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제주도는 폭이 73km, 길이가 31km인 섬이다. 맑은 날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라산 북쪽 기슭과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공항 활주로(3.2km)를 23개 이어붙이면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닿을 수 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땅이다.

이곳 제주가 요즘 재생에너지 출력제한(Curtailment)으로 시끄럽다. 발전량 조절이 어려운 태양광·풍력 비중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체 2GW 발전설비 중 720MW가 재생에너지다. 연간 발전량 비중으론 16% 내외. 봄·가을 휴일 한낮엔 비중이 최대 50%를 넘어설 때도 있다. 육지보다 매전단가(SMP) 높다보니 최근 5년새 태양광은 5배, 풍력발전은 약 1.3배나 설비가 늘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증가는 환영할 일이다. 태양광은 햇빛으로, 풍력은 바람으로 전기를 만든다. 연료비가 들지 않고 자원도 무한한데다 대기오염 물질이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대신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 요즘처럼 전력소비는 적고 발전량은 많을 땐, 공급이 수요를 넘나든다. 2015년 3회였던 출력제한 횟수는 지난해 77회, 연간 발전량의 3.4%까지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4.3%를 넘어설 전망이다. 작게는 수MW에서 크게는 수백MW단위 후속 발전사업도 현재 진행형이다.  

혹자는 기존 내연발전기 출력을 더 낮추거나 아예 세우면 될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력망은 사람의 맥박에 해당하는 주파수와 혈압에 해당하는 전압 및 관성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주로 전통 회전체 발전기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발전기들은 최소출력값이 있어 발전량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제주는 전력 수요증가에 대비한다면서 전력망 대비 너무 큰 가스발전기를 건설했다. 도시가스 혜택을 누리려면 LNG저장기지가 필요하고, 그 기지 건설의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대용량 LNG소비처가 필요해서였다. 계통은 작을수록 외란(外亂)에 취약하고, 용량이 큰 발전기일수록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SS를 설치해 공급-수요 불일치를 간단히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잖다. 하지만 ESS로 저장할 수 있는 전력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충·방전 지속시간은 짧으며 아직 건설비가 비싸다. 여기에 최근 대안처럼 거론되는 해저케이블(HVDC) 육지 역송은 융통량 대비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1회선 건설에 5000억원이 넘게 드는데, 실질 융통가능량은 200~300MW 수준이며 그것도 육상에서 잉여전력을 받을여건이 될 때나 가능하다. 전류형 HVDC인 제2연계선의 경우 전송방향을 바꾸는데만 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전기를 보낼지, 받을지 판단하고 결정하다 되레 초과발전이나 수급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그린수소를 만들자는 일각의 제안도 아직은 먼 얘기다. 그리드패러티(Grid Parity)에 이르지 못한 재생에너지로 극히 효율이 낮은 수전해를 하는 건 생수로 샤워를 하고 변기물을 내리는 일이다. 평소 싼값에 전력을 과소비해 온 양식업자 등에 인센티브까지 줘가며 추가소비를 유도하자고 하거나 무늬만 새로운 신산업을 근본 대안인 냥 떠벌리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전력시장에서 누군가 수익을 가져가면, 반대로 누군가는 반드시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제주의 환경수용력(Carrying capacity)에 대한 인식과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대체 제주가 수용가능한 관광객은 얼마인지, 제주가 자체 처리가능한 폐기물이나 하수처리량은 얼마인지, 제주가 필요로 하는 전력과 재생에너지 수용량은 얼마인지를 먼저 따져묻고 필요하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폐기물을 후진국으로 수출하고, 폐수를 그대로 바다로 쏟아내고, '탄소없는 섬'을 꿈꾼다면서 무분별하게 발전사업허가만 남발한 건 아닌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특히 전력은 기존 공급 측 대책만으론 한계에 봉착해 있다. 소매와 연계한 수요부문의 시장제도 혁신이 시급하다. 지금 논의되는 제주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해법들이 모두 미봉책이 아닌지 걱정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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