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화석에너지 vs 재생에너지, 미국 vs 중국 패권경쟁 가속화
팽창의 시대서 수축의 시대로, 시장대응 및 해외공략 필요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이투뉴스] 한국 경제전망을 중앙은행이 발표할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세계 경제 여건에 대한 분석이다. 수출주도의 한국경제는 글로벌 시장 변화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경제정책 수립 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에너지산업에선 과거 계획경제방식의 정부 정책에 익숙한 탓인지 대외요인의 변화에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저성장국면으로 진입하고, 코로나바이러스로 글로벌 시장지형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에너지 정책 역시 대외요인에 의한 변화가 불가피해졌으며,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LNG 직도입은 판매자와 구매자 우위 시장 사이클이 무너진 국제시장의 변화에 있다. 선박 연료에 대한 규제를 담은 IMO 2050은 탄소 저감을 위한 브릿지 연료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연료원에 대한 국제사회 요구의 결과다.

팬데믹으로 인한 저유가와 에너지 수요 감소는 SMP 하락과 맞물려 전력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다. 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이너스 유가와 마이너스 전력가격을 경험했고, 이는 원전부터 재생에너지까지 모든 에너지원이 줄어든 수요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해답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이 적다. 선진국들이 펼치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함의를 찾기보다는 표면적인 선언이나 텍스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들의 에너지 전선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2040년 재생에너지는 현재보다 4배 이상 급속도로 증가하지만 여전히 화석연료의 1/10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일자리의 증가보다 화석연료산업에서 줄어드는 일자리가 훨씬 더 많을 것이며 이는 G20 국가들의 과감한 의사결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전환정책으로 늘어난 일자리는 온전히 재생에너지 산업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몫이 될 것이며, 팬데믹으로 없어진 일자리 중 절반은 영원히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 기반 기업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믹스 현황 및 추이.
▲글로벌 에너지믹스 현황 및 전망.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부 역시 에너지 정책의 복잡해진 공식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에너지전환은 필연적으로 화석연료산업의 구조조정과 일자리 감소를 불러오지만 새로운 시도에서 이를 만회한다는 보장도 없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G20 국가들은 당장의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화석연료 투자증대와 재생에너지 투자 축소로 대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지형변화는 각 국가의 에너지 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셰일 발견으로 에너지 자립국으로 우뚝 선 미국은 중동 정책에 깊숙이 관여할 인센티브를 상실했고, 가장 큰 원유 구매자를 잃은 사우디는 탈석유 경제를 맞아 안정적 수요처 발굴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중동의 틈새를 노린 러시아와 중국은 경제협력과 에너지 안보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하고 있는데 여기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다.

EU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바이든 정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에너지 부문에서는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 의존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해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정권이 바뀐 미국은 화석연료를 중시하던 트럼프가 물러났음에도 쉽사리 셰일을 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미·중 무역갈등에도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양적, 질적으로 성장시키고 있으며, 희토류 등을 무기로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될 꿈을 꾸고 있다.

변화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영향력을 축소 시키고 시장 역할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결과 국내 제도 변화가 크지 않음에도 시장지형 변화로 인해 기업의 지속성장에 적신호가 켜졌으며 급기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 에너지 정책은 고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안정적 에너지공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적기관에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 계획경제방식으로 작동하였으며, 에너지 공기업들은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조기 목표 달성은 경쟁으로 인한 국익을 더 크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보고 난 뒤 움직여도 늦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가 국내 에너지산업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시장의 힘을 일국의 정부가 막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기업만이 변화의 흐름에 생존할 수 있는 열쇠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쟁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전쟁
글로벌 에너지 전쟁은 국가 간 대륙 간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간의 패권다툼이기도 하다. 87조 달러의 에너지시스템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석연료는 쉽게 자리를 내어 생각이 없어 보인다.

