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히말라야 고봉보다 등반이 훨씬 어려운 곳이 있다.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악마의 탑(devil’s tower)이다. 높이 260m, 등반 성공률은 0.2%. 탄소중립 목표 달성 가능성은 악마의 탑 등정보다 어려워 보인다.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혹한, 혹서, 홍수, 가뭄과 같은 이상기후 현상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소수지만 기후변화 회의론자의 반론도 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유엔이 만든 기구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다. 5년 전 파리에서 열린 21차 IPCC 총회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를 2℃ 이내로 유지토록 하는 온실가스 배출감축 협정을 무려 195개국이 채택했다. 나아가 ‘1.5℃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협정이 이행되더라도 지구 온도가 2.7℃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작년에는 많은 국가들이 온실가스 배출제로를 잇달아 선언했다. 진정으로 지구의 기후위기를 걱정한 것인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인지 알 수 없다. 탄소중립 추진전략(안) 발표로 우리도 탄소중립 대열에 합류했다. 대부분 국가들의 탄소중립 목표연도는 2050년. 아직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없다(우리는 금년 10월에 발표 예정). IEA는 각국의 NZE(net zero emission) 선언을 전부 반영해도 지구온도가 2.1℃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5월말 IEA는 NZE 2050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간되자마자 ‘불확실하고, 검증되지 않았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IEA도 탄소제로 경로에 적용된 2030년 이후의 기술은 앞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에너지정책의 키워드는 수요감축, 전기화, 무탄소 전원 확대 등이다. 에너지소비는 줄이고, 대부분 에너지는 전기로 소비하며, 전기는 무탄소여야 한다. 키워드는 세 개 뿐이지만 하나같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고구마다.  

먼저 수요감축. IEA는 2050년 세계 경제규모가 오늘날의 두 배 이상, 인구는 20억명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전제하에서 에너지수요는 현재보다 8%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수요감축의 사례는 가전, 수송부문 효율향상 등이다. 2025년 이후부터 가스보일러는 판매금지되고 2030년부터 신규건물은 화석연료를 쓸 수 없다(에너지 제로). 구체적 내용은 없지만 우리의 경우도 에너지소비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 몸무게를 서서히 반으로 줄일 수 있을까? 

둘째 전기화. 에너지소비가 전기화되지 못하면 탄소배출은 줄일 수 없다. 전기차, 건물의 히트펌프(전기 냉난방)로 전환 등이 예다. 전기차, 수소차에 사용되는 전기, 수소는 물론 무탄소 전력, 그린수소이어야 한다. IEA는 2050년까지 전력수요가 현재의 2.5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은 2배, 개도국은 3배로 증가한다. 우리는 적어도 2배 이상 증가한다. 발전, 송전, 소비 등 전력관련 산업의 미래는 눈이 부시다. 

셋째 무탄소 발전. 대표적 무탄소 전원은 수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다. 전력부문 탈탄소 전략은 일단 석탄을 발전원에서 퇴출하는 것이다. IEA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의 70%, 2040년까지 완전 퇴출돼야 한다고 한다. 2030년 이후에는 가스발전도 감소돼야 한다. 2040년 가스발전 용량은 2020년의 10%만 남는다.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은 현재의 9배 확대, CCUS와 수소, 암모니아, 배터리도 대폭 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원자력도 현재 용량의 두 배 이상 증가한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거의 90%에 육박한다. 원자력 발전비중은 8% 수준. 이렇게 돼야 CO2 배출량이 2020년 339억톤에서 2050년 ‘0’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두 배로 늘어난 전력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면 재생에너지 용량이 현재의 30배로 늘어나야 한다. 그래도 탄소중립은 안 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변모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발전비용(LCOE)의 대폭적인 하락을 전제한다. IEA는 유럽기준 LCOE를 태양광 2020년 MWh당 55달러에서 25달러로, 해상풍력 55달러에서 40달러로, 육상풍력 40달러에서 25달러로 전망했다. 전망이 맞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명분이 확실하다. 우리는 2020년 태양광이 120달러 수준이다. IEA 전망만큼 낮아질 수 있을까? 

탄소중립을 선언한 개별 국가들의 전략은 자국이 보유한 무탄소 에너지자원과 기술의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모든 국가들이 재생에너지를 강조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르다. 스웨덴은 수력, 바람이 잘 부는 덴마크는 풍력자원 개발에 주력한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은 원전을 주요 대안으로 고려한다. 영국, 일본이 그렇다. 우리는 재생에너지만을 고집하는 독일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여건이 다르다. 독일은 풍력자원이 우리보다 훨씬 좋고, 무엇보다 주변 여러 나라들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광역 정전)은 피해갈 수 있다.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발전만으로 공급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전략은 실현가능하지 않다. 탄소중립을 발표하고도 정부·여당은 “탈석탄, 탈원전,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중심 사회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며 탈원전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그린 택소노미에도 원자력은 빠지고 가스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확보된 기술과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도 탄소중립 목표 달성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의 원전 공급망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탄소중립에 원자력을 활용해야 할 이유다.  

시원찮은 장비를 가지고 등반이 극히 어려운 산을 오르려하면 사고 위험만 높아진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