강행 논란
전환정책 지지 산업계도 동요 "망중립성 훼손"

▲김종갑 한전 사장이 2019년 1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캐나디안솔라 발주 멕시코 태양광사업 착공식에 참석해 모듈에 기념사인을 하고 있다. ⓒE2 DB
▲김종갑 한전 사장이 2019년 1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캐나디안솔라 발주 멕시코 태양광사업 착공식에 참석해 모듈에 기념사인을 하고 있다. ⓒE2 DB

[이투뉴스] “결국 실패를 부를 것이다. 당장 3020(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2050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건 불가능하다. 탄소중립은 모든 국민이 동의하고 열심히 참여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데, 한전이 뛰어들면 많은 기업들과 국민들은 미리 포기하게 된다. 장기적으론 에너지전환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판매 독점의 한전이 발전까지 진출하는 것은 그나마 유지하던 망(網)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함으로써 발전시장 경쟁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중립은 사회전반의 제도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하고, 그 방향이 발전적이어야 한다. 한전 이익만을 위해 제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 시도를 멈추고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을 생각해야 한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

“김대중 정부가 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기치를 올렸는지 인식조차 없는 당이다. 일본은 지난해 전력망에 대한 추가 개혁안을 내놨다. 왜 그들은 지속해서 개혁할까. 청와대나 여당, 정부 누구도 공부도, 고민도 하지 않는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조급증이 훗날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A 에너지정책 전문가)

더불어민주당이 국내 최대 공기업이자 독점 전기판매‧송전망사업자인 한전에 발전사업까지 허용하기로 사실상 내부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계는 물론 현 정부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하던 산업계까지 크게 동요하고 있다. 

8일 발전업계와 국회소식통들에 따르면, 여당은 설연휴 이후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법안심사 소위에 올려 입법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을 금지한 현행법을 고쳐 한전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이와 관련 당 지도부는 소장파로 분류되는 일부 의원들의 이견에 대해서도 입단속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 발전사업 허용이 정리된 당내 방침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외부에 내부갈등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줄곧 전력시장 경쟁 촉진 원칙을 유지해 온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여당 방침에 조응하고 있다. 산업부는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이 전력산업과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 할 방안에 대해 학계 자문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회 한 소식통은 “우선 서남해와 신안지역 대규모 해상 풍력사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한전의 직접 사업참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여권내에서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전을 키워서 해외로 나가 수출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여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해당사업 추진 경과에 밝은 한 사업자는 “한전을 통한 일부지역 송전망 건설이 여의치 않자 여당 정치인들이 ‘발전사업을 허용해 주면 바로 망을 깔 수 있다’는 한전 제안을 덜컥 받아들인 것”이라며 “한전 밥그릇 싸움에 여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놀아나고 있다. 사업자가 하나 늘어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데, 그 심각성과 부작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설마했던 여당의 한전 발전사업 허용 방침 소식에 산‧학‧연은 술렁이고 있다. 에너지전환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여당과 정부가 에너지전환 철학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정치권 안팎에선 해당 논의가 자연스럽게 철회될 것으로 봤었다.

전문가들은 '구조개편의 완전한 역행'이라며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개편 때 정말 해야할 일을 하지않고 뭉그적거리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6개 발전자회사는 100% 한전 발전사"라면서 "처음부터 한전을 제대로 분리해 송배전회사로 뒀어야 이런 사달이 안났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한 사업자가 모두 다하면서 전력망까지 좌지우지하게 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도 없다. 중소규모 사업자들의 설 자리는 줄고 망 공정성과 중립성은 어떤 대안으로도 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시장을 더 개방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활성화 시켜야 분산화, 분권화가 가능한데 현 구도는 프로슈머로서의 소비자들 역할까지 축소시키고 참여를 제한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에너지서비스기업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독점기업으로 당장의 성과를 내려는 후진적 정책”이라면서 "해외사례도 보지 않나. 도대체 우리나라 안에서 소비자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김영산 한양대 교수는 “한전은 송배전을 담당하는 네트워크 회사로 남고 발전과 판매는 경쟁영역으로 넘겨야 할 판에 오히려 발전을 허용한다는 건 큰 그림에서 역진(逆進)”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발전자회사도 있는 한전이 민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굳이 직접해야 한다는 논리도 의아하고, 그건 요즘 말하는 혁신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면서 “재벌이 독립사업부제를 운영한다고 독립경영이 되겠나. 한전이 발전사업 한다면서 망중립을 지키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전환 운동에 앞장서 온 학계 역시 여당 행보에 큰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는 3020 정책 목표 달성이 불확실해진 정부와 여당이 한전을 통해 단기목표 달성에 급급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2050 탄소중립은 모든 국민이 동의하고 참여해야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고, 에너지전환 역시 최대한 많은 국민이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한전이 큰 프로젝트를 선점하면 많은 기업과 국민들은 미리 포기하고 장기적으론 에너지전환을 어렵게 할 것이다. 한전 이외 기업과 국민 모두를 구경꾼으로 만드는 악수”라고 직격했다.

