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텍사스 정전사태를 보며
[칼럼] 텍사스 정전사태를 보며
  • 이창호
  • 승인 2021.03.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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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 박사)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 박사)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얼마 전 미국 전역을 휩쓴 강력한 한파로 텍사스 등 미 남부지역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였다. 미국에서 정전이란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장시간 발생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2003년 8월 발생해 약 5000만명이 피해를 본 북미 동북부 대정전 이후 가장 큰 정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난 2월 중순 대규모 순환정전이 발생한 텍사스에서는 수백만 명이 추위 속에서 전기 없는 불편을 겪었고, 일부 산업체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ERCOT(텍사스 전력신뢰도위원회)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만 재생에너지 1만8000MW, 가스복합 등 기존설비 2만8000MW 등 약 4만6000MW의 설비가 멈췄다고 한다.   

정전이란 때로 인간의 실수에 의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예상치 못한 사고나 천재지변에 의해 발생한다. 전력설비나 운영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공급신뢰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정전을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지진, 폭풍, 홍수, 낙뢰와 같은 자연재해와 전쟁, 폭동과 같은 재난이 원인일 경우가 많다. 이번 정전은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해당하는지는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번 정전의 원인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특히 풍력발전의 문제를 들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혹한이나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할 때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파로 인해 공급망이 무너진 천연가스를 비롯한 기존 발전설비를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들은 정전 시 가스, 석탄, 원자력도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공급불능 용량이 재생에너지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가 하면, 텍사스주의 독립전력망 운영방식과 노후된 송전망의 문제도 거론된다. 본질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력가격 폭등을 민영화의 문제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번 정전은 미 남부지역의 예상치 못한 한파로 전력수요가 폭증하였으나, 많은 발전설비의 가동이 중단되어 전력공급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텍사스 정전사태는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등 변하고 있는 전력수급 환경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란 문제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전력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인가를 짚어보아야 한다. 전력설비를 어느 정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이미 공급지장확률(LOLP)과 같은 기술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만약 이번처럼 수십년 만에 한번 발생할지 모르는 기상이변이나 천재지변에 대비하여 공급지장확률을 매우 낮게 유지한다면 엄청난 예비설비나 저장장치, 거미줄처럼 촘촘한 전력망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당연히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도 턱없이 높아질 것이다.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공급지장에 대비하여 막대한 유휴 설비투자를 하는 것은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수요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예비력과 급격한 변동성 대응능력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도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공급안정 즉, 공급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정책과 전력수급도 앞으로는 이러한 부문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먼저 전원구성의 다원화와 예비력 확보다. 전력자원은 기술적 특성이 달라서 기술간 상호보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장시간 일정한 출력에 적합한 전원이 있는 반면, 변동하는 수요에 대응능력이 좋은 전원도 있다. 재생에너지처럼 기상조건에 취약한 전원이 있는 반면, 기상에 영향을 덜 받는 전원이나 ESS와 같은 보완설비도 있다. 공급비용이 높은 전원과 상대적으로 낮은 전원도 있다. 이용률이 높고 대규모 발전이 유리한 전원이 있는 반면 이용률이 낮고 소규모 설치가 유리한 전원도 있다. 결국 여러 상이한 기술이 적절히 혼합된 전원믹스 즉, 적정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에너지 갈등이나 전원에 대한 논쟁도 단순히 단편적인 수치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앞으로 요구되는 기술적. 환경적 니즈를 반영하여 판단해야 한다. 전원구성이나 에너지믹스의 변화도 단계별 경로를 설정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전력공급과 수요의 분산화다. 전원의 지역별 편중, 대규모 융통은 예기치 않은 사고나 천재지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요지인 공장, 빌딩, 주거단지로 전원이 분산될수록 공급의 안전성은 높아지게 된다. 과거에는 공급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 집중공급방식이 유효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급기술의 발전으로 규모간, 기술간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더욱 좁아질 것이다. 분산전원을 확대하고 자가발전을 늘려나감으로써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전력산업 생태계도 새롭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급의 유연성과 견고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앞으로 에너지를 전력으로 사용하는 전력화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냉방은 물론, 취사, 건조, 난방 등 과거 일차에너지가 담당하던 영역이 급격히 전기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 수소차도 모두 전기에너지를 사용한다. 이로 인해 에너지원 간 융합과 변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남는 시간에는 전기나 열에너지로 바꾸어 저장하고 부족할 때는 저장된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면 된다. 설비도 가스, 석탄, 바이오를 혼소하거나 교체가 가능하여 설비 유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contingency)과 최후수단(last resort)도 준비해야 한다. 비상시에 대비하여 투입 가능한 예비자원에 대해서는 대기(stand-by)에 따른 보상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두 비용으 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전력소비가 많고 공급안정이 중요한 수요자는 자가발전 등 자체수요를 일부 충당하게 하는 의무화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수급안정과 정전발생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를 과거처럼 오직 경제성만으로 따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다고 오직 환경성만으로 재단하기도 어렵다. 공급안정과 신뢰성, 경제성, 환경성, 지역적 수용성과 같은 여러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시스템을 준비해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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