IEA의 글로벌 에너지믹스 전망비교를 보면 2018년에 비해 2040년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4배 이상으로 성장했음에도 전체 화석연료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미미했던 1970년대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큰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엄청나게 변할 수도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은 앞다투어 탄소제로를 선언하고, 온실가스 배출원을 줄이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전통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 미래 친환경 규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경제주체의 삶, 나아가 국가의 정책의 실질적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변화의 흐름은 마침내 ‘큰 그림을 바꿀 것’이다. 따라서 큰 그림을 변화시키기 위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정책 목표는 매우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윗의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G20 국가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침체 회복을 위해 전체 공적자금의 63%인 1,508억 달러를 화석연료에 지원했다. 독일의 경우 풍력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로 설치가 지연되고 있으며, 에너콘은 2019년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팬데믹이 사라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줄어든 에너지 수요를 차지하기 위한 에너지원의 싸움은 더 격렬하고 거칠게 전개될 것이다.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 역시 변화의 흐름에 서 있다. 수십 년간 화석연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캐내서 판매해온 거대한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이들은 재생에너지에서 어떻게 해야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에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지만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은 미미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수익률이다. 북미 온쇼어 오일 수익률은 30%에 달하는 데 비해 태양광과 풍력의 수익률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이들에게 가보지 않은 길은 낯설고 험하다.

시가총액 1위인 엑손모빌은 2020년 1~3분기에만 24억 달러(2조62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주가는 35% 떨어졌으며, 전체 임직원의 15%인 14,000명을 구조조정했다. 그럼에도 석유와 천연가스 사업구조에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셰브론의 CEO 마이크 위스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세계적 요구가 화석연료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석유와 가스를 효율적이고 환경적으로 양성화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멘스는 2019년 기존 화석에너지 부문에 대한 투자는 변동이 심하며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1년 후 전력발전량의 40%에 달하는 석탄발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탄소를 줄이는 데 관심이 있다며, 아세안 지역의 석탄발전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화석연료 기반 메이저 업체들에게 재생에너지 사업은 기존 비즈니스의 파이를 대체할 수 없는 협소한 시장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쟁이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간의 싸움이 될수록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로의 방향전환 대신 화석연료의 수성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주력인 석유 부문의 현금 흐름 감소로 새로운 성장동력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고, 기술 발전으로 태양광과 풍력 비용이 획기적으로 하락했지만, 규모가 늘어날수록 전력 판매단가가 낮아져 수익이 감소하는 문제가 있다. 간헐성으로 인한 수익 감소도 고려해야 한다.

메이저 기업의 화석연료 사랑은 큰 그림이 변화하지 않는 한 골리앗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울어진 포트폴리오가 미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도 많다. 메이저 업계 내부에서도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간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만약 이들의 포트폴리오가 유의미하게 변화하는 조짐이 보인다면, 큰 그림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전조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쟁을 둘러싼 국제지형 변화
2019년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 방한으로 한국은 사우디와 10조 원에 달하는 경제협력 MOU를 맺었다. 왕세자가 이끄는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다. 사우디가 한국을 비롯한 수요국에 지속적 투자를 하는 이유는 미국 셰일 혁명과 관련이 크다. 2011년 이후 고도성장이 막을 내린 데다 셰일 혁명으로 가장 큰 구매자를 잃게 된 사우디는 석유 부문이 정부 세입의 87%, 수출의 90%, 국내 총생산의 42%를 차지하기 때문에 저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경제 근간부터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 탈석유 경제를 구가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수요처, 특히 중동산 원유에 맞춰 설비를 갖추고 리스크 없이 다양한 산업협력이 가능한 한국 같은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지켜야 하는 사우디로서는 투자처와 소비국을 동시에 공략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한국을 향한 10조 원 투자의 이유다.