그는 “장기적으론 에너지전환을 방해하는 거다. 큰 그림을 그리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싱크탱크를 만들어 세부전략을 조율하고 연구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거의 없었다”며 “독일의 경우도 대대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시킨 주체는 대형 전력회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개인과 중소기업이었다. 국민적 합의 아래 이뤄지는 에너지시스템 개조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와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시장 및 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재생에너지가 주력전원이 된다는 건 보조금을 받는 전원이 아니라 기존 화력발전기와 당당히 경쟁하면서 발전 경쟁시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발전시장과 판매시장의 경쟁도입과 가장 중요한 망의 중립성 보장은 전력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처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는 발전으로 소비변화를 맞춰 전력망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발전의 변동성을 소비변화로 맞춰야 한다. 현재 같은 판매독점으로는 더이상 재생에너지를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전력시장 판매를 허용하고 많은 서비스제공자가 소비자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상황에 한전 발전사업 허용은 탄소중립 위한 시장과 제도, 규칙의 개선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의 오판을 방기하고 있는 정부가 더 큰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참여했던 당국 한 관계자는 “전력망 확충의 본분을 다해야 할 한전에 민간도 서로하려는 경쟁시장인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건 공공연한 특혜를 대놓고 방치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재생에너지 사업이 국가가 가야할 공익적 방향이라면 거기서 유발되는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공동부담해 한전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부가 나서 기존 전기사업법 정신을 부정하고 불공정을 자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은 우선 규모가 큰 사업만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장기적으론 송전계통에 이어 배전망까지 모두 도맡게 되는 또다른 형태의 재생에너지 수직통합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라며 “왜 한국은 충분한 논의없이 항상 쉬운 길만 찾는지 모르겠다.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정부라면 당장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또다른 전력당국 관계자는 전 세계적 조류와도 배치되는 결정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에너지전환은 분산화와 디지털화, 발전사업의 참여로 이뤄지고, 분산화가 된다는 건 의사결정 역시 모든 절차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독점을 배제하는 쪽으로 간다는 의미"라면서 "이번 방침은 공은 한전이 가져가고 하고, 리스크는 국민에게 나눠 지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단기에 빨리 에너지전환을 할 수 있다는 한전의 주장 이면에 감추고 싶은 진실은 이해상충과 불투명성, 지속불가능 등일 것"이라며 "과거 스마트그리드사업과 ESS 보급사업 때 한전의 행태가 어떠했는지 안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한층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민간사 관계자는 “RE100 중개거래부터 재생에너지발전까지 모두 한전이 다 하겠다는 거냐. 한전 발전사업 진출은 공정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전기사업법 겸업금지 원칙을 무너뜨려 전력산업을 과거 수직계열화로 회귀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독점판매사업자의 발전사업 진출은 발전사업자의 판매사업 진출 허용과 연계해 검토해야 형평성 원칙에 맞는데, 판매개방에 대한 구조개편없이 발전사업 진출만 주장하는 건 에너지산업의 경쟁 왜곡과 독점 심화를 초래하게 된다"며 "발전과 판매겸업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송전 분리 및 운영기능 전력거래소 이관과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다른 에너지기업 관계자도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목적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인데, 현행 제도는 이행수단이 RPS와 RE100 등으로 의무주체와 공급주체간 불일치가 발생한다”며 “한전이 RPS 의무주체가 되도록 하되 발전과 판매개방 확대, 송배전 사업 분리로 독점의 우려를 씻어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에너지공공기관 출신 한 민간 정책전문가는 "한전의 무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라고 직격했다. 이 관계자는 “망을 가진 심판이 선수가 되어 링을 평정하겠다는 발상”이라며 “한전은 동네우물을 혼자 다 퍼 마시기보다 우물 밖 바다로 나아가 GW규모 사업을 도전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 국내기업들이 십수년간 어렵게 만든 내수시장을 휩쓸겠다는 건 심히 유감"이라고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 "한전은 해외기업이 하다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인수하거나 지분투자에 참여해 3년만에 수백억원을 날리고 청산했지만, 스페인의 이베드롤라사(社)와 같은기업은 후발주자임에도 일본과 미국 해상풍력시장을 점령하고 세계적 기업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면서 "세계 조류나 시장질서를 역행하면서 우물안 개구리 논리로 세상을 보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나 제도가 시대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개선되고 진화해야 하는데 여당이 되어 시장흐름을 역행하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물량만 늘리겠다는 조급증을 보이고 있다"면서 "훗날 시장이 진공상태가 됐을 땐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지 분명히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일각에서도 이런 행보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조정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시대전환 의원은 "에너지전환이 중요하고 재생에너지가 신산업 동력인 것은 맞지만, 신산업 육성의 과실을 특정기업이 독식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면서 "한전이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발전까지 한다면, 망중립성이 어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외쳤던 만큼 신에너지 산업이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에 매몰되는 것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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