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업 진출시도 놓고 전문가들 송·배전망 분리 전제
시민사회도 "정부와 한전, 에너지전환 인식 있나" 성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덕환 풍력산업협회 팀장,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 전영환 홍익대 교수, 김영산 한양대 교수(좌장),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덕환 풍력산업협회 팀장,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 전영환 홍익대 교수, 김영산 한양대 교수(좌장),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

[이투뉴스] 한전의 발전사업 직접 진출 시도가 거센 역풍을 만났다. 이를 허용하기보다 오히려 한전을 전력망회사로 분리 독립시켜 전력산업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15일 에너지전환포럼과 기후솔루션, 풍력산업협회, 민간발전협회,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가 주최한 ‘한전 발전사업 진출과 망중립성 훼손, 이대로 괜찮나’ 긴급토론회에서 “탄소중립은 공정, 시장, 경쟁이 키워드”라며 한전의 기능분리 필요성을 설파했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비중은 높이는 일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시스템을 바꾸는 일인데, 한전 기능분리 없이 현행 전력산업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거나 역행하는 형태의 전환 시도는 에너지전환이나 탄소중립을 오히려 어렵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날 발제에서 전 교수는 효율적인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시장의 규제 재점검을 촉구했다. “석탄화력과 원전이 시장영역에 있었다면,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도외 시 할 수 있었겠냐”면서 “우리 산업은 갈라파고스처럼 수직통합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경쟁도입은 설비계획을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해 계획 실패 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시장참여자가 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해외도 재생에너지 증가로 전력시장이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전력시장의 경쟁 틀은 변치않고 있다”고 주지했다.

전 교수는 “발전과 판매를 분리하고, 그 안에서 망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2003년 배전분할 중단 이후 그 상황을 지속하다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으로 발전사업자가 증가하면서 전력시장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 됐다”면서 “이런 때 한전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것은 망중립성을 완전 훼손하는 것이자 지금까지의 발전 방향을 완전 후퇴시키는, 뜬금없는 얘기”라고 직격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

현재 정부와 여당은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을 통해 한전에 일정규모 이상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북미 텍사스 전력시장(ERCOT)의 송전망 제약사례를 예로 들어 한전 발전사업 진출이 필연적으로 공정성 시비를 낳게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망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사업자가 발전사업을 하면, 규칙제정 불공정과 망투자 우선순위 차별, 재생에너지 출력제한(Curtail)과 입찰 공정성 문제가 발생한다. 송전망 제약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엄청난 차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서 이탈리아 남부처럼 과(過)발전이 되면 소매시장과 연계해 소비자가 저렴한 시간대에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린 도매와 소매간 연계도 안돼 있고 도매시장 가격신호(Dynamic pricing)만으론 수요조절이 어렵다는 게 선진시장의 경험”이라며 “이웃 일본은 이미 작년 4월 판매시장 법적분할까지 완료했다. 한전이 독점한 우린 아직 먼 얘기”라고 개탄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비중 14.4%에서 출력제약이 대량 발생하고 있는 제주사례를 거론하면서 "2025년부터 육지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타날텐데, 현재의 전력시장으론 이를 대응할 수 없다. 전력거래소가 운영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장과 분리된 운영이란 있을 수 없다. 전력산업 기능분리를 통한 공정경쟁 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전력시장 발전방향'을 주제로 발제를 이어간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시장개방을 통한 공정한 경쟁여건 조성이 선결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로 계통안전성 확보가 중요해졌는데, (한전이)여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구조개편 당시 발전자회사로 분리할 게 아니라 소유를 분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 전력시장은 모두 개방돼 있고 궁극적으로 망은 독립된 회사가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근본적 문제는 어떤 형태의 사업이든 한전 영향을 받지 않고선 못한다는 것"이라며 "전력산업이 진화하려면 신기술에 의한 비용감소와 분산화, 디지털화가 돼야하고 자율적 선택에 의한 경쟁구조가 조성돼야 한다. 그런면에서 소매시장은 반드시 개방해야 하고, 재생에너지 계통통합은 전력운영시스템 개선과 시장개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력시장 이해당사자들 역시 강경한 어조로 한전 발전사업 진출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 연합회 상임이사는 김영산 한양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토론에서 "정부와 한전이 에너지전환에 대한 기본인식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이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한전이 직접 학교태양광 사업에 진출해 협동조합이 학부모들과 어렵게 조성한 사업생태계가 훼손된 사례를 거론하면서 "공기업이 투자할 땐 민간의 투자활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한전의 전력망 운영이 과연 공정할 것인가, 독점적 망사업자가 발전사업에도 직접 참여하면 과연 망접근의 공정성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덕환 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팀장은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발전사업을 제외한 판매와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있고, 모든 정책과 평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법안을 먼저 통과시키고 시장 공정성은 차후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보완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언제부터 공정성이란 가치가 후순위로 밀려 보완하면 되는 대상이 됐냐"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전력시장에서 사업자가 두 가지 이상 사업을 겸업할 수 없다는 법 한 줄이 민간이 전력시장에 뛰어들고 창의적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게끔 시도라도 할 수 있게 했다"면서 "한전이 발전사업에 진입하는 편익이 과연 시장공정성까지 건드릴 사안이냐"고 반문했다.

박태환 민주노총 발전노조 정책위원장도 "한전의 발전사업 진입이 허용된다면 지금의 불평등한 경쟁이 심화되고, 불필요한 경쟁으로 정의로운 전환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며 "기존 발전공기업과 민간사업의 공공성을 높이는 게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은 한전 발전사업 진출이 전기사업법 법체계의 일관성 훼손하는 조치라고 각을 세웠다. 박 국장은 "전기사업법 목적은 전기사업의 경쟁을 촉진해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에 이바지 하는 것이며, 산업부 장관은 이 법에 목적에 맞게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법에 적시돼 있다"며 "왜 법이 겸업을 금지하고 경쟁을 강조했는지 다시 한번 법취지를 되새겨 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린뉴딜의 핵심은 전력망 인프라 투자인데, 거기에 매진할 한전이 재생에너지에 역량을 쏟는다는건 말이 안된다"면서 "송배전 설비에 대한 공적역할에 충실해 해상부터 육지까지 송전선로 확충에 한전이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걸 사업자에게 오히려 떠밀고 있다. 가스공사가 개별요금제 도입 후 산업계로부터 분리를 요구받았듯, 한전도 (발전사업 진출 시)그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한전은 회계랑 조직을 분리하고 금지행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외부에선)기존 전력시장의 독점사업자인 한전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한전 직원들이 가족명의로 태양광에 투자했다가 감사원 감사에 적발돼 9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면서 "경직적인 시장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선 신산업도 발현되기 어렵다.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권 이사는 "EU는 발전사업과 네트워크(망)의 분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 발전사업의 선제조건은 송·배전 분리"라면서 "그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발전사업 진출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신뢰와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영산 한양대 교수도 마무리 발언을 통해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은 배달의 민족이 식당을 직접 하겠다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한전은 그보다 더 독점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