이는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과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및 시리아 내전 지원으로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고있는데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다. 국가별 재정수입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우디의 70%보다 낮은 40%지만 제재가 지속되는한 경제침체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원유의 경우 OPEC를 중심으로 감산이란 단체행동이 가능하나 천연가스엔 구심점을 가진 단체가 없는 틈을 타 러시아는 2035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5배 늘려 세계시장의 20%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카타르와 호주, 미국 역시 수출량을 늘리고 있으며, 이런 공급국들의 움직임은 LNG 현물시장 가격하락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EU는 전통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러시아는 노드 스트림 파이프라인 증설을 통해 EU의 대러시아 의존도 강화를 꾀하고 있으나 미국은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까지 강도 높은 제재를 통해 파이프라인의 완성을 막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트럼프는 러시아 파이프라인 허가의 대가로 자국의 셰일 수출 및 관련 인프라 건설을 요구해 EU와 독일이 이를 수용했으나 바이든은 제재를 고수할 뿐 반대급부에 대한 카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독일은 러시아의 값싼 파이프라인 가스를 들여와 안정적 에너지공급과 유럽 가스 허브국 지위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지만, 기존 파이프라인을 우회하여 우크라이나 등 파이프라인 통과국 수입이 급감하는 문제로 지정학적 충돌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과 EU의 갈등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갈등을 지나 에너지와 경제 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이들의 에너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의 또 다른 무기는 원전이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원전 건설시장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로사톰은 과거 원전 강국이었던 미국(웨스팅하우스), 프랑스(아레바), 후쿠시마 사고로 타격을 받은 일본을 제치고 중국과 인도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최종결선에 로사톰과 함께 오르는 국가는 한국(한수원)이 유일하다. 원전 수출은 건설은 물론 향후 수십 년간 운영과 정비, 원료 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와 외교 등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과거엔 친러 국가들이 로사톰을 자주 이용했으나 자국 에너지 안정성은 물론 안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러시아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은 자국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3분의 2를 수입해야 하나 석탄에 치우쳤던 에너지 믹스를 변화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행히 중국은 내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스스로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남은 것은 기술 축적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중국은 EU와 일대일로를 통해 에너지와 교역 경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EU의 에너지사업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했다. 단순 지분투자뿐만 아니라 인수 합병을 통해 최신 기술을 습득함은 물론 유럽 국가의 전력망과 원전부터 재생에너지까지 모든 부문에 투자했다. 이를 경제협력으로 확장하면 중국의 투자는 그야말로 매머드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각국은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가 예상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국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중국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독일은 중국의 진출로 태양광산업의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EU지역의 배터리 공급능력은 중국(73%)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4%)이다. EU는 내연차 제조 관련 1,380만 명의 일자리가 전기차와 배터리 부문으로 재빠른 방향전환이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EU지역의 그린뉴딜 정책은 친환경 에너지 비중확대를 기본 방향성으로 잡고 있으면서도 중국의존도 탈피를 위한 산업 인프라 강화와 전통산업의 축소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감소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차원적 정책의 미세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런 복잡한 고민은 친환경 에너지 선언과 탄소 제로의 선명한 텍스트에 가려져 있다.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은 청정에너지 보급 정책을 강화하고, 수소 생산 공급 역량을 확대하며, 석탄 화력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중단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셰일의 수압파쇄에서 연방공 유지와 원주민 토지의 수압파쇄만을 금지하는 소극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 향후 수십 년 안에 화석연료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 언급하면서도 석유와 가스산업이 창출하는 1000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문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 진단한 바 있다.

