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투뉴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 소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즉각 국내 원전의 안전점검과 후속대책을 지시했다. 민관합동전문가는 한달간의 조사를 통해 50개 안전개선사항을 도출했고, 2015년까지 1조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해 같은해 5월초 이행에 착수했다. 다른 국가는 이제 검토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우리나라는 한 달간 전국원전을 조사하고 개선사항 도출과 조치에 착수했으니 세계에서 가장 빠른 후속대책이라 할 만하다.

긴급 추진된 조치임에도 필자는 2013년 한빛원전안전성검증단에서 활동하며 후쿠시마 후속조치에 실망을 금치 못하였다. 일부 조치는 졸속과 부실로 점철된 것을 확인했다.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피동형수소제거설비(PAR), 현장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가져다 놓은 이동형발전차, 다수호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한 지진자동정지시스템, 안전정지계통의 내진성능 향상 등은 평가 내용과 조치를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하였으나 거부했다.

피동형수소제거설비의 경우 시험 중 폭연(불꽃연기)이 발생되었는데, 오히려 점화를 야기하는 문제가 지적되었음에도 그대로 모두 설치했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로 이 문제가 다시 대두된 바 있다. 지진자동정지시스템의 경우 다수호기가 밀집된 우리나라는 일시 정지되면 주파수 하락 문제로 소외전원상실사고로 이어져 대정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

안전정지를 위한 내진성능 개선은 기기 바닥을 고정하는 앵커볼트 경년열화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 지진이 오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여러 차례 제기하였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어서 형식적인 조치라는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격납용기 여과배기시스템은 전국원전에 설치하면 그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설비였다. 수백억원을 투입해 월성1호기에 처음 설치하였지만 사용후핵연료저장조 차수막을 파손한 채 무용지물화 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 6월 원자력안전법이 개정되면서 2019년 전국 28개 원전 사고관리계획서가 제출되었다. 이후 한수원은 작년 2월 종래의 여과배기설비 설치계획을 전면 철회하였다.

사고관리계획을 위한 중대사고 검토과정에서 해당 설비를 설치한 경우 발전소 경계구역 피폭한도를 초과하는 계산결과가 나옴에 따라 대체설비를 강구하게 된 것이다. 이는 후쿠시마 후속조치가 충분한 사전 검토가 없는 졸속임을 방증한다 즉, 사전에 체계적인 검토를 통해 도출된 필요 설비를 추가하거나 보강하여야 순리인데 일단 50개 조치부터 먼저 해 놓고 체계적인 검토는 뒷북치는 꼴이다.

그나마 상당한 비용이 투입된 사고관리계획서이지만 졸속으로 우선 조치된 50개 항목에 대한 보완을 기대하기보다 여과배기설비처럼 목록에서 제거하는 것 말고는 추가 보완 및 개선 없는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후쿠시마 후속조치가 처음부터 형식적이고 무책임 행정이었기 때문이다. 발전소당 2만 쪽에 달하는 사고관리계획서, 방대한 28개 호기 분량을 3년 만에 규제기관에서 검토 완료한다는 자체가 또다른 부실을 예고한다. 국민안전을 위한 대사(大事)가 아직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immjylee@gmail.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