셰일 혁명으로 인한 미국의 석유와 가스 수출이 미국-인도 간 유대 관계를 촉진했고, 미국 에너지 안보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질 에너지 전환에 미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버티는 보루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했다. 만약 바이든이 셰일 시추를 금지하며 공급을 줄일 경우 이 혜택은 사우디와 러시아를 비롯한 화석연료 수출에 의존적인 국가들에 흘러 들어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미중 무역분쟁에서도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에너지 전쟁 - 시큐리티 달러 vs 시큐리티 위안
과거 미국은 중동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들여오기 위해 원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받고 거래 이익이 발생하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무기판매와 안보를 제공하는 비공식 계약을 사우디와 맺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잉공급된 에너지를 수요국에 판매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우디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미국이 페트로 달러(petrodollar)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미국의 에너지를 수출하기 위해 ‘시큐리티 달러(security dollar)’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안보는 에너지 공급과잉 시대의 외환 보유고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안보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새로운 외환 보유고를 쌓기 위해 미국의 에너지 수입을 늘려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큐리티 달러는 (페트로) 달러와 달리 리스크를 유럽이나 중국, 러시아의 안보 스왑으로 대체하기 불가능한데 기축 안보는 지구상에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우디마저?지금은 여러 나라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보이나?기축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원전을 구매해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명시적으로 시큐리티 달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에 관한 갈등 대응과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심화 견제를 자국의 셰일과 연계시킴으로써 사실상 시큐리티 달러와 안보 보유고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된다. 미국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구 최강의 무기를 바탕으로 넘쳐나는 자국의 에너지를 동맹국들에 수출함과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의 에너지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다. 독일은 노드 스트림 2를 고민하게 될 것이고, 폴란드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며, 한국 역시 중국 해저나 북한을 통해 들어올 수도 있는 러시아 파이프라인을 바다 건너에서 지켜만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모두가 미국이 셰일을 글로벌 영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셰일을 포기하고 친환경 정책을 펼쳐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취한다면, 시큐리티 달러는 써보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사라질 것이다.

미국의 재생에너지 비중확대는 미국이 그토록 견제하고 싶었던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도 유럽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려면 중국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 따라서 미국은 재생에너지를 미국의 안보와 바꿀 시큐리티 달러로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중국이 이를 ‘시큐리티 위안’으로 사용할 것을 걱정해야 한다.

중국이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공급에서 글로벌 시장의 가장 큰 거인으로 등극하면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산업구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국가들로서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전 세계 태양광 모듈의 70% 이상을 중국이 생산하고 있는 데다,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 등 태양광 산업 밸류체인에서 중국의 생산능력은 다른 국가를 압도하면서 양과 질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제고 중이고, 풍력발전기의 5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전 세계 리튬이온전지 셀 공급의 77%, 모듈 생산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량생산은 지난 10년간 태양광 전지패널과 배터리 가격의 85%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각국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테슬라 판매도 유럽의 그린뉴딜도 중국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재생에너지 지배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리튬전지 생산용량.

실제 중국은 희토류 무기화를 꾸준히 검토하고 있다. 희토류 수입의 80%를 중국에 의존하는 미국은 시큐리티 위안을 막기위해 미국 핵심산업 보호를 위한 주요 광물개발 조기착수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80년대 환경문제를 이유로 아웃소싱을 택했던 희토류 인프라를 일거에 다시 구축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이것이 가능했다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격렬하며, 초창기부터 세계화가 진행되어 선명하게 국가와 경제주체를 나눌 수 없다. 연 매출 17억 달러를 올리는 미국 최대 태양광 패널 제조사인 선파워는 새너제이에 본사가 있지만, 최대주주는 프랑스 석유 대기업 토탈이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는 한국 LG화학의 배터리와 부품을 공급받고 있으며,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주요 청정에너지 제품 판매업체들은 중국 공급업체와 투자자, 고객 중 한두 가지나 세 가지 모두와 얽혀 있다.

때문에 글로벌 에너지전쟁에서 EU의 스탠스는 흥미롭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경제와 에너지분야에 중국투자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안보 보유고엔 시큐리티 달러와, 위안, 루블이 담겨있으며, 결과적으로 협상력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의 선택
지난해 가을 금융업계에서는 '은행은 여전히 특별한가'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향후 저성장, 저금리가 지속되고 핀테크와 빅테크의 시장 진출 확대로 경쟁이 강화될 경우 기존 은행은 수익감소 뿐만 아니라 생존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은행이 경쟁시장에서 특별함으로 생존하면 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향후 자신들의 생존과 성장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반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에너지업계에는 이 ‘특별함’을 공공성으로 말한다. 금융업이 안정적인 자금의 흐름을 담당하듯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 부여받은 공공성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성장과 팬데믹 시대엔 이 바램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선 수축의 시대엔 국내시장 사수만으로 조직유지가 어렵다. 성장의 시대에 통했던 중앙집중형 대형설비 건설에 한계가 왔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재생에너지 파이는 모두가 나누어 가지기엔 너무나 작다. 과거에 자본과 인프라가 미흡했던 민간부문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순한 공급을 넘어서 업스트림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전체 밸류체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상당한 규모의 경쟁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달라진 시대엔 조직의 역할도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다. 한전이 전력수요 정체에 대응하기 위해 선진국처럼 전력수급계획없이 송배전과 계통계획업무만 담당한다면 조직규모는 1/10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 진단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LNG 직도입의 급격한 증가는 가스공사의 시장지배적 위치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시대에 기업들이 변화를 흔쾌히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에너지기업들은 조직 본연의 목표 이외에 지속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면 물리적으로도 조직을 유지할 수 없을지 모른다.

10여 년 전 한국전력, 업계관계자들과 함께 일본 동경전력을 방문해 해외 진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담당자는 기업문화를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력판매시장이 개방되고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줄어든 지금 일본 J POWER의 해외비중은 설치용량 대비 25.7%까지 상승했으며, 프랑스 EDF는 38.5%, 미국의 AES는 76%에 달한다. 이들의 해외사업은 모두 공급과잉과 성장 정체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다.

발전공기업 중 해외사업에 두각을 보이는 한국중부발전과 국산화에서 한발 앞서 나가는 한국서부발전의 시도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조직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움직임이다. 한국전력의 솔루션제공업체 변신 선언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글로벌 시장 변화는 에너지기업의 해외진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수주형 사업은 기술과 가격의 시대에 맞는 형태였다. 한국은 저가 수준 위주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만회했지만 현재는 중국의 무기가 되었다. 기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중국의 태양광 공급능력은 2019년 204GW에서 2025년 500GW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가격과 양으로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한다.

많은 언론에서 UAE의 원전 정비계약이 5년 단기임을 비판했지만 그 이면에 UAE가 한국전력에 추가출자를 요구하고, 한수원과 APR1400 협정, 한국전력기술과 설계 및 기술지원, 한전KPS와 장기정비계약을 맺은 이유가 60년간 장기운영을 위한 ‘관계의 비즈니스’였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가격과 기술의 시대라면 경쟁력에서 압도적인 한국형 원전은 러시아를 제치고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주형 사업에서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변한 지금은 일개 기업이 해당 국가의 잠재적 니즈까지 충족시켜주기는 불가능하다. ‘팀코리아’는 이런 해외사업의 변화에 발맞춰 자금조달부터 건설, 운영, 정비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에서 다양한 기업들의 협업을 바탕으로한 총력전을 펼치지 않으면 어렵다.

정부의 역할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과거와 달리 시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시장 영향에 대한 정부 대응에도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변곡점에 서 있는 에너지산업 플레이어들은 정부의 법제도 개정과 정책지원이 브레이크가 되길 원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것이고 결국은 시장의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 상황의 변화는 에너지 부문의 법·제도가 바뀌기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글로벌 에너지 전쟁의 결과와 시장상황 변화를 인정하는 올림픽 폐회선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처럼 정부 정책이 기업의 성장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시장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업은 본연의 목적 이외에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 구조개편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 기업의 옥석 가리기는 조직구성원에게도 해당될 것이며 생존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직무급제 같은 제도 변화는 정책이 아닌 시장의 의사결정이 될 것이다.

생존과 지속성장을 위한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최승신 C2S CONSULTING 대표 c2sc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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